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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 May 03. 2023

할머니에게 세상을 누비는 손녀가 -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납작 복숭아

할머니, 할머니가 떠난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도 울음 많은 손녀는 아직도 가끔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꼭 할머니랑 시장 다니던 7살 어린아이처럼 아직도 가끔 밤에 그렇게 울어.

그렇게 어린 내가 벌써 30대가 되었고, 사는 게 지칠 때가 있더라.

 그런 날에, 문득 할머니의 따듯하고 인자한 미소가 생각이 나서 몇 번을 목련 공원엘 혼자 찾아갔는지 몰라.


할머니, 내가 크면서 할머니한테 해주고 싶은 세상 이야기가 너무 많아. 그래서 문득 생각나는 날에는 그리움을 달래려고 이렇게 글을 써.

오늘 밤은 왜 할머니가 사무치게 생각이 났을까,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글쎄 낮에 갑자기 공기에서 여름 냄새가 나지 뭐야. 그래서 생각이 났나 봐.

할머니가 많이 아팠잖아. 그런데도 유달리 내가 병원에 가면 정신이 또렷했어. 그리고 그날 중 하나가 그렇게 더운 여름날이었어.

할아버지가 깎아온 자두를 할머니 입에 하나씩 넣어줬는데, 다 먹고 나니 할머니가 ’ 네가 먹여주니 더 맛있다.‘라고 방긋방긋 웃지 뭐야.

당연히 봤겠지만 나는 또 속상해서 뒤돌아서 얼마나 가슴을 쳤는지. 병원에 갈 때마다 내가 눈물이 많은 게 너무 싫었어.

그래서 자두를 보면, 여름 냄새가 나면, 자꾸 할머니 생각이 나나 봐.


할머니는 나한테 늘 똑순이라고 했잖아. 똑순이가 이제 이렇게 커서, 정처 없이 세상을 다녀.

할머니는 일생에 두어 번 타본 비행기를 나는 일 년에 몇 번을 타는지, 나는 다른 나라 말도 잘해서 여행도 겁 없이 잘 다니거든.

그런데 어느 날인가, 할머니한테 보여주고 싶은 걸 만났지 뭐야. 그것도 뜬금없이 말레이시아에서 말이야.


일을 너무 많이 해서 몸이 지칠 대로 지쳐 결제한 여행이었어. 발리로 가야 했는데, 직항은 너무 비싸서 쿠알라룸푸르에서 하루를 더 자기로 했거든.

할머니, 그리고 나는 거기서 정말 멋있는 호텔을 예약해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어. 저녁에 시내에 들어오고 나니 배도 고프고, 허기져서 호텔 근처 슈퍼마켓에 갔거든.

근데 거기에 글쎄, 유럽에서 유명하다는 납작 복숭아가 보이는 거야.

유럽에선 몰라서 못 사 먹었던 게, 갑자기 대관절 한국의 겨울인 1월에 눈앞에 보이니까 홀리듯이 그걸 사서 먹었어.

네 알 샀는데 12,000원이었으니까, 그렇게 싼 가격은 아니었던 것 같아.

그래도! 할머니, 나도 이제 어른이라 돈 벌어!


납작 복숭아는 모양은 도나스처럼 납작하고, 속은 말랑한 복숭아인데 아마 그때 먹여줬던 자두보다 훨씬 달고 맛있지 않았을까 싶어.

복숭아 중에 당도가 제일 높다지 뭐야. 과즙도 얼마나 촉촉한지, 나도 처음 먹어 봤는데 정신을 못 차리게 맛있더라.

할머니가 여름 과일을 좋아하잖아. 그래서 그 맛있는 걸 먹는데, 또 할머니 생각이 나더라고.

생긴 게 그리 생겨서, 외국에서는 도넛 복숭아라고도 부르고, UFO복숭아라고도 부른대. 나는 근데 그게 꼭 아기엉덩이 같아.


그 복숭아를 소중하게 몇 점 사들고 방에 올라가서, 친구랑 멋있는 야경을 보면서 와인도 한 잔 시켰어.

‘그래, 이러려고 돈 버는 거야!’를 몇 번 외치면서, 한 잔에 이만 원이나 하는 와인을 시키려고 사실 몇 번을 결심해야 했는지 몰라.

여기는 무슬림 국가라서, 유달리 술이 더 비싸.

할머니, 그래도 나 멋있게 컸지? 이런 사진 보여주면 할머니가 또 나를 엄청 대견스러워할 텐데.

말레이시아가 할머니한테는 생소한 나라겠지만, 생각보다 야경도 훌륭하고 요즘엔 한국사람들이 관광하느라 정말 많이 찾아간대.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꼭 말레이시아는 따로 와보고 싶은 거 있지?


할머니,  나는 이렇게 세상을 누비고 살아.

세상에 할머니랑 같이 보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어디선가 이 순간을 꼭 함께 하기를 바라.


하루가 힘들었던 새벽에, 손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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