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그랬다.
아스팔트 위 아지랑이를 뽑아내던 무더위도
윙윙
천천히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 하나면
제 힘을 잃고 스스륵 사라졌다.
창문부터 현관문까지 모두 열어 놓은 집 안엔
가을의 것 못지 않은 여름바람의
시원함이 감돌았다.
냉장고에서 막 꺼낸 수박을 반통씩 비워내고
그대로 거실 바닥에 퍼져 낮잠을 자면
심술궃은 여름도 조용히 지나갔더랬다.
우두둑 쏟아지는 소나기 소리에 잠을 깨면
빗줄기를 타고 온 여름냄새가
코끝을 감쌌다.
나의 여름은 더웠지만 시원하고 싱그러웠다.
지금의 여름은 그때보다 무덥고 시원하다.
연일 40도를 밑도는 더위에
에어컨은 쉴 틈 없이 일을 한다.
어디에나 있고 언제나 열심히 일하는 에어컨 덕에
가끔 여름인 걸 잊기도 한다.
에어컨이 자리잡은 뒤 여름의 풍경은 많이도 달라졌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더이상 집안의 창문을 열지 않는다.
이로 인해 여름바람은 집안을 감쌀 틈이 없고 ,
빗줄기를 타고 오던 여름냄새가 코끝을 타고 올라오는 일도 없다.
나의 여름은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기브앤테이크가 세상의 이치에 따라
편리한 시원함을 얻기위해 싱그러웠던 여름의 추억을 팔아버린 건 아닐까.
다시 시작된 여름.
문득 돌아오지 않은 나의 여름이 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