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
성령 임재 사건을 통해 제자들은 방언을 하게 된다. 이 방언의 가장 큰 특징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서로 막힌 담이 허물어 진다. 언어로 막혀있었던 서로간의 오해가 이해의 장으로 나오게 된다.
이 사건을 바벨탑 사건으로 인해 언어가 혼잡하게 되면서 무너졌던 하나의 인간 공동체를 다시 회복시키는 사건으로 평가하는 신학자들도 있다. 나도 동의한다.
그렇다면 성령충만은 곧 방언이고, 이 방언은 서로의 막힌 담을 허물며, 서로의 오해를 풀어내는 능력이다.
오늘 우리의 방언은 어떤 말들을 이해하는가? 가난한 자의 언어를 이해하는가? 아픈자의 언어는? 과부와 고와와 나그네의 언어를 알아듣는가? 전쟁으로 인해 내쫓기는 자들의 언어는? 내전으로 인해 도망쳤던 땅에 미사일이 떨어져서 다시 고향도 못가고 겨우 정착한 터전도 못가는 실향민들의 언어는? 동성애자들의 언어는? 소수자들의 언어는?
이 모든 언어를 잃어버린채, 교회에서 이상한 랄랄라 방언 받는 집회나 쫓아다니면서 영적으로 모라 된 것처럼 설교하거나 그 현상을 추종하는 자들은 방언을 하는 듯 하지만 실상 분열의 방언일 뿐이며, 그래서 바울은 이것을 금지했다.
분열의 방언이 아닌 예수 승천후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면서 받은 성령충만 방언을 하기 위해 다락방에 모여 하나님께 집중하는 자들이 점점 많아지기를 기도한다. 교회건물은 필요하다. 온갖 미디어와 혼잡한 사건사고 속에 파묻힌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방언을 얻기위해 오직 기도에 힘써야 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성령을 받아 모든 자들이 방언을 말해야 한다.
이 땅에 평화의 언어를 배우며, 계층간의 갈등을 해소하며, 약자들의 언어를 이해할 자가 되고 싶다면, 이 방언을 가르치는 교회를 찾으라. 그렇게 성령충만으로 방언을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길 소망하고 꼭 그렇게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