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열심히 살다 죽을뻔했다
“삶이란 쉽게 찢어지는 한 장의 종이 같았다.”
#vs 범블비
농장에서 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감자, 당근 농장에는 알 수 없는 날벌레들이 참 많았다. 그중 벌과 유사한 벌레들도 있었다. 올리버는 벌은 아니라고 했지만 내 눈엔 벌처럼 보였다. 한국의 장수말벌처럼 크고 날개소리가 드론 못지않았다.
한 번은 사륜바이크를 타고 농장을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근데 작은 점이 순식간에 커지더니 내 얼굴과 부딪혔다. 내 얼굴과 부딪힌 그 작은 드래곤은 내 목덜미를 타고 옷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소름 끼치는 느낌과 동시에 겁이 나 오토바이를 급하게 새웠다. 흙바닥에서 급정거한 사륜바이크는 완전히 멈출 때까지 약 5초가 걸렸다. 체감상 1분은 되는 것 같았다. 그 순간에도 내 목 근처에 무언가 기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급히 옷을 벗어 재끼려 했다. 그 순간 내 목덜미에 무언가 따끔했다. 손으로 재빨리 쥐어 잡아 던져 버렸다. 그 벌레를 손으로 움켜쥠에 망설일 수 없었다. 목덜미에 정체 모를 날벌레의 독이 주입되느니 손에 물리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내 몸을 기어 다니는 느낌이 날 때는 아주 거대한 날짐승 같았지만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모습을 보니 작은 벌이었다. 땅바닥을 설설 기는 모습이 꿀벌 같기도 했다. 쏘인 곳을 만져보니 미세하게 부어 있었다. 혹시 몰라 사무실로 향했다. 동료 직원에게 상처를 봐 달라고 했다. 그 직원은 잘 안 보인다고 말하며 약상자의 위치를 알려줬다.
그날 퇴근 할 때까지 불안했다. 혹시 이게 단순한 벌이 아니라 “독성이 있는 말벌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호주의 날벌레를 검색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날 일이 끝날 때쯤 목덜미를 만져보니 부어있는 것도 사라져 있었다. 조금 전 크게 걱정한 나 자신이 조금 민망했다.
‘모기에 물려도 이보단 오래갔겠네’
#vs 몸통 박치기
바쁜 기간 동안 며칠은 새벽 3시까지 출근해야 했다. 호주의 시골길은 정말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래서 천천히 운전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덜덜이의 헤드라이트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시골길도 가로등이 가득 차 있는 한국과는 달랐다. 호주는 도심에서 30분만 벗어나도 밤이면 가로등 하나 없다. 오가는 차량도 거의 없다. 막말로 ‘사람 죽여서 묻어도 모르겠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어둡다.
닭농장에서 일할 때였다. 제랄튼에서 밤늦게 출장 북귀 중이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캥거루를 쳤다. 어두눈 밤 불빛을 보면 캥거루는 달려드는 습성이 있다. 당시 늦은 시간이라 나는 잠들어 있었고, 그레이엄이 운전하고 있었다. 갑자기 차가 쿵하는 소리와 함께 흔들렸다. 나는 놀라며 잠에서 깼다. 그레이엄은 캥거루와 부딪혔다고 했다. 도착하고 나서 차를 살펴보니 앞에 보호대가 조금 찌그러져 있었다. 시골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차량 앞에 보호대를 장착하고 다닌다. 농장에서 사용하는 차량은 보호대가 일종의 생필품이다. 주로 헤드라이트와 그릴을 비롯한 앞부분에 부착된다. 재수 없으면 달려오는 캥거루가 보호대 설치가 안된 후드나 앞유리와 부딪친다. 최악의 경우 운전자가 사망하기도 한다. 2m가 넘는 키에 100kg의 육체가 빠르게 달리는 차와 부딪힌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것도 내가 운전자라고 생각하면 더 공포스럽다. 그나마 그레이엄과 내가 탔던 차는 차체가 높고, 보호대도 크고 튼튼한 것이 부착 돼 있었다. 그럼에도 보호대와 차의 일부가 찌그러져 있었다.
나는 그때 생각이 나서 차를 더더욱 천천히 몰았다. 우리 덜덜이한테는 보호대 따위는 없었다. 차량 불빛을 보고 달려오는 캥거루가 간혹 보였지만 그때마다 헤드 라이트를 꺼 캥거루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혹은 더 가속해 캥거루를 따돌렸다.
