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정의가 존재하는 그림책 이야기
요즘 판결하는 내용을 보면 씁쓸하다.
정의를 수호해야 하는 판사나 검사가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하는지 의문스럽다.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배운 정의는 어디로 갔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오늘은 제헌절이다. 제헌절은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의 첫 헌법이 공포된 것을 기념하여 만들어졌으며, 이날은 대한민국이 법치국가로서의 기틀을 마련한 중요한 날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국경일이라고 하니, 대뜸 왜 빨간 날이 아니냐며 야단이었다. 과연 학교에서 국경일을 가르쳐주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7월 17일을 제헌절로 정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날은 조선왕조 건국일(1392년 7월 17일)과 같은 날이다. 당시 헌법 제정자들은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출발이 과거 역사와도 연결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이날을 선택했다고 한다.
제헌절은 헌법 제정을 통해 대한민국이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국가로서 출발했음을 기념한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 민주주의의 가치, 그리고 국가의 기본 틀을 정한 날이다. 입법·행정·사법의 삼권분립 체계가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제헌절에 관한 그림책은 특별히 없다. 그럼 어떤 주제로 접근하면 좋을까 고민한 끝에 '법'에 대한 그림책을 찾아 큐레이션 한다.
1. 정의와 생명을 지키는 수호신 해치
(1) 해치: 임어진_글, 오치근_그림 / 도토리숲 2021.11.13. / 우리 민속 설화
덧지와 책표지가 동일한 그림책이다. 우리나라 민속 설화로 상상 동물 이야기다.
“정의로운 뿔로 나쁜 것을 물리치고, 약한 이를 지켜주는 수호신!”
해치는 말없이 조용하지만, 언제나 옳고 그름을 바르게 판단하고, 착한 이를 돕고, 나쁜 이를 막아주는 든든한 존재다. 그런 해치의 신성한 모습과 상징성을 옛 설화와 민화 속 해치의 본모습을 생생하게 되살렸다.
옛이야기를 듣듯, 할머니가 들려주는 것처럼 편안하게 읽힌다. 부리부리한 눈과 강렬한 뿔은 그른 일을 했을 때 응징하는 해치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자연스럽게 정의, 보호, 생명 존중 가치를 익힌다. 더불어 지금 해치를 찾아보는 활동으로 해치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2) 해치가 괴물 사형제: 정하섭 글, 한병호 그림 / 길벗어린이 1998.07.15.
'해치'라는 같은 주인공으로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그림책이다.『해치 – 정의와 생명을 지키는 수호신』해치의 전통적인 의미와 상징성을 담았다면,『해치와 괴물 사형제』는 해치를 주인공으로 한 서사적 모험 이야기로 재탄생시킨 창작 그림책이다.
“해가 사라지면 세상은 어둠 속에 잠기겠지요. 그래서 해치는 해를 지키기로 했어요.”
정의와 생명을 지키는 수호신 ‘해치’가 땅속 나라에서 올라온 무시무시한 괴물 사형제와 맞서 싸워 세상의 빛, 해를 지켜내는 이야기이다.
오래전, 해가 사라져 세상이 어둠에 잠기게 된다. 모두들 두려워하고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조용하고 침착한 수호신 해치가 나선다. 땅속 나라에 사는 괴물 사형제가 해를 훔쳐 갔다는 것!
괴물들은 저마다 강한 힘을 지닌 존재로, 첫째는 몸집이 크고 힘이 세며 둘째는 바람처럼 빠르고 셋째는 독을 뿜고 넷째는 어둠을 퍼뜨리는 능력이 있다. 해치는 과연 어떻게 그들을 상대할까?
전통 옛이야기 형식에 따라 도입-갈등-모험-해결-교훈으로 구성된다. 무엇보다 해치가 힘보다는 지혜와 침착함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이 인상적인 그림책이다.
2. 무조건 금지하는 법이 옳을까?
(1) 국수를 금지하는 법이 생긴다고? : 제이콥 크레이머_글, K-파이 스틸_그림, 윤영 옮김 /
그린북 2023. 01.23. / 원제 : Noodlephant (2018년)
그림책 『국수를 금지하는 법이 생긴다고?』는 엉뚱하고 유쾌한 이야기 속에 자유, 평등, 정의, 법의 의미를 담아낸 아주 특별한 그림책이다. 법이 무엇인지 누가 만들었고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며 법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나눌 수 있는 책이다.
평화롭고 맛있는 국수 냄새가 가득한 루마을에는 국수를 사랑하는 코끼리, '국수광코끼리'가 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캥거루들만 국수를 먹을 수 있다는 이상한 법이 생겨난다. 루마을을 다스리는 캥거루들이 자신들만을 위해 만든 법이었다. 국수광코끼리는 불공평하다는 생각에 친구들과 함께 척척 마는 국수 기계를 만든다. 다시 열린 국수 잔치! 하지만 캥거루들이 나타나 국수 잔치를 방해한다. 이에 국수광코끼리와 친구들은 진짜 정의로운 세상, 평등한 법을 위해 행동에 나서게 된다.
국수 한 그릇으로 시작된 유쾌한 항의! 법과 정의를 이야기하는 최고의 그림책이라 말할 수 있다.
(2) 방귀 혁명: 최윤혜 글, 그림 / 시공주니어 2021.02.25.
