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 장면 중에서 감정이입이 안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은 자녀들이 자신의 부모가 부끄러우니 학교 행사 같은 곳에 오지 말라고 통보하는 장면이다. 천성적으로 게으른 나는 어디 돌아다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에 나는 그런 상황이 되면 오히려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자녀들 학교 같은거 가봤자 별로 볼것도 없고 한시간 내내 서있다가 오는 건데. 그저 귀찮을 뿐이다. 암에 걸리고 나서 부터는 몸에 힘이 없어서 그런지 그 증상이 극대화된듯 하다.
오늘 막내가 자기 학교에서 공개수업한다고 이야기 했다. 속으로 걱정했다. 아빠는 힘들어서 참석하기 힘들어 라고 말하면 아이가 상처 받진 않을까? 서운하진 않을까? 그렇다고 참석한다고 하기에는 몸이 힘들어서 고생할것을 생각하니 이것도 저것도 결정하기 쉽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막내가 복음을 선포한 것이다.
"엄마만 와"
응? 속으로 기쁘면서도 이유가 궁금했다. 엄마가 왜 아빠는 안돼? 라고 물어보니까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엄마는 이쁜데, 아빠는 대머리라 안돼. (참고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서로 디스할때 대머리라고 놀린다.) 서로의 목적이 아름답게 충족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대머리라는게 도움이 되는 순간이 가끔 한번씩 찾아온다. 단점이라 생각한 것들이 가끔 주는 소소한 위로가 있으니 대머리라고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