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구녕

다시

by Lucy

아휴~ 그놈의 군 시절

홍수 한 번 보지도 못했는데,

틈만 나면 배수로에서 삽질.

그때 퍼붓던 비는 다 어디로 흘러갔을까.

결국은 바다로 갔겠지.


근데 이상하다,

언제부턴가 내리는 이 비는

도무지 빠져나갈 생각이 없다.


왜 이놈의 비는 새어나가지 않는 거지?

마음의 배수로는 대체 어디쯤 있는 걸까.

사실, 어디가 막혔는지 알아도

이젠 삽을 들 힘도 없다.

그저 차오르는 걸 멍하니 바라볼 뿐.


깊이 잠긴 환자,

드라마 속 의사의 한마디가 귀를 찌른다.

"이제 환자의 의지에 달렸습니다."

뭐? 그럼, 못 일어나는 게

진짜 저 사람 탓이란 말이야?


가족, 친구, 이름도 모를 누군가의 손길에

희미한 빛을 따라오는 사람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울컥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애써 외면했던 홍수의 깊이가

어느새 낮아지고 있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이번에 물이 다 빠지고 나면,

나도 내 배수로를 한번 파봐야겠다.


오래전, 소중한 친구의 표정이 떠오른다.

차가운 얼굴로, 그러나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넌 내 숨구멍이야."


이제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