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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 그와 갱년기이고 싶은 그녀

갱년기 그게 뭔데 이리 힘들게 하니?

by 그림책미인 앨리

"당신, 또 울어?"

붉어진 눈시울 사이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은 본 그녀가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야. 우는 연기 중이야. 봐, 금방 그치지." 하며 어설픈 웃음으로 그는 마음을 감췄다.

언제부터 그는 텔레비전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혼자 울다가 웃는 날이 잦아졌다.

다른 집은 아내가 그런 경우가 많다고 하던데, 바뀐 기분이 든 건 왜일까?

둘째를 낳고 난 후 그녀는 체질이 달라졌다. 아니, 이상해졌다.

손과 발만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겨울은 상관없지만 여름날은 정말이지 몸에 불이 나는 것 같아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별거 아닌 걸 보고 화를 낸다고 말하는 가족들은 그녀에게 갱년기라면서 놀리는 듯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인정할 수 없었다. 뭐 생리가 다가오는 날에는 짜증이 올라가는 건 당연했지만 특별히 얼굴이 붉혀지거나 감정 기복이 심하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의 행동이 갱년기에 가까웠다.

방송이나 언론에서는 남자보다 여가 갱년기에 포커스를 두기 때문에 '갱년기'라고 하면 당연히 여자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남자에게도 갱년기는 온다. 다만 여자보다 많은 증상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혹은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가부장시대이다 보니 숨기기 때문에 잘 모를 뿐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예민했다. 생각이 많았고, 흘러 내뱉은 말에도 곰곰이 생각하는 타입이었다. 그래서인지 밥을 많이 먹어도 살이 붙을 겨를이 없었다. 결혼 예복이 50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도 몸에 맞다고 하면 말 다한 것이 아닐까. 평일에는 곯아떨어져 자는 편인데 주말에는 희한하게 잠을 자지 않으려 한다.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로. 그렇다고 그가 특별히 뭐 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냥 시간 나면 술 마시는 게 다다.

감정기복이 심해진 그로 인해 아이들과 그녀는 그를 눈치 보기 시작했다.

불편했다. 같은 일이 발생해도 어떤 경우에는 그냥 넘어갔지만, 어떤 경우에는 불같이 화를 냈다.

그래서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아이들은 스터디카페나 학원으로 가면 그만이었지만 홀로 남은 그녀는 답답함에 미칠 것 같았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까지 있으니 폭발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실 그녀는 갱년기이고 싶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행동도 해보고 소리도 질러보고 그녀가 아닌 다른 그녀를 보여주고 싶었다. '나 이렇게 아파하고 있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도 딱히 임신 증세가 없어 그가 편안하게 보낸 것이 야속했다. 갱년기로 그녀의 아픔을 바라봐 주길 바랐다. 이제는 그만 생각하지 말고 그녀 입장도 좀 생각하라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기회는 그녀가 아닌 그가 먼저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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