『방귀 혁명』은 웃음이 터지는 방귀 이야기 속에 자유와 인권, 저항과 용기라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은, 유쾌하고 통쾌한 사회 풍자 그림책이다.
‘방귀 금지법’이라는 기발한 발상에서 시작된 이 작품은 어느 날 갑자기 ‘방귀’가 금지된 극한의 상황을 설정하여 잘못된 사회 법규를 깨는 한 인물을 그림으로써 자연스럽게 인권과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삶을 규제하고 억압하는 사회 구조에 일침을 가하고, 한 개인의 용기가 도화선이 되어 사회를 변화시키는 큰 힘으로 발휘되는 순간을 시종일관 박진감 넘치게 그려 내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방귀 금지법’이 생겨난다. 방귀를 뀌면 체포되는 세상이다. 모두가 숨죽인 채 방귀를 참으며 배를 움켜쥐고 괴로워하지만, 단 한 사람 숙이 씨는 참을 수가 없었다. 숙이 씨는 “푸쉬이이익!” 상쾌한 방귀를 시원하게 뀌며 말한다. “느껴 봐요! 이 시원함! 들어 봐요! 이 경쾌함!”
그 순간부터 모두가 조금씩 용기를 내기 시작한다.
책을 통해 알게 된다. 무조건 금지하는 법이 과연 옳은 것인지? 법이란 무엇이고 부당한 법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기발한 상상력과 강렬한 시각으로 들려준다.
3. 판사라고 항상 옳을까?
(1) 어리석은 판사: 하브 제마크 글, 마고 제마크 그림, 장미란 옮김 / 시공주니어 2004. 03.15. /
원제 : The Judge (1969년)
『어리석은 판사』는 권위, 고집, 진실을 외면하는 어리석음에 대해 풍자적으로 이야기한다.
한 마을에 자신만 옳다고 믿는 완고하고 독선적인 판사가 있었다. 어느 날, 죄수 하나가 외칩니다:
“판사님! 무시무시한 괴물이 다가오고 있어요! 정말이에요!” 하지만 판사는 코웃음을 치며 이렇게 말한다.
“허튼소리! 당장 감옥에 처넣어라!”
그다음 죄수도, 또 그다음 죄수도 비슷한 말을 한다. 괴물이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모습이 점점 더 구체적 해지지만, 판사는 끝내 믿지 않고, 말한 사람마다
“감옥에 처넣어라!”
“열쇠를 버려라!”
“거짓말쟁이, 머저리, 당장 끌어내라!” 하고 윽박지르기만 한다. 그러던 어느 순간—죄수들이 말하던 괴물이 진짜로 판사 앞에 나타난다. 그제야 판사는 깜짝 놀라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어리석은 판사』는 권위자의 독단과 고집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사실과 진실을 외면한 결과는 결국 스스로 감당하게 된다는 걸 말한다. 아이들에게는 비판적 사고와 타인의 말을 듣는 자세를, 어른들에게는 권력의 책임감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풍자적 메시지가 담겨 있는 그림책이다.
(2) 나는 무죄다 : 다비데 오레키오_글, 마라 체리_그림, 차병직 옮김 / 불광출판사 2025.03.10.
원제 : L’isola di Kalief
2021 화이트 레이븐즈 추천 도서
2025 프레미오 안데르센상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 수상작
『나는 무죄다』는 한 평범한 흑인 소년의 실화를 통해 사법체계의 문제점, 인권,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를 깊이 있게 다룬 강력한 인권 그림책이다.
맞설 줄 아는 용기, 불합리함과 차별 속에서 ‘정의’를 외치다
열여섯 살 소년 칼리프는 친구와 집에 가던 중, 하지도 않은 가방 절도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다.
그는 결백을 주장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고, 보석금을 낼 수 없어 재판도 받지 못한 채 교도소에 수감된다. 교도소 안에서 폭력과 차별에 시달리며 2년 가까이 독방에 갇히는 고통을 겪은 뒤, 3년 만에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다.
하지만 이미 소년의 삶은 무너졌고, 결국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칼리프의 비극은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고, 청소년 독방 감금 금지와 교도소 개혁 등 제도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 책은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 맞서 끝까지 목소리를 낸 한 소년의 용기와 그로 인해 바뀐 세상을 이야기한다.
『나는 무죄다』는 단순한 슬픔이 아닌, 용기와 변화를 전하는 책이다.
칼리프의 이름은 이제 하나의 상징이 되었고, 우리는 그 상징 안에서 지금의 자유와 정의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책 속 주인공이 열여섯 살 소년인 만큼 이 책은 초등 6학년부터 청소년이 읽으면 좋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책이기에 내용이 무겁고 깊이 있으므로, 어느 정도 사회적 이해력과 감정 이입 능력이 생긴 어린이에게 적합하다.
상식이 통하는 나라, 정의가 존재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고 배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어른들은 알고 있다.
과연 지금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에게 법은 모든 사람들이 지켜야 하고 보호받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교육현장에서 조차 제헌절이 무슨 날인지 가르쳐 주지 않는데, 다시 이 날을 공휴일로 지정한다고 과연 생각을 할지 의문스럽다. 빨간 날이라고 그저 놀러 갈 생각에 들뜨지 않을까.
왠지 씁쓸해지는 제헌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