하루는 새벽출근이 유독 고된 날이었다. 출근길에 졸음이 쏟아졌다. 창문을 열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시며 출근했지만 눈이 감겨왔다. 쏟아지는 졸음을 온전히 버티기 힘들었다. 결국 꾸벅꾸벅 졸며 운전하던 와중 차 앞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나는 놀란마음과 함께 본능적으로 차를 틀었다. 차가 무언가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작은 소리였지만 무언가 부딪혔음이 분명했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신경을 곤두 세웠다. 무사히 농장에 도착해 차를 살펴봤다. 차량 한쪽에 움푹 들어간 부분이 보였다. 그것이 캥거루였는지 아니면 다른 짐승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덜덜이의 상처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살짝 스쳐간 듯했다. 다행히 몸통박치기가 빗겨 나갔다.
#vs 다크 나이트
새벽에 출근하면 가끔씩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올빼미가 간간히 출몰했다. 야심한 밤나무 위에 올라선 올빼미는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보랏빛 하늘을 가로지르는 나뭇가지 위에 고고한 자태를 내뿜는 날짐승. 그 날짐승 위로 유독 밝고 커다란 보름달이 떠 있을 때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아름답고 경이로웠다. 혹시 몰라 같이 일하는 직원에게 위험하진 않느냐고 물어봤다.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했다. 그 뒤로 안심하며 대놓고 올빼미를 구경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고고한 날짐승의 사냥 장면이 생생하게 포착됐다. 올빼미의 매력은 사냥에서 더 빛남을 느꼈다. 썰매가 미끄러지듯 올빼미는 달빛 위로 미끄러지며 낙하했다. 날개를 활짝 펼치며 광휘를 품은 두 눈이 더 반짝였다. 특히 저공 비행하는 모습은 한 편의 첩보 영화였다. 배가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날아갔다. 날개를 활짝 펼친 채로 날갯짓 한 번 없이 지면과 10cm도 안되어 보이는 간격을 유지하며 날아갔다. 저공비행을 하는 동안 올빼미는 전혀 미동이 없었다. 마치 자기 부상 열차 같았다. 그저 몸을 바람에 맡긴 채 활주 했다. 그러곤 거대한 발톱으로 먹잇감을 낚아챈 후 잽싸게 튀어 올랐다. 낚아채는 순간 발톱은 생쥐처럼 생긴 그것을 쥐어짜듯이 움켜쥐었다. 그러곤 나무 틈으로 사라졌다. 진정한 다크 나이트는 박쥐가 아닌 올빼미였다. 옆에 있던 직원도 올빼미가 사냥하는 모습을 간혹 봤지만 그 날 만큼 뚜렷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새벽에 출근하면 보통은 수확한 감자를 출하하기 바빴다. 그렇게 출하를 마치면 어느덧 해가 쨍쨍하게 떠있는 아침이었다. 하지만 가끔 감자 수확이 빨리 끝나는 날이 있었다. 그럴 때면 감자 유통 트럭이 도착할 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여유를 즐기곤 했다. 감자 수확기 위에 걸터앉아 주변을 둘러봤다. 아직은 새벽 어스름이 하늘을 뒤덮기 전이었다. 밝은 달빛과 적당히 그 빛을 머금은 밤하늘에 새벽 어스름이 점점 물들어 가는 모습. 그리고 멀리 동이 트는 모습까지. 자연은 늘 경이롭고 신비로웠다.
