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내 학력 위조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고백

by 홍승주

졸업 전 어느 공모전에 응모하였던 글입니다. 아쉽게도 공모전에서는 입상을 하지 못하여 깜빡 잊고 있었던 글인데 브런치 서랍에서 우연히 발견했네요. 알량한 고백을 졸업 전에 하고 싶었는데, 지금이라도 글을 올립니다.


1.png 키우던 고양이가 제법 많이 컸습니다.


“거기 나오면 취업은 할 수 있어?”

지방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내가 군대에서 만난 한 명문대생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치욕적이었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은 아니었다. 카투사로 군생활을 한 나는 군부대 내의 명문대생들로부터 그러한 뉘앙스의 말을 수없이 많이 들었다. 사회에 나가보면 세상살이가 쉽지 않을 거라 훈수를 두는 사람도 있었다. 나보다 고작 한 살이 많은 사람의 말이었다. 건방진 말이었지만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


절치부심이라고 했던가. 전역을 한 후 나는 이 악물고 수능 시험을 준비하여 흔히들 이야기하는 명문대학교에 입학했다. 이제는 무시당하고 살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깔보는 사람들은 있었다. 이전에 지방의 한 대학교에서 공부를 했었다 말을 하니 태도가 바뀌는 것이다. 괜스레 얕잡아 보는 사람도 있었다. 당연히 나의 성적이 좋지 않을 거라 단정하고 선심 쓰듯 말하며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입학 후 거의 모든 과목에서 가장 높은 성적을 받고 있었던 터라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 후로 나는 내 배경을 숨겨버렸다.

“우리 학교에서 다른 전공을 공부하다가 적성에 안 맞아서 군대를 갔다 온 후에 그냥 수능을 다시 쳐서 전공을 바꾼 거야.”

그렇게 내 학력 위조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첫 번째 대학교를 졸업한 후 운이 좋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편입학하게 되었다. 이곳에 다다르니 나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진 게 느껴졌다. 근거를 가지고 한 말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내 말을 곧잘 믿었다. 학력이 바뀌니 사람도 바뀌었다 생각하는 것 같았다. 괘씸했지만 내심 편하기도 했다. 물론 의과대학에서도 나의 학력 위조는 계속되었다. 구구절절 말하기도 귀찮거니와, 지방에 있는 대학교에 잠깐 몸 담았다는 이유로 선입견을 가지는 일에 진절머리가 낫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 학력 위조의 역사는 이제 어언 8년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의과대학 졸업을 목전에 앞둔 지금, 나는 그 길었던 부질없는 거짓말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학력으로 한 사람의 모든 것을 평가하려고 달려드는 우리 사회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러한 사회에 이끌려갈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나의 자아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 곳의 학교를 다니며 분명하게 깨달은 사실이 있다. 학력은 공부를 잘하는 것과 그나마 조금 관련이 있다는 것, 하지만 공부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 중 한 가지에 불과하다는 것, 마지막으로 학력은 행복, 현명함, 올바름, 그리고 존경받을 만함과는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


참 오랜 시간이었다. 무슨 대단한 사실이라고 이 한 마디를 꺼내는 데에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인지. 그래도 졸업 전에 알량한 고백이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여러분, 저 사실은 ‘지방대’ 다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