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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롬 Apr 02. 2024

나의 여름

여름은 그랬다.

아스팔트 위 아지랑이를 뽑아내던 무더위도

윙윙

천천히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 하나면

힘을 잃고 스스륵 사라졌다.


창문부터 현관문까지 모두 열어 놓은 집 안엔

가을의 것 못지 않은 여름바람의

시원함이 감돌았다.


냉장고에서 막 꺼낸 수박을 반통씩 비워내고

그대로 거실 바닥에 퍼져 낮잠을 자면

심술궃은 여름도 조용히 지나갔더랬다.


우두둑 쏟아지는 소나기 소리에 잠을 깨면

빗줄기를 타고 온 여름냄새가

코끝을 감쌌다.

나의 여름은 더웠지만 시원하고 싱그러웠다.


지금의 여름은 그때보다 무덥고 시원하다.

연일 40도를 밑도는 더위에

에어컨은 쉴 틈 없이 일을 한다.

어디에나 있고 언제나 열심히 일하는  에어컨 덕에

가끔 여름인 걸 잊기도 한다.


에어컨이 자리잡은 뒤 여름의 풍경은 많이도 달라졌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더이상 집안의 창문을 열지 않는다.

이로 인해 여름바람은 집안을 감쌀 틈이 없고 ,

빗줄기를 타고 오던 여름냄새가 코끝을 타고 올라오는 일도 없다.  


나의 여름은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기브앤테이크가 세상의 이치에 따라

편리한 시원함을 얻기위해 싱그러웠던 여름의 추억을 팔아버린 건 아닐까.

다시 시작된 여름.

문득 돌아오지 않은 나의 여름이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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