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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롬 Aug 12. 2024

17살 선물, 또각구두

(소설)창애야, 넌 무슨 꿈을 꾸니?

"모처럼 나오셨네요?"

창애가 자신이 지내는 요양병원 6층, 라운지의 소파 위에 앉아있다. 간호사가 창애를 보며 웃으며 말을 건넨다.  

"햇빛 쬐고 계세요?"

간호사를 보며 창애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어제까지는 비가 오더니 오늘은 하늘도 세상도 깨끗하네요."

그때 데스크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근무를 마친 간호사들이 퇴근을 위해 삼삼오오 모여 인사를 나눈다. 

"어머 김간호사. 옷 너무 예쁘다. 역시 패션 센스가 남달라"

"감사해요. 인터넷 쇼핑하다가 1개 남았다길래 딱 골랐죠. 가격도 엄청 저렴해요."

"나도 김간호사처럼 패션 센스가 있으면 좋겠어.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예쁜 옷들이 안보이던데. 아니네. 김간호사가 입어서 예쁜거네. 내가 눈치가 없었다."

"어머. 오늘 제 생일인가요? 제가 다음에 예쁜 옷 있으면 한 벌 선물해 드릴게요!"

창 밖만 바라보던 창애의 시선이 어느새 간호사들에게 머물러 있다.



웨이브진 머리, 붉은색 입술, 붉은 또각 구두.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만족스러운 듯 창애는 연신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특히 아버지가 17살 생일을 기념해 사주신 구두가 가장 마음에 든다. 

또각또각. 지나가는 사람 모두 알아차리라는 듯 일부러 발자국 소리를 크게 내본다. 

"창애야"

"은옥이 왔냐?"

"오매 구두 뭐여! 뭔 구두가 이렇게 이쁘대? 창애 니 구두 어디서 났냐?

"아~봤냐? 이번 생일에 아빠가 사주셨어. 어때 예쁘재?"

"야.. 좋겄다. 너희 아빠는 너를 무진장 사랑하신갑다. 이렇게 예쁜 구두도 사주시고."

"원래는 다른 거 사준다고 약속했는디..."

"원래는 뭐였는디?"

"17살 되면 본격적으로 양장 만드는 거 공부해보기로 안했냐.. 그래서 미싱 사준다고 약속혔는디...

 전쟁한다고 저 일본 놈들이 철이란 철은 죄다 가져가는 통에  미싱을 수가 있어야재. 미안하다고 대신 구두 사주시더라. 아쉽긴한디 시대가 이런디 어쩌겄어. 

 처음에는 섭섭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는디 이 구두를 보니 눈물이 쏙 들어가더라고 크크. 

 내년에는 진짜 사준다고 했응게. 1년쯤은 기다릴 수 있어. 요 구두랑"

"맞아. 일본 놈들이 저 북문 거리에 있던 영란등도 다 가져갔다드만. 다시 한번 봐보자 니 구두!

 오매오매 눈이 너무 부셔서 눈을 못 뜨겄네. 내 생에 이런 이쁜 구두는 처음이란 게"

"크크 이 가시나. 눈이 아주아주 고급이여! 요 주댕이는 우리나라 제일이고"

"그럼 요 주댕이에 보상을 줘야 하지 않겄냐? 배가 고파 뒤지겠다고"

"가블자! 내가 오늘 널 위해 기가 막힌 걸로 대접하께"


밥을 먹고 나온 은옥이 볼록해진 배를 두드린다.

"배부르다. 창애가 잘 먹었다. 니 덕분에 오늘 호강했다."

"여기가 요즘 최고의 맛난 집이라더라. 나도 니 덕분에 이런 델 와본다."

"참! 시간이 몇 시대? 나 엄마가 올 때 고사리 좀 사오랬는디. 너 먼저 가야 쓰겄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은옥이가 반대편으로 뛰어간다. 

"어어 그래"

돌아선 창애가 절뚝절뚝. 시원찮은 걸음으로 발을 뗀다. 

'구두가 영 불편허네...'

"저기... 뒤에 피나는디요?"

"네?"

한 남자가 창애에게 말을 건다. 남자가 창애가 발뒤꿈치를 가리킨다. 끝을 따라가보니 양말을 빨갛게 물들인 자국이 보인다. 새빨간 색과 검붉은 색이 뒤섞인 게 계속 피가 났던 같다. 순간 창애는 창피함에 얼굴이 붉어진다. 뒤꿈치에서 나는 피보다 지금은 얼굴이 더 붉은 것 같다. 

"새 구두인갑소. 원래 구두를 신을 땐 이렇게 피가 날 수 있어라."

"아... 처음 신고 나온거라..."

창애는 얼굴이 화끈거려서 말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새 구두를 앞세워 오늘만큼은 세련된 여성처럼 보이고 싶었는데 자신의 본모습을, 그것도 처음 본 남자에게 들킨 기분이다. 

"집이 여기서 가깝소?"

"네.. 가까워라.. 그리고 제가 알아서 할테니.. 그만 가쇼.."

"진짜 괜찮지라? 가서 약이라도 발라요."

남자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남기고 돌아선다. 부끄러워 눈도 마주치지 못했던 창애는 그제야 남자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본다. 하얀 양장에 하얀 구두. 시대에 맞지 않은 큰 키까지. 여간 멋쟁이가 아닌가 보다.

'우리 동네에 저런 남자가 있었나?'


절뚝거리며 겨우 집으로 돌아온 창애. 신발 벗기가 무섭게 엄마가 창애의 팔을 끌어당겨 거실에 앉힌다. 

"창애야 너 선 봐야쓰겄다."

"뭔 말이다요? 선은 무슨 선! 나 시집 안간단게요"

"전쟁으로 나라 안팎이 뒤숭숭한디 이렇게 가시내 혼자서 나다니면 되가니. 하루라도 빨리 시집가서 애기 낳고 살아야 안 쓰겠냐. 엄마 아는 사람이 괜찮은 남자 소개해준다고 다음 주에 만나보자 하드라."

"싫어요. 나 양장 배운단게요. 그런디 무슨 시집이어라!"

"시집가서 일단 안정되면 그때 배워도 되잖애.'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며 격렬히 거부하는 창애를 보며 엄마는 깊은 한숨을 내쉰다. 


일주일 뒤

북문 거리의 한 다방에 창애가 앉아있다. 여전히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다. 앙다문 입술이 뭔가 화가 잔뜩 나있는 것 같다. 

'만나기만 하고 시집은 안 가면 되는 것인게' 

"지창애씨?"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창애가 고개를 든다. 

"네. 전데요...어?!"



"저 그만 들어가볼게요."

김간호사가 예쁜 하이힐을 발에 신는다. 굽높이가 보기만 해도 아찔해 보인다. 김간호사는 익숙한 듯 빠른 걸음으로 하이힐과 함께 사라진다. 한참 김간호사에게 눈길을 두던 창애의 입술이 살짝 달싹인다.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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