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부산하면 ‘바다’를 떠올린다. 바다는 모든 걸 품어준다. 그래서일까, 부산 사하구 감천1동을 걷는다는 것은, 두 개의 시간이 교차하는 경계를 밟는 일이다. 나의 동네는 짠내 나는 부두와 낡은 공장이라는 거대한 뼈대 위에, 젊음의 활기와 노년의 묵직함이 뚜렷하게 나뉜 채 삶을 이어가는 섬세한 이중주와 같다.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는 감천문화마을(감천2동)의 다채로운 풍경 뒤편, 감천1동의 골목은 조용히 서로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 이 에세이는 바로 이 엇갈리는 두 풍경 속에서, 서로 다른 세대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야기하려 한다.
감천1동의 동쪽, 감천삼거리 방면은 빠르게 감기는 테이프처럼 활력이 넘친다. 이곳은 상대적으로 평지에 가깝고 학교와 상권이 형성되어 있어, 비교적 최근 이주해 온 젊은 세대의 주 무대다. 특히 인근 학교 주변에는 하교하는 청소년들이 버스 정류장을 중심으로 시끌벅적하며, 대형마트 '탑마트'가 중심에 있어 늘 사람들로 붐빈다. 또한 학교 주변과 버스 정류장 근처에는 하나 건너 새로 생긴 커피숍들이 젊은 사람들을 유혹한다. 새로 들어선 감각적인 카페에는 젊은 사람과 어르신들이 소통하는 공간이 된다.
이 구역의 공기는 젊은 사람 발걸음처럼 경쾌하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의 주된 화제는 아이들의 교육과 동네의 변화, 그리고 새로운 주택의 리모델링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이들은 감천1동을 과거의 피난 정착지가 아닌, '내 아이와 함께 살아갈 미래의 터전'으로 적극적으로 설계하고 투자하는 세대다. 그들이 낡은 주택의 허름한 외벽을 걷어내고 밝은 색 페인트를 칠할 때, 그것은 단순한 인테리어가 아니라, 이 동네에 새로운 시간을 새겨 넣는 행위처럼 보인다. 낡은 주택가에서도 간간이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늦은 시간까지 밝게 켜져 있는 학원 불빛이 이 구역의 현재와 미래를 증명한다.
반면, 서쪽의 감천사거리 방향, 감천2동과 경계를 이루는 가파른 산자락의 골목은 오래된 레코드판처럼 느리고 깊은 울림을 준다. 이곳은 삶의 고비들을 묵묵히 견뎌낸 시니어들의 주 무대이며, 동네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곳이다.
이곳 골목의 가장 흔한 풍경은 어디론가 바삐 움직이는 어르신들의 모습이다. 그들의 발걸음은 여전히 부지런하다. 시장이나 병원, 약국으로 가고 나오는 이들의 모습이 잦으며, 때로는 낮은 담장 아래 쭈그리고 앉아 콩을 다듬거나, 주택 틈틈이 마련된 작은 텃밭에 반려 식물이나 농작물을 키우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이 나누는 짧은 대화 속에는, 부산의 피난 시절, 감천항 공장의 거친 먼지를 마시며 가족을 부양했던 깊은 시간의 무게가 담겨 있다. 신축 아파트 사이의 낡은 집들은 단순히 주거 공간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연대기 그 자체이다. 그들에게 감천1동은 '떠나지 못한 곳'이 아니라, 삶의 모든 서사가 기록된 '가장 안전하고 익숙한 공간'다. 이곳의 시간은 느리게 가지만, 그 속에는 절대 가볍지 않은 단단한 연륜과 공동체의 정이 흐른다.
감천1동은 이처럼 팽팽하게 대비되는 두 개의 시간을 품고 있다. 하지만 이 대비는 충돌이 아닌 공존의 이어진다. 젊은 부부가 새로 이사 온 윗집에서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 시니어 세대가 사는 아랫집에서는 혹여 소음이 피해를 주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동시에 젊은 부모들은 어려운 일은 가끔 어르신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인사를 나누며 낯선 환경에 연착륙하려 노력한다.
감천1동은 화려한 관광지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지만, 이 두 개의 시간과 세대가 엮어내는 실타래야말로 가장 중요한 부산의 이야기이다. 잿빛 항구의 현실 위에, 젊음의 분홍빛 희망과 노년의 묵직한 삶의 색깔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이 공존 속에서 함께 걸어간다.(1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