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인이 필요해요!
하얗게 밤을 불태웠다. 베개에 누우면 곧장 안드로메다로 가던 내가 긴장감을 최고로 높인 채 잘 듯 말 듯 밤을 보냈다. 세 시간 간격으로 간호사가 엄마 상태를 확인했다. ‘몇 시가 됐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화면을 켰지만, 섬광처럼 번쩍이는 불빛이 엄마 잠을 깨울까 조심스러웠다. 예민하던 엄마는 “일어났니? 몇 시고? 아파서 한숨도 못 잤다.” 하며 울먹거렸다. 수업 준비로 잠깐 집에 다녀와야 했다. 혼자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출근 준비해서 온다고 말하고 병실을 나섰다. 병원 아침 식사 시간은 오전 7시! 그 시간 안에 병원에 다시 도착해야 엄마 식사를 챙겨줄 수 있었다.
오전 5시 20분. 한적한 도로는 내 마음을 아는지 차들이 쌩쌩 달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콜택시를 예약하고 병원 입구에서 택시를 기다렸다. 지금 처한 상황이 내 일 같지 않았다. 눈물이 나오지도 않았다. 빨리 집에 가서 출근 준비하고 병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삐삐 삑 드르륵. 우렁찬 벨 소리가 가족들 단잠을 깨울까 봐 도둑고양이처럼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욕실로 향했다. 뜨거운 물로 몽롱한 내 정신을 깨우고 싶었다. 병실에 필요한 세면도구와 수저, 물통을 챙기고, 오늘 수업 내용을 프린트로 출력했다. 6시가 넘자 누군가가 일어났다. “당신이에요?”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나를 맞이한 남편은 내가 온 걸 확인했다. “장모님은 괜찮으신가요?” “괜찮다고 할 수는 없어요. 당분간 엄마한테 집중해야 하니 아이들 좀 돌봐주세요. 음식도 알아서 챙겨 먹으면 좋겠어요. 미안해요.”라는 말 외에는 당장 할 수 있는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침잠이 많은 큰 아이를 깨우고 매끈한 옷으로 갈아입고 가방을 메며 “다녀올게요.”라는 말만 남긴 채 다시 현관문을 나섰다. 20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콜택시를 다시 불렀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원무과 접수 담당자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요함 속에 환자 카드를 엘리베이터에 대었다. 입원실에 갈 때는 환자카드로만 출입이 가능했다. 간호사들에게 인사하고 병실로 향했다. 식사 5분 전에 도착해 엄마 식사를 도울 수 있었다. 혼자 계실 때는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았는데, 입원 중에는 억지로라도 식사를 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앉기조차 힘들어서일까. 입맛이 없어서일까. 엄마는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아야 했기에 한 숟가락이라도 더 드시게 달랬다. 양쪽 엉덩이와 생식기 쪽을 화상 입었기에 속옷을 입지 못한 상태였다. 무엇보다 급한 건 간병이었다. 내가 있을 때는 간병을 한다지만, 내가 없는 시간에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엄마에게 다가가 간병인을 들이자고 말했다. 간호사도 보호자가 없을 때는 간병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엄마는 단칼에 거절했다. 대쪽 같은 엄마 성격을 알기에 다그쳐봤자 소용없었다. 일단은 한 발 물러났다. 밥 먹은 숟가락을 씻고 물통에 물을 채우며 아는 지인에게 '간병인'에 대해 알아봤다. 내가 없는 시간에만 간병인이 필요한데 그렇게는 구하기가 힘들고, 병원에 알아보라는 말에 간호사에게 살짝 물어보았다. 병원에 간병인 관리자가 상주하고 있으니 연락처를 남기면 연락이 갈 거라고 했다. '여사님'으로 통하는 그분은 지금 병원에 있다고 했다.