#vs Giant Jerry
아침에 비몽사몽 하며 이를 닦고 있었다. 바닥에 갑자기 커다라고 시커먼 물체가 나타났다. 그 물체는 내쪽으로 오더니 내 발을 딛고 점프해서 달아났다. 발등 위로 그 짐승의 물컹함과 발톱 같은 것이 느껴질 때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넘어질 뻔했다. 세면대 아래쪽 파이프 관이 하나 있었다. 괴 생명체는 내 발을 발판 삼아 점프해 파이프 안쪽으로 달아났다. 평소 그곳을 통해 들락날락하는 것 같았다. 예전 진진에 있을 때도 쥐를 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큰 것을 보진 못했다. Mouse라기 보단 Rat이 분명했다. 더욱이 내 인생 통틀어 이보다 더 큰 쥐를 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았다. 그 쥐는 절대 고양이 따위한테 먹히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톰과 제리에서 제리 역할을 그 쥐가 맡았다면 늘 도망쳐야 했던 쪽은 톰이었을 것이다. 그 거대한 쥐가 내 앞에서 기분 나쁜 촉감을 남기고 후다닥 지나갔을 때 나는 낼 수 있는 가장 큰 비명을 질렀다. 그날 발, 종아리, 정강이 등을 사정없이 닦고 출근했다. 들쥐는 병을 옮기는 주된 동물이란 생각에 겁이 났다. 그날 저녁 같이 사는 독일인 친구가 내게 물었다. 아침에 왜 소리를 질렀는지. 나는 우리 집에 괴물이 출몰한다고 말했다.
그 후로도 간혹 그 괴물과 아침에 마주쳤다. 억울하게도 집에서 나만 그 짐승과 아침인사를 했다. 직접 목격한 이는 내가 유일했다. 집주인에게 괴물의 존재를 말해도 아무런 조치를 안 했다. 자신은 이 집에 몇 년 동안 살면서 쥐를 본 적이 없었다는 게 이유였다. 양치기 소년이 된 기분이었다.
매번 아침마다 비몽사몽 이를 닦고 있으면 그 괴물이 화장실문으로 들어와 내 발을 딛고, 파이프 관 속으로 사라졌다. 내 비명소리는 한 번도 작아지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올리버에게 하니 농장에서 사용하는 쥐약을 알려줬다. 수확한 감자와 당근을 안전하게 보관해야 했으므로 농장에도 쥐약이 있었다.
쥐약은 파란색을 띤 작은 조약돌 모습이었다. 올리버는 약이 상당히 독하니 장갑을 착용하라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곤 맨손으로 잡았다. 잠깐 쥘 것이니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약을 집자마자 후회했다. 약을 얼른 일회용 팩에 넣었다. 그리고 수돗가로 달려갔다. 약을 잡고 나서 몇 초도 안되어 않아 손이 따가웠다. 독을 품은 파란 돌은 마녀의 주술이 깃든 저주받은 물체였다. 그만큼 독한 물질을 맨 손으로 만졌다고 생각하니 겁이 나 얼른 손을 씻었다. 그 모습을 본 올리버는 웃으면서 “Told ya”라고 했다. 나도 웃으면서 다음부턴 더 강력하게 경고해 달라고 말했다.
퇴근 후 세면대 밑 파이프 라인에 쥐약을 설치했다.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괴물을 물리치기 위한 덫이었다.(물론 마을 사람들은 믿지 않았지만) 올리버는 한 알이면 충분하다고 했지만 나는 세알을 챙겨 왔다. 세 알 모두 파이프 라인에 집어넣었다. 하나는 툭 밀어 쳐서 깊숙이 넣었다. 하나는 그거보다 약하게 쳐서 밀어 넣었고, 마지막 하나는 입구 쪽에 넣어 놨다. 집주인에게 이를 알렸다. 그리고 혹시나 파란 약을 발견하면 절대 맨 손으로 만지지 말라고 일러 주었다. 다행히 그 집을 나올 때까지 집에서 쥐를 본 적은 없다. 아무래도 약발이 잘 먹힌 것 같았다. 호주에서 몬스터와의 싸움에서 또 승리했다.
#vs Venom
호주는 독사와 독거미가 가득하다. 농장에서 일한다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붉은 등 거미다. 호주에선 이를 레드 백(Red Back)이라고 한다. 나도 진진의 닭농장에서 일할 때 레드백을 심심치 않게 봤다. 물려도 바로 조치를 취하면 괜찮아 그렇게 위험한 거미는 아니다. 조치를 취하지 못해도 1주에서 2주는 살 수 있다. 영화에서 처럼 물리는 즉시 엄청난 고열과 함께 사경을 헤맬 만큼의 독성은 아니다. 물론 이마저도 한국인 입장에선 충분히 위험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호주에서 레드백은 독거미 중 귀여운 편에 속한다.
