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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강상원 Nov 14. 2024

vs Tiger Snake

 내가 일하던 감자, 당근 농장에는 타이거 스네이크(Tiger Snake)가 살았다. 아주 많이 살았다. 주로 물가 근처에 사는 이 뱀은 농장의 물탱크 주변에 항상 있었다. 그리고 매일 스프링 클러를 돌리다 보니 밭에서도 자주 발견 됐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엔 뱀을 보지 못했다. 한두 달이 지났을 때쯤 농장 직원들이 내게 일러줬다. 곧 타이거 스네이크의 번식기가 찾아오니 조심해야 한다고. 그 후 나는 농장을 그만두는 날까지 타이거 스네이크를 매일 마주했다.


 타이거 스네이크는 맹독성의 뱀이다. 방울뱀보다 독성이 20배는 강력하다. 농장 직원들은 이 뱀에 물리면 코끼리도 죽을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이 물리면 30분 안에 해독제를 맞아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죽는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농장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이 딱 차로 30분 걸렸다. 나는 그날부터 항상 두꺼운 긴팔을 입고 일했다. 거기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부츠를 신었다. 아무리 더워도 절대 웃옷을 벗지 않았다. 안에 입은 반팔 내의가 땀에 범벅이 되어도 옷을 벗지 않았다. 같이 일하는 호주인들은 늘 내게 안 덥냐고 물어봤다. 오히려 덥다는 이유만으로 반바지에 반팔을 입고 일하는 호주인들이 내게 더 비상식적으로 보였다. 완전한 오지가 되기엔 벽이 높았다.


 나는 그렇게 위험한 뱀인데 농장에서 어떻게 아무런 조치를 안 할 수 있냐고 물었다. 최소한 보호복은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농장 사람들은 타이거 스네이크가 먼저 공격하는 일은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고 했다. 타이거 스네이크의 독은 위험하지만 사람을 무서워해서 먼저 도망간다고 했다. 보통 먼저 무는 경우는 적다고 일러줬다. 그러곤 호주에서 뱀에 물려 사망하는 사람은 고작 1년에 5명도 안된다며 괜찮다고 했다. 길 가다 교통사고 당할 확률이 훨씬 높을 거라는 말과 함께. 교통사고 통계의 비유는 지구 반대편에서도 존재했다. 익숙한 비유와 익숙하지 않은 상황의 아이러니에 약간의 실소가 터졌다.


 타이거 스네이크가 사람을 무서워한다는 것은 사실인 듯했다. 뱀들은 늘 도망만 다녔다. 밭으로 다가가면 뱀들은 어김없이 스멀스멀 도망쳤다. 가끔 도망친 것을 깜빡이라도 했는지 내 옆을 지나가기도 했다. 한 번은 파이프를 들어 올리기 위해 고개를 숙이니 바로 눈앞에 타이거 스네이크가 지나가고 있었다. 이렇게나 자발적으로 도망치는 뱀이라면 굳이 두꺼운 옷에 긴 부츠를 신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나도 오지(Aussie)들처럼 편하게 반바지에 반팔을 입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절대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물탱크에 비료를 부어 녹였다. 그렇게 영양분이 듬뿍 담긴 물이 스프링클러를 통해 밭으로 뿌려졌다. 단순한 작업이지만 반드시 먼저 행해야 하는 작업이 있었다. 물탱크 주변의 뱀을 쫓아내야 했다. 물탱크 주변은 늘 타이거 스네이크 천지였다. 적을 때는 2~3마리 많을 때는 20마리 넘는 타이거 스네이크가 물탱크 옆 작은 연못 부근에 있었다. 물탱크에서 작업을 하기 전에 양철통을 바닥에 엎어 놓고 막대기를 두들겼다. 뱀들은 포유류처럼 고막이 없다. 대신 아래턱 뼈를 통해 진동을 감지한다. 이는 땅이나 물을 통해 전해지는 저주파 진동을 감지하게 해 준다. 땅에서 전달되는 진동을 감지한 타이거 스네이크는 각자 물탱크에서 멀어져 갔다. 하루는 수 십 마리의 뱀이 동시에 물탱크 주변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멀리서 봤다.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에나 나올법한 장면이었다.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물리 치쳤을 때 메두사 요새의 뱀들이 도망친다면 그런 모습일 것 같았다. 


