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적, 심리적 에너지가 적은 채로 보내던 나날. 유일한 위로가 있었다. 검고 우아한 새.
향수병은 없었다. 절대 고향이 그립지 않았다. 고향은 내게 무서운 존재였다. 이대로 적당히 호주에 눌러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영주권을 취득하는 방법을 찾아본다면 어떻게든 방법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 또한 확신이 없었다. 당시 나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하루를 보냈다.
어느 날 올리버가 경찰 단속을 잘 살피라고 알려줬다. 퇴근길 어느 지점을 알려주며 경찰이 숨어 과속 감시를 한다 했다. 그날 갓길에 있는 경찰차를 봤다. 옆에는 차량 속도를 측정하는 기계가 있었다. 어차피 내 덜덜이는 과속을 못 하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하지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단속 지점을 잘 확인해 두었다. 그 뒤로 며칠간 해당 지점을 지날 때면 괜히 조심스러웠다. 호주는 벌금이 높았다. 하루는 경찰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경찰이 위치를 바꿔 단속하고 있을 거라 여겼다.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달렸다.
바로 그때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검고, 우아한 새가 유유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차에 내려 새를 관찰했다. 풀숲 너머 작은 연못이 있었고, 흑조 한 마리가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눈앞의 잡초와 갈대를 헤치고 더 가까이 가고 싶었지만 참았다. 수풀을 헤치고 가기엔 내 키만 한 잡초가 무성했다. 그리고 사이사이 위험한 곤충과 동물이 숨어 있을 것 같았다. 농장에서 매일같이 독사를 보고 있어서 그 주변에도 독사가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적당히 시야와 안전거리를 확보한 채로 흑조를 관찰했다. 그저 새 한 마리가 둥둥 떠다닐 뿐이던 그 모습이 무척이나 평화로웠다.
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며칠간 그렇게 흑조를 관찰했다. 흑조를 바라보는 동안은 근심과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유학 포기, 워홀에 대한 후회, 귀국에 대한 부담, 복학에 대한 스트레스 등.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었지만,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은 나의 어둠을 조금씩 밝혀 나갔다. 안온한 검은 빛깔이 내 내면의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