호주에 있는 동안 레드백 이외에 독거미를 실제로 본 적은 없다. 간혹 그 크기와 생김새가 전혀 본 적 없는 거미들이 있었지만 독거미는 아니었다. 매번 이상한 거미를 발견할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보여주며 농장에서 오래 일한 호주인에게 물어봤다. 늘 독거미가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독거미를 본다면 농장 직원들과 무조건 공유를 해야 했다. 위험할 수 있으니 즉각적인 정보 공유는 중요했다. 하지만 내겐 독거미와 독이 없는 거미를 구분하는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거미는 전부 사진을 찍어 공유했다. 한 번은 깡충거미를 우연히 발견하고, 구경하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려는데 눈앞에서 갑자기 튀어올라 뒤로 나자빠진 적이 있다. 내 얼굴로 점프하려는 줄 알고 심장이 덜컥 내령 앉았다.(다행히 깡충거미는 아주 작고, 독성도 없다.) 진진에 있는 동안 아쉽게도(?) 레드백 이외에는 독거미를 본 적은 없었다.
아주 예전 티브이에서 우연히 큰 거미를 봤다. 마치 CG인 것 마냥 거대한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있는 장면이었다. 티브이 속에서 한 남성이 그 거미 근처에 자신의 손을 갔다 댔다. 얼핏 제품 판매를 위해 제품에 손바닥을 갔다 대는 듯했다. 남자는 자신의 손을 거미에 들이대며 시청자들이 거미의 실제 크기를 가늠할 수 있게 했다. 그 거미는 성인남성의 손 만했다. 그러곤 그 거미를 집어서 자신의 팔 위에 위에 올리기도 했다. 다행히 그 거미는 공격성도 약하고, 독이 있으나 유독하지 않은 종이었다. 그럼에도 그 크기가 주는 위압감이 상당했다. 나중에 그 거미가 호주에 서식하는 허츠먼 거미(Huntsman Spider) 임을 알게 됐다. (유사종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 서식하고 있다. 궁금한 사람은 구글에 ‘허츠먼 거미’를 검색해 보길 바란다. 하지만 그리 추천하지 않는다)
그날은 여느 때처럼 퇴근 후 집에서 편히 쉬고 있었다. 맥주 한잔과 함께 영화를 보고 있었다.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맥주를 들이켜는데 반대편 창문 위로 무언가 시커먼 것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창문 너머로 그 물체는 점점 더 자신의 위용을 뽐냈다. 시커먼 발들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것은 창문틀을 넘어오더니 하얀 벽면 위에서 멈춰 섰다. 허츠먼 거미였다. 거미 전문가는 아니지만 처음 미디어에서 접했을 때 그 충격이 커 자세히 찾아봤다. 그때 내 DNA에 생존 본능의 각인이 새겨졌던 것일까? 나는 그 거미가 허츠먼 거미임을 단 번에 알아챘다. 무엇보다 그 거대한 크기는 허츠먼 거미가 아닐 수가 없었다.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종은 보통 성인 남성의 손 크기라는데 그 거미는 그보다 훨씬 커 보였다. 맹독성에 공격성이 높은 거미가 아님을 알았지만 그 지식은 실전에서 큰 도움은 안 됐다. 눈앞의 거미는 내게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괴물처럼 보였다.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와 샘이 거미 괴물을 마주 했을 때 그랬을까. 그들은 자동차 만한 거미와 맞서 싸워 이겼지만, 판타지 세상이 아닌 이곳에서 나는 저 거미를 어떻게 무찔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눈앞의 거미는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아닌 언제든 나를 잡아먹을 수 있는 베놈으로 보였다. 처음에 거미가 내 방으로 들어와 움직임을 멈출 때까지 나도 침대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얼어붙은 채로 베놈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내 침대에서 방을 나가려면 거미와의 거리가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소름 끼쳤지만 얼른 나가 해충약이든 빗자루든 저 괴물을 무찌를 전설의 무기 같은 것을 가져와야 했다. 프로도는 엘프들이 만들어준 검으로 거미를 무찔렀지만 내겐 아무런 무기가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대치상황이 계속되던 와중 그 괴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 괴물은 몸을 천천히 돌리더니 다시 창문을 넘어 밖으로 사라졌다. 역시 온순한 종이 맞았다. 하지만 그 생김새와 크기는 절대 온순해 보이지 않았다. 그 괴물이 창문을 넘어가자마자 용기를 내 창문으로 다가갔다. 재빨리 창문을 닫고 잠금쇠를 걸었다. 옆의 창문들도 단단히 잠겼는지 확인했다. 그제야 묵혀 두었던 숨을 토해 낼 수 있었다. 숨을 토해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내 이마와 목덜미가 식은땀이 가득했음을.