10시가 넘자 간호사가 엄마를 불렀다. 휠체어에 담요를 하나 깔고 다리를 올린 후 천천히 2층으로 향해 병실에서 나왔다. 링거를 세 개나 꼽고 있어 움직일 때 많이 거추장스러웠다. 이 시간대에 입원 환자들이 치료받는지 치료실 앞에는 환자들로 가득 찼다. 긴장된 표정으로 물로 목을 축인 엄마는 치료실 앞을 지켰다. 엄마 이름이 불리고, 고통의 문으로 들어갔다. 웬만해서는 고함을 지르지 않는 엄마가 “아! 아아아 아파요. 아파 아파.”하며 힘들어했다. 작지만 커다란 몸집의 대장 치료사와 보조 간호사들이 보였고, 담당 선생님이 돌아가는 의자에 앉아 모니터 화면을 보며 체크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보호자는 잠시 나가세요.” 엄마가 괴로워하는 걸 보지 않아 다행인 건지, 무거운 발걸음이면서도 길게 한숨이 나왔다.
10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보호자 들어오세요.”라는 말과 함께 담당 의사는 엄마의 상태를 직접 보여줬다. 어디가 심각한지 이야기하며 최악의 경우 발등은 이식 수술을 할 수도 있지만, 나이가 있어 최대한 안 하는 방향으로 지켜보자고 했다. 또한 실비보험을 들었는지 확인하며 없다고 하자 거기에 맞게 최대한 저렴한 연고로 사용해 기다려 보자고 했다. 주말, 공휴일 상관없이 치료는 매일 하니 보호자가 잘 챙기라고 했다.
고통의 맛과 치욕스러운 상황에 화가 난 엄마는 커다란 눈 사이로 눈물만 떨어뜨렸다.
11시가 넘어 병실에 돌아오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고 나 또한 일하는 시간이 다가와 나가야만 했다. 내가 없는 동안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지만 엄마는 변함없이 혼자서 할 수 있다고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고 했다. 침대 옆에 벨이 있으니 간호사한테 부탁하면 된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질긴 고집으로 유명한 엄마였기에,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간병인 생각을 해보라고만 말하고 병실을 나섰다. 그리고 간호사 한 분을 붙잡고 아직 간병인을 구하지 못했으니 내가 없을 때만 신경 좀 써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도 일하는 곳이 병원에서 많이 멀지 않았다. 어떻게 수업했는지 생각나지 않고 오로지 마치고 나면 빨리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어떤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다시 병실로 향하는 사이 모르는 번호로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병원에 간병인 문의하셨죠? 제가 어머니 상태를 봤어요. 그쪽도 봤고요. 기저귀는 찼나요?” “아, 네. 아니요. 기저귀를 거부하셔서요.” “에고 기저귀 차야지 소변을 어떻게 보려 해요?” “네. 참, 제가 말한 시간에 간병인을 구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그건 힘들어요. 하루를 기준으로 고용하기 때문에 시간별로, 특히 보호자가 원하는 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간병인은 없어요.” “그렇군요. 비용이 얼마나 들까요?” “하루 15만 원 정도 생각하면 돼요.” “네. 알겠습니다. 어머니와 상의한 후 연락 드리겠습니다.”
통화가 끝나고 나도 모르게 15만 원이라는 숫자에 7일, 30일, 90일이라는 시간을 곱하기 시작했다.
실비보험 하나 없는 상태에서 간병인비까지 더해지자, 당장의 고통보다 앞으로의 막막함이 앞을 캄캄하게 덮쳤다. 뻔히 사는 사정을 아는 남동생에게는 손을 내밀 수 없었고, 타국에서 일하는 여동생에게 이 짐을 나누자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오로지 나의 '출근'이자 '숙제'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복잡한 심정으로 병실 근처에 왔을 때, 간병인처럼 보이는 분이 반대편에서 걸어오셨다. 당신이었다고 설명하며 생각해 보고 연락 달라고 했다.
여전히 엄마는 요지부동이었고, 나는 엄마 고집을 꺾지 못했다.
내일은 또 어떻게 하루를 보내야만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