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를 찾는 마침표, 조해진 <환한 나무 꼭대기>

윤고은의 EBS 북카페 북클럽 리뷰

by 북카페


윤고은의 EBS 북카페에서 매주 화요일마다 염승숙 작가와 최동민 작가와 함께 하는 북클럽.

조해진 작가의 <환한 숨>에 수록된 <환한 나무 꼭대기> 리뷰



>> 이야기 하나, <환한 나무 꼭대기>


혜원이 죽었다.


강렬한 여섯 글자로 시작하는 이 소설의 뒷이야기를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 소설의 제목이 <환한 나무 꼭대기>라면 더욱더 그렇다. 혜원은 누구일까? 그는 왜 죽었고, 환한 나무 꼭대기에 걸린 것은 그 죽음의 원인일까, 아니면 결과일까. 독자들은 굵게 찍힌 마침표를 디딤 발 삼아 다음 문장으로 건너간다.


혜원은 오래전, 남편과 이혼을 했다. 얼마 후, 남편은 아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나버렸고 그것이 아들과의 마지막이었다. 혜원은 아들의 주민등록번호로 만든 이메일 계정만 남긴 채 혼자가 되었다.


그런 혜원이 죽었다. 원인은 암이었다. 지독한 통증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낸 혜원. 그런 그를 곁에서 간호한 이는 대학 시절 동창이었던, 하지만 특별히 친하지도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던 강희였다. 강희에 대해 아는 것은 그녀가 출가했다는 소문을 들은 것이 전부였다. 그 굵직한 소문 위로 강희의 삶은 이어졌다. 이혼이라는 사건 뒤로 혜원의 삶이 이어졌듯이.


날마다 그녀의 일부가 하수구로, 하수구의 구정물 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언젠가는 그녀의 모든 것이 그리될 거라는 비관적인 허무에서 도무지 벗어날 길이 없던 시절이었다. 절에 들어간 이유라면, 오직 그뿐이었다.

<환한 나무 꼭대기> 중에서



강희는 스스로 자신의 출가를 설명하지 못했다. 어떤 확실한 물음표를 가지고 떠난 것이 아니었기에 확실한 답을 찾을 수도 없었다. 그랬기에 절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다시 사회로 돌아온 이유 역시 한 줄로 정리할 수 없었다. 다만 언제 끝날지 모를 '여생'이라는 것이 주는 허무가 그 이유 중 하나라는 것은 분명했다.


혜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들과 함께했던 시간은 혜원에게 싱싱한 삶이었다. 하지만 아들이 떠난 후 그의 삶은 여생이 되었고 그 여생은 몹시 길고 지루했다. 삶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면 여생은 살아내는 것을 의미했다.



>> 이야기 둘,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나를 보내지 마>에도 이런 '여생'을 보내는 이들이 등장한다.


이 소설은 인간에게 장기를 기증하는 클론을 만들어내는 세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클론들은 여느 인간과 다르지 않게 생각하고, 인간과 마찬가지로 감정 또한 가지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의 삶은 쌓이는 것이 아닌, 발사를 앞둔 우주선의 그것처럼 0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 속에서 허무를 느끼게 되는 종족은 유한의 삶을 살아가는 클론이 아니라, 오히려 장기기증으로 무한의 여생을 선물받은 인간들이다. 그렇기에 소설 <나를 보내지 마>에선 만들어진 인간 즉, 클론의 생각과 행동들이 더 역동적으로 그려진다.




>> 이야기 셋, 삶의 의미를 찾는 마침표


이제 다시 혜원과 강희의 시간을 들여다보자. 두 사람 앞에 놓인 살아내야 하는 시간. 그 앞에서 혜원은 먼저 이별을 고했다. 남은 것은 강희. 그에게는 마침표가 필요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순환의 쉼표가 아닌, 삶의 의미를 되찾아 줄 하나의 방점이 필요했다. 소설에서는 그 답을 이렇게 보여준다.


너는 암 같은 거에 걸리지 말고, 병원 아닌 데서, 그러니까 아주 멋진 데서 편하게 떠나면 좋겠다, 정확하게.

...... 멋진데 어디?

물으며, 그녀는 혜원의 대답과 상관없이 낯선 도시의 버스 정류장을 혼자 상상했다. 눈이 펑펑 내리는 외진 버스 정류장에서 완전히 눈에 파묻힌 채 잠이 들 듯 임종을 맞는 장면으로 상상은 확장됐다. 그런 상상을 하는 동안 그녀는 한 시절의 허무가 헛것 같았고 사는 것도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환한 나무 꼭대기> 중에서



살아내는 것을 고민하던, 그래서 그 시간을 무한히 길게 느끼던 강희는 혜원과의 대화를 떠올린다. 그리고 삶의 엔딩을 스스로 그려본다. 그것이 강희에게 필요한 마침표였다. 언젠가 덮어야 할 삶의 책. 그 마지막 페이지에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강희는 아직 펼치지 못한 삶의 페이지에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허무 또한 지워낼 수 있었다.


그런 강희의 눈에 비로소 들어온 것. 그것은 바로 이 소설의 제목. 나무 꼭대기에 환하게 걸린 달의 빛이었다. 오늘도, 내일도, 언제까지고 차고 기울 그 환한 빛. 강희는 그 빛을 보고 생각한다. 이 삶이 그 환한 나무 꼭대기를 향한 여정이라면 살아갈 의미가 있으리라. 버스가 오지 않는 밤하늘 아래서 그는 생각한다.



>> 이야기 넷, 달빛 그리고 환한 나무 꼭대기





그녀는 벤치에 누웠고 느티나무 사이로 수면인 양 찰랑거리는 여름밤을 올려다봤다. 나뭇가지 무늬로 조각났지만 전체이면서 영원으로 가닿는 밤이었다. 시간이 좀 더 흐르자 구름 속에 숨어있던 꽉 찬 달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동그란 달은 이곳과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처럼 보였고, 덕분에 그녀는 이 세계가 끝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달빛은 나무 꼭대기부터 환하게 물들였다. 버스는 오지 않았다.

<환한 나무 꼭대기> 중에서



강희는 한 때 구도는 무의미하다는 허무감에 절을 떠나기도 했고, 마치 '통증이라는 손님이 빠져나간 빈 집' 같았던 혜원의 생애 마지막 모습을 목도하기도 했다. 그런 강희가 환한 나무 꼭대기를 올려다보며 이제는 달빛처럼 환해지고 싶은 마음을 품는다. 인간의 욕망은 늘 비극적인 허무에만 가닿는 것이 아니라, 언제고 환해지고 싶은 마음을 양가적으로 품는다고 소설은 말하는 것 같다. 인간은 그런 존재라고.



윤고은 작가, 염승숙 작가, 최동민 작가와 함께하는 <윤고은의 EBS 북카페> 북클럽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