#vs Tiger Snake
내가 일하던 감자, 당근 농장에는 타이거 스네이크(Tiger Snake)가 살았다. 아주 많이 살았다. 주로 물가 근처에 사는 이 뱀은 농장의 물탱크 주변에 항상 있었다. 그리고 매일 스프링 클러를 돌리다 보니 밭에서도 자주 발견 됐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엔 뱀을 보지 못했다. 한두 달이 지났을 때쯤 농장 직원들이 내게 일러줬다. 곧 타이거 스네이크의 번식기가 찾아오니 조심해야 한다고. 그 후 나는 농장을 그만두는 날까지 타이거 스네이크를 매일 마주했다.
타이거 스네이크는 맹독성의 뱀이다. 방울뱀보다 독성이 20배는 강력하다. 농장 직원들은 이 뱀에 물리면 코끼리도 죽을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이 물리면 30분 안에 해독제를 맞아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죽는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농장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이 딱 차로 30분 걸렸다. 나는 그날부터 항상 두꺼운 긴팔을 입고 일했다. 거기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부츠를 신었다. 아무리 더워도 절대 웃옷을 벗지 않았다. 안에 입은 반팔 내의가 땀에 범벅이 되어도 옷을 벗지 않았다. 같이 일하는 호주인들은 늘 내게 안 덥냐고 물어봤다. 오히려 덥다는 이유만으로 반바지에 반팔을 입고 일하는 호주인들이 내게 더 비상식적으로 보였다. 완전한 오지가 되기엔 벽이 높았다.
나는 그렇게 위험한 뱀인데 농장에서 어떻게 아무런 조치를 안 할 수 있냐고 물었다. 최소한 보호복은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농장 사람들은 타이거 스네이크가 먼저 공격하는 일은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고 했다. 타이거 스네이크의 독은 위험하지만 사람을 무서워해서 먼저 도망간다고 했다. 보통 먼저 무는 경우는 적다고 일러줬다. 그러곤 호주에서 뱀에 물려 사망하는 사람은 고작 1년에 5명도 안된다며 괜찮다고 했다. 길 가다 교통사고 당할 확률이 훨씬 높을 거라는 말과 함께. 교통사고 통계의 비유는 지구 반대편에서도 존재했다. 익숙한 비유와 익숙하지 않은 상황의 아이러니에 약간의 실소가 터졌다.
타이거 스네이크가 사람을 무서워한다는 것은 사실인 듯했다. 뱀들은 늘 도망만 다녔다. 밭으로 다가가면 뱀들은 어김없이 스멀스멀 도망쳤다. 가끔 도망친 것을 깜빡이라도 했는지 내 옆을 지나가기도 했다. 한 번은 파이프를 들어 올리기 위해 고개를 숙이니 바로 눈앞에 타이거 스네이크가 지나가고 있었다. 이렇게나 자발적으로 도망치는 뱀이라면 굳이 두꺼운 옷에 긴 부츠를 신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나도 오지(Aussie)들처럼 편하게 반바지에 반팔을 입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절대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물탱크에 비료를 부어 녹였다. 그렇게 영양분이 듬뿍 담긴 물이 스프링클러를 통해 밭으로 뿌려졌다. 단순한 작업이지만 반드시 먼저 행해야 하는 작업이 있었다. 물탱크 주변의 뱀을 쫓아내야 했다. 물탱크 주변은 늘 타이거 스네이크 천지였다. 적을 때는 2~3마리 많을 때는 20마리 넘는 타이거 스네이크가 물탱크 옆 작은 연못 부근에 있었다. 물탱크에서 작업을 하기 전에 양철통을 바닥에 엎어 놓고 막대기를 두들겼다. 뱀들은 포유류처럼 고막이 없다. 대신 아래턱 뼈를 통해 진동을 감지한다. 이는 땅이나 물을 통해 전해지는 저주파 진동을 감지하게 해 준다. 땅에서 전달되는 진동을 감지한 타이거 스네이크는 각자 물탱크에서 멀어져 갔다. 하루는 수 십 마리의 뱀이 동시에 물탱크 주변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멀리서 봤다.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에나 나올법한 장면이었다.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물리 치쳤을 때 메두사 요새의 뱀들이 도망친다면 그런 모습일 것 같았다.
