바쁜 기간 동안 며칠은 새벽 3시까지 출근해야 했다. 호주의 시골길은 정말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래서 천천히 운전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덜덜이의 헤드라이트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시골길도 가로등이 가득 차 있는 한국과는 달랐다. 호주는 도심에서 30분만 벗어나도 밤이면 가로등 하나 없다. 오가는 차량도 거의 없다. 막말로 ‘사람 죽여서 묻어도 모르겠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어둡다.
닭농장에서 일할 때였다. 제랄튼에서 밤늦게 출장 북귀 중이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캥거루를 쳤다. 어두눈 밤 불빛을 보면 캥거루는 달려드는 습성이 있다. 당시 늦은 시간이라 나는 잠들어 있었고, 그레이엄이 운전하고 있었다. 갑자기 차가 쿵하는 소리와 함께 흔들렸다. 나는 놀라며 잠에서 깼다. 그레이엄은 캥거루와 부딪혔다고 했다. 도착하고 나서 차를 살펴보니 앞에 보호대가 조금 찌그러져 있었다. 시골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차량 앞에 보호대를 장착하고 다닌다. 농장에서 사용하는 차량은 보호대가 일종의 생필품이다. 주로 헤드라이트와 그릴을 비롯한 앞부분에 부착된다. 재수 없으면 달려오는 캥거루가 보호대 설치가 안된 후드나 앞유리와 부딪친다. 최악의 경우 운전자가 사망하기도 한다. 2m가 넘는 키에 100kg의 육체가 빠르게 달리는 차와 부딪힌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것도 내가 운전자라고 생각하면 더 공포스럽다. 그나마 그레이엄과 내가 탔던 차는 차체가 높고, 보호대도 크고 튼튼한 것이 부착 돼 있었다. 그럼에도 보호대와 차의 일부가 찌그러져 있었다.
나는 그때 생각이 나서 차를 더더욱 천천히 몰았다. 우리 덜덜이한테는 보호대 따위는 없었다. 차량 불빛을 보고 달려오는 캥거루가 간혹 보였지만 그때마다 헤드 라이트를 꺼 캥거루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혹은 더 가속해 캥거루를 따돌렸다.
하루는 새벽출근이 유독 고된 날이었다. 출근길에 졸음이 쏟아졌다. 창문을 열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시며 출근했지만 눈이 감겨왔다. 쏟아지는 졸음을 온전히 버티기 힘들었다. 결국 꾸벅꾸벅 졸며 운전하던 와중 차 앞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나는 놀란마음과 함께 본능적으로 차를 틀었다. 차가 무언가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작은 소리였지만 무언가 부딪혔음이 분명했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신경을 곤두 세웠다. 무사히 농장에 도착해 차를 살펴봤다. 차량 한쪽에 움푹 들어간 부분이 보였다. 그것이 캥거루였는지 아니면 다른 짐승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덜덜이의 상처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살짝 스쳐간 듯했다. 다행히 몸통박치기가 빗겨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