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상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up L Oct 03. 2024

일단 쓰자

쓰면서 재미있으면 그만

학창 시절에 글쓰기에 대해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으면 늘 나오는 이야기가 '대상을 정해 두고 써라.'였다. 그러면서 예시가 알맞지 않은 대상에게 해당 대상이 전혀 관심이 없을 것 같은 글을 읽게 하는 경우들이 올라온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올바른 비유일까?
무엇보다 나는 '대상에게 알맞지 않은 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알 수가 없다. 글 읽는 대상이라는 말은 너무 엘리트주의적이다. 그 글을 선택할 사람은 저자께서 친히 정해주시는 간택된 특혜자가 아니라 그냥 독자일 뿐이다.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글이라면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정보를 더 준다는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이라는 것이 써지고 나면 읽혀야 읽는데, 읽힌다는 것은 대화할 때처럼 실시간으로 소화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면 관심이 없는 대상에게 하는 말처럼 쓰는 글이란 무엇을 뜻하는 걸까? 내 생각엔 그런 건 없다. 불가능한 일이다.
책에 있어서 관심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에 대한 관심, 저자에 대한 관심, 재미에 대한 관심이다.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에 대한 관심은, 투자정보나 과학 지식 같은 것도 있을 수 있지만 소설의 스토리도 해당된다. 시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도 모두 엄밀히 말해 정보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공식이나 명제처럼 한 문장으로 온전히 전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일 뿐이다. 저자에 대한 관심은, 저자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구입한 책에 해당한다. 어떤 내용인지에 관심이 없을 수는 없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이 저자 이름만 보고 구입하는 책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마지막으로 재미로 글을 읽는 것은, 반드시 책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런저런 글들을 인터넷에서 시간을 낭비해 가며 읽는 것은 순수한 재미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해당 지식이 내가 원하던 것도 아니었을 수 있고, 새롭게 알게 된 것이기는 하지만 평소에 관심이 전혀 없었던 주제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세상에 그런 분야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글을 읽을 때의 순수한 재미로 글을 읽고 뭔가를 느끼거나 뭔가를 깨닫게 되는 일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다.
글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것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은 나는, 무엇 때문에 글을 쓰고 싶은 걸까 하고 가끔 생각해 보곤 했다. 그래서 언젠가 여기에 대해서도 글을 써볼까 했지만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았다. 글을 쓰는 것이 좋아서 글을 쓰지만, 그렇게 쓴 글을 어떤 관점에서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곳에 게시해 두는 것인지, 어쩌면 바람 부는 문지방에 실로 묶어 매달아 놓기만 했을 뿐, 실제로는 읽히거나 말거나 신경을 쓰지 않은 건 아닐까, 아니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내 글이 읽힐 이유도 알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그때와 지금은 조금 다른 것이, 그때는 '순수한 재미로 인해 글을 읽는다는 것'이라는 경우의 수를 아직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재미가 있다고 해도 '새로운 것을 깨닫게 되는 재미', '읽으면서 기분이 좋아져서 느끼는 재미', '나 말고도 같은 글을 읽는 사람이 많으리라는 데에서 오는 안도감' 이런 것들이 합쳐져서 느끼는 감정이리라고 가볍게 생각했을 뿐, 내 글 역시 그렇게 가볍게 읽힐 수 있다는 관점에서는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내 생각의 흐름은, 나는 글을 쓰는 것이 재미있어서 계속해서 글을 쓰는데, 그 재미는 수다를 떨 때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그런 재미이고 그러면 어차피 듣는 사람도 맞장구를 치면서 '대화'를 하면 재미를 느끼게 될 텐데, 그때 느끼는 재미가 바로 내 글을 읽을 때 느끼는 재미여야 한다는 선에서 계속 머물고 있었다.
그렇지만 재미 자체가 글을 읽는 목적이 될 수도 있다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해서 블로그를 운영할 때도 어떤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했고, 노트에 글을 쓸 때도 혼자 쓰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그 재미의 원천 때문에 고민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사실을 두고 과학계에서 그 사실을 부정하지 못하는 한, 그래서 실험에서 얼마든지 재현이 가능한 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그 사실을 덮어놓고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에 대한 지식이 빛의 속도에서 시작해서 크게 늘어나게 되었듯이 나 역시 재미에 대해서도 그 원천이나 일어나는 원인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재미 자체만 인정한 채 일단 써 내려가기로 했다. 재미, 그리고 재미이다. 재미있게 쓰고, 재미있게 읽히고. 재미있게 쓰는 것은 잘 되고 있지만 재미있게 읽히는 것은 그다음 문제이다. 지금 상태에서는 그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하면 안 된다. 글을 계속해서 재미있게 써 내려가면서, 그 문제로 인해 글을 쓰지 못하게 되지 않는 한에서 고민을 계속해서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누구나 글을 쓴다는 것은 말을 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그 말이라는 것은 (흘러가서 소문이 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그 자리에서 사라지지만 글은 남는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요즘의 글은 그렇게 쉽게 남지 않는다. 누군가를 일부러 화나게 하거나 모욕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은 한은 그 자리에 그런 글이 있는지조차 아무도 모를 수도 있다. 사실 재미있지 않은 글을 누구나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 마치 비석처럼 오래오래 남는 글이라면 쓰기가 힘들겠지만, 그냥 마우스로 '삭제' 버튼만 누르면 글이 사라지는 세상이다. 더 힘들어 봤자, '정말 삭제하시겠습니까?'라는 팝업에 한번 더 클릭해 주는 수준일 뿐이다. 그러니 글을 쓰는 게 즐겁다면, 거기에 조금 더 욕심을 얹지 않는다면 일단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재미 때문에 글을 쓰는 나 같은 사람도 있는데 전달하고 싶은, 혹은 보여주고 싶은 정보가 있다면 더더욱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 1을 덮고 책 2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