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기쁨과 슬픔, 희망과 고통이 함께 하는 길이다. 때로는 가까운 사람의 갑작스러운 이별 소식이 모든 감정을 흔들어 놓고,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형제나 가족 사이에도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멀어지는 일이 생긴다. 내게 둘째 오빠와의 이별은 그런 관계의 어려움을 되돌아보게 한 시간이었다.
형제들끼리 서로 잘 지내다가도 말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특히 한 사람이 힘을 과시하거나 자기주장만 내세우면 다른 사람들은 상처를 받기 마련이다. 사소한 오해 하나로도 관계가 점점 멀어지고 대화가 단절되기도 한다. 그러다 사람이 막상 떠나고 나면, 그제야 후회와 참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나 역시 오빠와의 관계에서 그걸 느꼈다. 떠나보낸 후에 "그래도 사랑하길 잘했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깨달음은 축복이고 세상을 더 넓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남을 잘 돕는 형제들인데 오빠를 용서하며,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말이 쉽지, 상처가 깊은 이들이 행동 실천하는 건 힘들었을 것이다. 부담을 주기 싫어 오빠 장례식 준비를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겁도 나고 막막했다. 보호자 역할 하는 걸 알게 된 후 매월 경비까지 일부 지원 해준 내 형제들이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었다.
그동안 최선을 다했지만, 보살핌 과정에서 해결 못 해준 일들도 있다. 오빠와 나눈 짧은 대화들, 그리고 헤어질 때마다 "애들 소식 있나?"라고 물으며 자식을 그리워하던 모습이다. 형제들에게는 냉정했지만, 가족을 향한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깊고 진실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가족 간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돌아보며
둘째 오빠의 장례식에 나이 든 형제들이 달려올 형편이 아니었다. 기대했던 환갑 지난 막내가 90 넘은 장인을 모시고 사는데 밤새 응급실을 두 번이나 왔다 갔다 하다가 막 집에 들어오는 중인데 다시 병원에 가봐야 한단다. 참석 못 할 이유를 듣고 보니 기대가 무너지고 혼자 막막했다. 마침 건강 검진을 끝낸 남편이 들어왔다. 선뜻 차를 대기하며 말없이 앞서 주니 구세주를 만난 듯했다.
불통의 세월이 보여주는 애처로운 모습은 핵가족 시대가 직면하는 사회문제이지 우리 가족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 시부모와 형제를 냉대하고 친정 식구들만 챙겼던 올케는 학교 보내고 성공시킨 동생들에게 배신당하고, 감당할 수 없는 200억 빚만 남긴 채 10년 전 세상을 떠났단다. 지나친 욕심과 갈등은 가정마저 파괴했고, 하루도 평온할 날이 없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