이 맹독성 뱀이 매일 도망치는 모습만 발견하니 어느새 적응이 됐다. 타이거 스네이크를 보는 것은 일상이었다. 더 이상 놀랍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왜 호주인들이 이 맹독성 뱀을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지 알 것 같았다.(이 뱀의 실제 위험성은 농장 사람들이 알려준 정보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정말 정말 위험한 독사임은 사실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스프링클러 파이프 라인을 분리하고, 해채 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분리되어 있는 파이프 라인을 연결하기 위해 들어 올렸는데 파이프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무심코 파이프 안을 들여다보는데 무언가 튀어나오려 했다. 타이거 스네이크였다. 나는 얼른 파이프를 집어던졌다. 집어던짐과 동시에 타이거 스네이크는 파이프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파충류는 내 얼굴 앞을 날아갔다. 바닥에 착지함과 동시에 빠르게 도망쳤다. 나는 주변에도 혹시 모를 뱀들이 있을 까봐 빠르게 일어섰다. 그리고 잠시 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조금 전 일어난 일에 충격을 바당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그와 함께 씁쓸한 허망함이 덮쳐왔다.
‘시발 거지 같네. 이거야 말로 개죽음 아냐? 진짜 인생 별것 없구나’
‘휴, 다행이다’따위의 생각은 안 들었다. 아무리 무섭고 놀라는 일을 겪어도 눈물이 난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때만큼은 무언가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맹독을 지닌 파충류가 겁이 났다기보다는 다른 감정이었다. 공포심보다 억울한 마음이 더 컸다. 먼 나라에 와서 혼자 외톨이로 살다 뱀에 물려 죽는다고 생각하니 허무함이 밀려왔다. 삶이란 쉽게 찢어지는 한 장의 종이 같았다. 내 목숨이 순식간에 망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내 존재의 하찮음이 느껴졌다. 남들은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하루하루 감사하다는데 나는 그런 생각 따위는 안 들었다. 억울함과 울분만이 나를 가득 채웠다. 결국 그동안 억눌렸던 원망과 앙금 같은 것들이 그날 다 터져 나왔다.
별다른 피해 없이 위험한 순간을 모면했으니 분명 다행이었다. 하지만 다행이란 생각은 감사한 마음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만약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갔을 것이 분명했다. 뱀물림 사건은 한국 뉴스나 호주 뉴스에도 보도되지 않을 만큼 하찮아 보였다. 호주 지역 뉴스쯤이라면 모를까. 한국에서 어찌어찌 이런 소식이 알려진다 해도 애도보다는 왠지 조롱이 쏟아질 것 같았다. 관짝위로 조의를 표하는 꽃보다 온갖 조롱 섞인 비난이 쌓이는 장면이 상상됐다. “호주 워홀 진짜 왜 감?”, “호주뽕 맞은 애들 진짜 이해 안 감”, “워홀은 한국에서 도태된 애들이 가는 거 아님?” 등. 조악하고, 천박한 혐오표현이 내 호주 서사를 장식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나는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내 워홀 경험은 고작 그만큼만의 가치일 뿐이었다. 아니 가치라는 말도 사치였다. 기사말은 ‘그저 쓸데없는 호기, 객기, 망상이 가져다준 개죽음’이 적절할 것 같았다. 한국은 내 꿈의 생존을 위협하는 곳이었고, 호주는 내 물리적 생존을 위협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세상에도 반겨주는 곳이 없다 생각했다.
삶에 원망이 가득하니 죽을 고비를 넘기고도 감사함마음 따위는 안 들었다. 울분의 운동에너지가 더 우세했다. 더 빠르고, 강력하게 튀어나왔다. 그렇게 튀어나와 나를 가득 채운 억울함은 다른 사고를 마비시켰다. 그때 알았다. 그동안 내 안에 우울과 좌절이 가득했음을. 그리고 터져 나오지 못한 부정적 감정들이 내 안에 꾹꾹 담겨 압력을 계속 높이고 있었음을. 그 상태에서 마주한 사의 고비는 결국 나의 허무와 상실감을 폭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