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잠든 깊은 밤, 그날 지하는 심하게 흔들렸다.
또 늦었다.
참 이상하다. 아무리 빨리 일어나 준비해도 항상 수업 시간에 딱 맞게 강의실에 도착하거나, 꼭 5분씩 늦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평소보다 30분 더 일찍 준비해도, 전날 미리 머리를 감고 자도, 항상 크고 작은 일들(이를테면 아침에 택배 기사에게 문자가 와 회수할 상품을 문 앞에 내놓으라고 해서 반품할 물건을 찾는다든지, 오늘 시간표에 해당하는 강의 교재가 책상을 아무리 뒤져봐도 안 보인다든지, 눈썹을 그리는 펜슬이 똑하고 부러져 다시 깎아야 한다든지 따위의 일)이 아침을 번잡스럽게 만들었고, 나는 매번 시간에 쫓기듯 현관을 나서기 일쑤였다.
오늘은 아이라인이 문제였다. 거울을 한껏 깔아 보면서, 입술을 옴씰거리며 아이라인을 그리는데 드르륵하는 알 수 없는 드릴 같은 진동이 느껴져 손을 삐끗하고 말았다. 아씨, 이게 뭐야. 왼쪽 아이라인이 관자놀이까지 올라가 버렸다. 면봉에 리무버를 묻혀 아이라인을 지우는데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서둘러 아이라인을 그리고서 결국 찾지 못한 전공책을 넣지 않은 탓에 홀쭉해진 가방을 메고 집을 나왔다.
언덕 길을 올라 학교 서문을 통과하는데 편의점 앞에 택배 차가 주차돼 있는게 보였다. 그때 불현듯 택배 박스를 문 앞에 두지 않고 그대로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 한심한 문지하. 그럼 그렇지. 이미 돌아가기엔 늦었다. 나는 그저 허벅지에 가해져 오는 압박을 느끼면서 학교에서 '지옥의 언덕'이라 불리는 곳을 오르고 있었다. 그때 머리 위로 엄청난 새 떼가 지나갔다. 날씨가 점점 더 추워져서 철새가 이동하나. 나는 잠시 넋놓고 새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다 새똥을 맞을까봐 겁이나 다시 발걸음 재촉했다. 드디어 수업을 들을 단과대 건물에 진입했다.
강의실은 5층. 엘리베이터는 막 1층을 벗어나 2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무리 급해도 계단으로 올라가는 건 언덕을 2개나 넘은 나에겐 무리다. 왜 내가 수업을 듣는 건물은 학교의 가장 깊숙한 곳에, 또 하필 언덕 위에 있는 걸까.
나는 이미 늦은 수업, 그냥 천천히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기로 한다. 5, 4, 3, 2, 1, 다 왔나 싶은데 B1, B2, B3까지 내려갔다. 이 건물에 지하 3층도 있었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띵동, 하는 도착음이 들렸다.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엘리베이터에 올라 타 5층을 눌렀다. 닫힘, 닫힘, 닫힘. 아, 제발!
▲1……▲2……▲3……조바심을 내며 깜빡거리는 ▲와 일정한 속도로 정직하게 하나씩 올라가는 숫자를 보고 있을 때였다. 덜덜덜 거리면서 엘리베이터 바닥이 떨려왔다. 나는 무방비 상태로 서 있다가 두려움에 모서리 쪽으로 바짝 붙었다. 엘리베이터가 흔들리자 내 턱관절도, 눈알도 덜컹거리며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그러자 이내 디스코 팡팡처럼 좌우로 굉음을 내며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왜 이래 이거. 아아악! 비명이 절로 나왔다.
엘리베이터 내부는 점점 더 심하게 흔들리더니 덜커덩, 하면서 주저앉듯 멈추고 말았다.
쿵! 쿠르르륵 쾅!
나는 온몸에 힘을 바짝 주고 서서 버티다 그만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지듯 넘어졌다.
삐비빅, 삐비빅.
신경질적으로 알람이 울렸다.
아, 뭐야. 꿈이었어?
좌우로 흔들리는 느낌과 쿵, 하고 주저앉는 느낌이 이렇게 생생한데. 나는 분명 그 감각을 신체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꿈이 너무 생생해서 침대에 누워 눈을 반쯤 감은 채 휴대폰으로 ‘엘리베이터에서 지진이 나는 꿈’을 검색했다. 과연 정보의 바다, 지식인이 넘실대는 인터넷 답게 ‘엘리베이터에서 지진 나는 꿈 해몽’이라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생각할 틈도 없이 내 엄지는 반수면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글을 눌렀다.
‘이 꿈은 본인 주위에서 급격한 환경변화가 일어나, 그 변화로 인해 불필요한 심리적인 상처를 입게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꿈입니다.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변화로 인한 상처? 뭔 소리야.
나는 개꿈인데 기분만 잡쳤다 싶어, 휴대폰을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집어 던졌다. 침대에서 일어나려는데 마치 좀 전 꿈속에서처럼 몸이 좌우로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뭐지, 내가 어지러워서 그런가. 잠이 덜 깼나. 나는 균형감각을 상실한 사람처럼 엉거주춤한 자세로 잠시 멈춰있다가 이러다 또 수업에 늦을지도 몰라, 생각하면서 이불을 박차고 저돌적으로 침대를 벗어났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모두 허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