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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객 예양

탄탄칠신

by 산내

지백의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 조무휼에게 패하고 죽었지만 여기서는 지백의 가신인 예양의 또 다른 죽음을 돌아보고자 한다.

전국시대는 한편 자객들의 시대이기도 했다.

공개적인 해결책이 없을 때 은밀한 방법을 찾는 것은 유사 이래 의지를 가진 인간들의 공통점이지만, 전국시대에 오면 그런 행동이 얼마나 성행했는지 일부 자객들은 독립적인 역할을 부여받았고, 일부는 역사책에 이름을 올렸다.


예양은 한때 범씨와 중행씨를 섬겼지만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범씨와 중행씨가 망하자 그는 지백을 섬겼다.
예양은 팔 것은 몸뚱이밖에 없는 하급 선비였다.

지백은 스스로 용사여서인지 용사를 아꼈는데, 용기가 남달랐던 예양은 특히 존경을 받았다.

그런데 진양의 싸움에서 지백이 죽자, 지씨는 땅을 빼앗겼을 뿐 아니라 몰살당했다.
특히 조무휼은 지백요의 두개골에 칠을 해서 술잔으로 쓸 정도였으니 이제 지씨가 부활할 가능성은 아예 없어 보였다.


지씨에게 몸을 맡겼던 예양은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지백이 패한 후 그의 가신들은 대개 새 주인을 찾아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예양만은 새 주인을 찾지 않고 산속으로 달아나 탄식했다.

"아 슬프도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이를 위해 얼굴을 꾸민다.
지금 지백이 나를 알아주었으니 나는 반드시 원수를 갚고 죽어 지백에게 보답하리라. 그리하면 나의 혼백은 지백을 만나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이리하여 성과 이름을 바꾸어 죄를 받은 사람으로 꾸민 다음 조무휼의 궁전으로 들어가 변소의 벽에 흙을 바르는 일을 하며, 몸에 비수를 지니고 찌를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어느 날 조무홀이 변소에 들어가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동요하여 심장이 뛰었다.

그래서 화장실에 흙을 칠하는 죄수를 잡아 심문해 보니 바로 예양이었는데, 품에 칼을 품고 있었다. 예양은 담대하게 대답했다.


"지백의 원수를 갚으려는 것이다."

측근들이 아연실색해서 예양을 죽이자고 했으나 조무휼이 제지했다.

"저 이는 의인이오. 내가 조심하고 피하면 그뿐이오.
또한 지백이 죽고 후사도 없는데, 그 신하가 그를 위해 복수를 하고자 하니 이 사람은 천하의 현인이오."

이리하여 조무휼은 그를 놓아주었지만 예양은 포기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서 그는 몸에 칠을 하고 숯을 삼켜 문둥이에 벙어리가 되어 남이 자기 모습을 못 알아보게 하고는, 도회에서 구걸을 하며 다녔다.

이러니 자기 아내도 못 알아볼 지경이었는데, 어느 날 길에서 한 친구가 그를 알아보았다.

"이 사람 예양 아닌가?"

"그래, 나일세."

이 참혹한 모습을 보고 친구는 울음을 참지 못하며 이렇게 권했다.

"자네 같은 인재가 예물을 올려 조무휼을 섬긴다면, 그는 반드시 자네를 가까이할 것일세.
그가 자네를 가까이하면 그때는 바라는 바를 쉽게 이룰 수 있지 않겠는가?
허나 기어이 자기 몸을 그토록 상해가면서 양자에게 보복하려 하다니, 이건 너무 어려운 일 아닌가?"


예양이 대답했다.

"여보게, 이미 예물을 바쳐 남을 섬기는 처지가 된 후에 그를 죽이려 한다면 두 마음을 품고 주군을 섬기는 일일세.
또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네.
그럼에도 내가 이 일을 하려는 것은, 장차 천하에 남의 신하 된 사람으로서 두 마음을 품고 그 주군을 섬기는 이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해서네."

얼마 지나서 조무홀이 출타할 일이 생기자 예양은 그가 지나야 하는 다리 아래 엎드려 기다렸다.

그가 다리에 다다랐을 때 말이 놀라 날뛰었다.
조무휼이 짐작하고 말했다.

"분명 저 사람은 예양이다."


사람을 시켜 확인해 보니 과연 예양이었다.

이에 조무휼은 예양을 보고 꾸짖었다.

"그대는 일찍이 범씨와 중행씨도 섬기지 않았는가?

지백이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는데 그대는 보복하지 않고, 도리어 예물을 바치고 지백을 섬겼다.
그랬던 그대가 지백이 이미 죽은 마당에 유독 그를 위해 복수하려는 마음을 그리 독하게 품고 있는 것인가?"

예양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신은 범씨와 중행씨를 섬겼습니다.
허나, 그들은 저를 그저 여러 사람 중 하나로 대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저도 여러 사람들 중 하나로 그들에게 보답했습니다.
그러나 지백을 섬기자 그는 저를 국사로 대우했으니, 저도 국사로서 그에게 보답하려는 것입니다."


조무휼은 탄식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슬프구려, 예자여. 그대는 지백을 위하는 충정으로 이미 이름을 이루었소.
또한 과인이 그대를 용서하는 것도 이미 족하오.
나도 그대를 다시 놓아줄 수는 없소."

그러고는 병사들로 하여금 그를 둘러싸게 했다.

그러자 예양이 말했다.

'신이 듣기로, 뛰어난 군주는 남의 아름다움을 가리지 않기에, 충신은 이름을 위해 죽는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다'고 합니다.
전에 군주께서 신을 관대히 용서해 주셨으니 천하에 군주의 현명함을 칭찬하지 않는 이들이 없습니다.
오늘의 일로 신은 죽어 마땅합니다.

하나 청컨대 군주의 옷을 베어 복수의 뜻을 이룰 수 있게 해 주소서.
이리하면 저는 죽어도 한이 없사옵니다.
감히 바랄 수 있는 일이 아닌 줄 알지만 이렇게 저의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조무홀은 예양이 크게 의롭다고 여기고 옷을 벗어서 넘겨주었다.

그러자 예양은 칼을 뽑아 세 번 뛰어 오른 다음 옷을 내리치고는 말했다.

"내가 지백의 원수를 갚게 되는구나."

그러고 칼에 엎드려 자결했다.


예양이 죽던 날, 조나라의 지사들이 이를 듣고는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리하여 예양은 숯을 삼키고 몸에 칠을 하는 고난을 견디며 복수를 기다린다는 '탄탄칠신’의 고사성어를 남기고 역사의 희생양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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