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의 기억 2
몇 년 동안 돌보지 않았던 몸은 여러 가지 신호를 보내왔다. 나는 왜 건강을 자신했을까. 구석구석 아파오기 시작하고 일상생활이 힘들어지니 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건강보다 다른 일들을 우선하고 살았으니 이제는 몸 상태를 살피라는 신호인가. 늘 다짐만 하고 미루어 두었던 운동을 시작했다. 땀 흘리는 운동은 버거우니 좋아하는 산책이나 실컷 하기로 한다. 걷고 또 걸었다.
몇 년 전까지 하루 만보 이상을 훌쩍 걸었던 적도 많았지만 어느 순간 귀찮은 날은 건너뛰고 우울한 날도 건너뛰고 하는 등 핑계를 덧붙이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렇게 건강하던 몸도 조금씩 시들해진 모양이다.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은 뒤 많게는 2만보를 걷는 날도 있으나 걸음수에 집착하지 않고 하루에 두 번씩 산책길을 만들었다. 걷는 것은 좋아하지만 운동이라는 라벨링을 붙여버리니 가끔씩은 몹시도 귀찮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정말 살기 위해 운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몸뚱이가 되었으니..
매일매일 꾸준히 걷기 시작하면서 신기하게도 몸이 보내던 여러 가지 아우성들이 잦아들었다. 예전에는 못 보고 지나쳤던 거리의 풍경들도 눈에 담을 수 있는 여유까지 부릴 수 있게 되었다.
한 해 동안 참 많은 것들을 눈에 담고 기쁘고 반가운 시간을 보냈다. 걷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일상의 기억이다. 어떤 날은 고양이를, 어떤 날은 멋들어진 나무 한 그루를, 또 어떤 날은 흐드러진 이름 모를 꽃들을 만나고 헤어졌다. 때가 되면 또 만날 테니 아쉽지 않았다. 단지 만남이 즐겁고 좋았을 뿐이다.
산책길에 만나게 되는 들풀들을 보며 일상의 평온함을 느낀다.
화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이름 화려한 꽃이 아니어도 어떤가.
구태여 꽃의 이름을 알 수 없어도, 멋들어진 화분에 그럴듯하게 심겨있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지 않은가.
누군가의 하루도 그럴 수 있겠구나 싶다. 조금 뜬금없는 결론이지만.
화려한 파티 같지 않더라도, 단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의 평온함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는지.
돌아가신 아버지가 옆에 있다면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어느 멋들어진 곳에 가서 근사한 식사를 한다거나 해외여행을 간다거나 하는 그런 류의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그간의 안부를 묻고, 긴 시간 대화를 나누고, 적당히 맛있는 음식들을 골고루 늘어놓고,
우리가 나누지 못했던 진심을 나누는 일이면 그 시간이 어떤 류의 대단한 일들에 비할 수 있을까 싶다. 그렇게 당연했던 일상의 시간들을 쌓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