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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래올 Aug 02. 2024

덤으로 주신 딸

덤이자 고명

엄마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나이 50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가끔 말씀하신다.

“아이고 나한테 딸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정말 하나님이 내게 딸을 덤으로 주신 것 같아.”

벌써 수년 전, 아니 수십 년 전부터 들어오던 그 말이 어릴 땐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내 존재에 대한 감사와 내 수고에 대한 칭찬쯤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표현을 곱씹어 봤다. 어쩐지 기쁘지 않은 그 말. 왜 그 말을 들을 때 묘한 기분이 드는지 생각해 봤다. ‘덤으로 얻은 딸’, ‘덤으로 주신 딸’, ‘덤’. 그러다 생각했다. 아 맞다. 나는 엄마에게 메인이 아닌 덤이지. 맞아 평생 그랬지. 오빠 사랑이 지극한 엄마에게 그저 나는 없어도 크게 상관이 없는, 왜곡된 표현일지 모르나 있으면 조금 더 편리하기는 한 그런 존재였지.


4년 전쯤, 그러니까 코로나가 시작될 무렵에 엄마는 갑자기 신장에 이상이 생겼다.

무릎 아프고 감기 걸리고 해서 중복해 먹던 약이 신장에 영향을 준건지 어쩐 건지 지금도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온몸이 많이 부었다. 가장 빠르게 예약할 수 있는 대학병원에 예약을 하고 엄마를 모시고 갔더니 사구체 여과율이 9 란다. 그 수치는 당장 신장 투석을 요하는 수치라고 한다. (그때 신장과 관련된 공부를 엄청 했다.) 그 길로 입원을 하고 이것저것 검사를 하면서 상황을 지켜봤다. 그동안 말로만 듣던 ‘투석’이 뭔지도 그때 자세히 알게 되었고, 투석을 받으며 일상을 산다는 게 어떤 건지, 투석을 받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 지도 알게 되었다. 레지던트 선생님은 수치가 너무 안 좋으니 당장이라도 투석을 시작하자 했고, 주치의 선생님은 점차 나빠진 게 아니라 갑자기 단기간에 나빠진 걸로 보이니 일단 치료(?)를 하며 지켜보자 하셨다. 매일 아침 피검사를 하는데 며칠 동안 수치에 변화가 없었다. 내 눈으로 보기에도 엄마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엄마가 입원해 있는 병원까지는 차로 2~3시간 거리. 매일 오고 갈 순 없고, 어느 날은 병원에서 자고, 어느 날은 집에 오며 그렇게 여러 날을 보냈다. 내가 그렇게 오가는 동안 아이들 방학이었는데 세 아이 케어는 오롯이 남편의 몫이 되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변화가 없던 사구체 여과율이 9에서 15로 올랐다. 15는 여전히 투석을 요하는 수치이지만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은 30. 며칠 동안 수치가 점차 오르고 붓기도 가라앉았다. 3주 정도 입원했고, 퇴원할 때는 사구체 여과율 59까지 올랐다. 투석을 하게 될 경우를 대비해 입원해 있는 동안 동정맥루 수술까지 받았었는데 투석을 전혀 필요하지 않은 상태로 퇴원하게 된 것이다. 퇴원과 함께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와 일주일 가량 지내시고, 외래 진료받으며 엄마집으로 가셨다.


3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 동안 나는 정말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먼 거리 오가느라, 병원 지키느라, 옆에서 간호하느라 몸이 쉽지 않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너 없었으면 어쩔 뻔했니?”라는 말을 거짓말 안 보태고 수십 번을 들은 것 같다. 듣기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라는데 때때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내겐 부담이었다. 외동딸도 아닌 내가 모든 짐을 떠안는 기분, 그걸 강조 내지는 강요하시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짐이라고 하면 너무 몹쓸 딸 같지만 그 무섭고 무거운 상황을 온전히 나 혼자 싸우고 짊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그걸 엄마고 오빠고 당연히 여기는 것 같아서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나 모른다. 병원 복도 한구석에서 내 얘기 알아들어줄 어릴 적 같이 자란 언니에게 하소연하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나이가 이 만큼 들고 내 가정 꾸리고 사니 당연한 걸까.

친정이 내 쉴 곳이 아니더라. 지지고 볶고 아이들과 정신없이 보내는 바로 여기 우리 집이 내 마음 가장 편한 곳이다. 나를 ‘나’로 가장 인정해 주는 곳, 내가 온전히 ‘나’로 살 수 있는 바로 여기가 내 일터이자 쉼터이다. ‘덤’이 아니라, 음식에 그저 멋을 내기 위해 올라가는 ‘고명’이 아니라 내가 메인이 되는 곳 바로 여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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