 이 맹독성 뱀이 매일 도망치는 모습만 발견하니 어느새 적응이 됐다. 타이거 스네이크를 보는 것은 일상이었다. 더 이상 놀랍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왜 호주인들이 이 맹독성 뱀을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지 알 것 같았다.(이 뱀의 실제 위험성은 농장 사람들이 알려준 정보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정말 정말 위험한 독사임은 사실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스프링클러 파이프 라인을 분리하고, 해채 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분리되어 있는 파이프 라인을 연결하기 위해 들어 올렸는데 파이프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무심코 파이프 안을 들여다보는데 무언가 튀어나오려 했다. 타이거 스네이크였다. 나는 얼른 파이프를 집어던졌다. 집어던짐과 동시에 타이거 스네이크는 파이프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파충류는 내 얼굴 앞을 날아갔다. 바닥에 착지함과 동시에 빠르게 도망쳤다. 나는 주변에도 혹시 모를 뱀들이 있을 까봐 빠르게 일어섰다. 그리고 잠시 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조금 전 일어난 일에 충격을 바당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그와 함께 씁쓸한 허망함이 덮쳐왔다.


 ‘시발 거지 같네. 이거야 말로 개죽음 아냐? 진짜 인생 별것 없구나’


 ‘휴, 다행이다’따위의 생각은 안 들었다. 아무리 무섭고 놀라는 일을 겪어도 눈물이 난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때만큼은 무언가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맹독을 지닌 파충류가 겁이 났다기보다는 다른 감정이었다. 공포심보다 억울한 마음이 더 컸다. 먼 나라에 와서 혼자 외톨이로 살다 뱀에 물려 죽는다고 생각하니 허무함이 밀려왔다. 삶이란 쉽게 찢어지는 한 장의 종이 같았다. 내 목숨이 순식간에 망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내 존재의 하찮음이 느껴졌다. 남들은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하루하루 감사하다는데 나는 그런 생각 따위는 안 들었다. 억울함과 울분만이 나를 가득 채웠다. 결국 그동안 억눌렸던 원망과 앙금 같은 것들이 그날 다 터져 나왔다.


 별다른 피해 없이 위험한 순간을 모면했으니 분명 다행이었다. 하지만 다행이란 생각은 감사한 마음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만약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갔을 것이 분명했다. 뱀물림 사건은 한국 뉴스나 호주 뉴스에도 보도되지 않을 만큼 하찮아 보였다. 호주 지역 뉴스쯤이라면 모를까. 한국에서 어찌어찌 이런 소식이 알려진다 해도 애도보다는 왠지 조롱이 쏟아질 것 같았다. 관짝위로 조의를 표하는 꽃보다 온갖 조롱 섞인 비난이 쌓이는 장면이 상상됐다. “호주 워홀 진짜 왜 감?”, “호주뽕 맞은 애들 진짜 이해 안 감”, “워홀은 한국에서 도태된 애들이 가는 거 아님?” 등. 조악하고, 천박한 혐오표현이 내 호주 서사를 장식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나는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내 워홀 경험은 고작 그만큼만의 가치일 뿐이었다. 아니 가치라는 말도 사치였다. 기사말은 ‘그저 쓸데없는 호기, 객기, 망상이 가져다준 개죽음’이 적절할 것 같았다. 한국은 내 꿈의 생존을 위협하는 곳이었고, 호주는 내 물리적 생존을 위협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세상에도 반겨주는 곳이 없다 생각했다.


 삶에 원망이 가득하니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감사함마음 따위는 안 들었다. 울분의 운동에너지가 더 우세했다. 더 빠르고, 강력하게 튀어나왔다. 그렇게 튀어나와 나를 가득 채운 억울함은 다른 사고를 마비시켰다. 그때 알았다. 그동안 내 안에 우울과 좌절이 가득했음을. 그리고 터져 나오지 못한 부정적 감정들이 내 안에 꾹꾹 담겨 압력을 계속 높이고 있었음을. 그 상태에서 마주한 사의 고비는 결국 나의 허무와 상실감을 폭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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