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름답게 눈부셨던 삶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by 하이브라운

지난주 토요일 새벽, 외조모님께서 향년 98세의 일기로 소천하셨다. 내겐 마지막으로 생존해 계셨던 조부모님이셨다.

친가의 조부모님과 외조부님께서는 내가 태어나기 전과 아주 어린 시절에 돌아가셨던지라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추억은 외할머니와의 그것이 전부다. 하지만 부족하지 않다. 너무도 아름답고 좋은 기억들만 가득하다. 건강하게 장수하시며 가실 때에도 편안하셨던 외할머니를 기억하며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


외가는 2남 8녀의 10남매, 어머니는 그중 넷째다. 큰 이모님의 첫째 딸이 막내 외삼촌과 동갑이라 관계나 호칭이 조금 복잡하다. 지금도 중학생 꼬맹이가 나를 형, 오빠라고 부르면 참 어색하다.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이라 더욱 그렇다.

외할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시고 자녀들이 모두 출가하여 전라북도 정읍의 시골마을에 할머니 혼자 생활하시는 것이 힘들었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던 때부터 40년 정도를 외삼촌과 이모님들 집을 돌아가며 지내셨다. 마치 순번을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모두가 기껍게 할머니와 지냈다. 당연히 우리 집에서 함께 사셨던 시기도 있었는데, 난 그때가 너무 좋았다. 지금은 60대의 어른들도 젊은 사람들 못지않게 관리하고 꾸미며 살지만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셨던 60대의 모습은 전형적인 할머니셨다. 영화 ‘집으로’에 나오셨던 그 할머니의 모습. 한 번은 늘 머리에 꽂고 계셨던 비녀를 빼셨을 때, 내 키만큼 길었던 긴 머리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도 있다. 용돈을 모아 동네 가게에서 막걸리 한 병을 사서 할머니께로 향했던 내 걸음은 힘찼고, 경쾌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 살아가는 지금, 풍족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야 했던 자녀들에게 어떻게 사랑을 채우셨는지가 가장 궁금하다. 여전히 10남매는 우애가 깊고, 할머니를 모실 때에도 갈등 없이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며 선뜻 나서는 이모와 삼촌들을 생각하며 지금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생각한다. 외가에 사랑이 가득하니 이모부님들과 숙모님들 또한 그 분위기에 물들어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아버지가 변하셨던 모습처럼. 자신이든 배우자든 동료든 내 주변의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싶을 때, 그 모습으로 내가 먼저 변하면 자연스레 주변도 바뀐다는 것을 외가와 어머니를 통해서 보고 배웠다. 삶을 돌이켜보면, 너무 큰 생활의 가르침이었고, 내 사회생활 비장의 무기다.


외가를 생각하면 할머니보다 먼저 생각나는 분이 사실 큰 이모님이시다. 큰 이모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가장의 역할을 하시며 많은 동생들을 훌륭히 돌보셨다. 경제적으로 풍요하지는 않았지만 대가족의 모든 구성원이 지금껏 갈등 없이 서로 사랑하며 지낼 수 있었던 것은 큰 이모님의 역할이 매우 컸다. 명절이면 큰 이모님 댁이 있는 대전에 항상 모두가 모여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내게 대전이라는 도시의 이미지가 좋은 이유가 이 때문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조부모님들이 일찍 돌아가셨고, 함께 생활했던 가족과 친지, 지인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병이 없이 장수하셨고, 가족들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던 이번이라 장례식도 슬픔보다는 지난날에 대한 감사가 더욱 컸다.

외할머니의 삶을 생각하면 6.25를 겪으시고(실제 아궁이에 몸을 숨기셨고, 외가의 오래된 집 벽에는 총알 자국도 있었다) 10남매를 어려운 환경에서 키워내셨다. 어머니의 말씀을 들어보면 출산을 하시고 며칠이 지나지 않았을 때, 밭일을 하러 나가셨다고 한다. 얼마나 치열했던 삶인지 가늠할 수 없다.

우주비행사가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 후 겪는 '조망효과'가 있다고 한다. 우주에서 파란 구슬처럼 떠 있는 지구를 보며 인류에 대한 연민을 느낀다는 것이다. 한 우주비행사는 지구를 향해 "그만 싸우고 정신 좀 차려라!" 소리치고 싶었다고 한다.

외할머니의 장례를 진행하며 우주비행사가 지구를 보며 느꼈던 것과 비슷하게 인생에 대한 허무와 지금 삶에 감사만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할머니의 삶을 생각하니 그것에 더하여 주어진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삶이 대를 이어 내게도 영향을 주었으니 말이다. 우주비행사가 본 지구도 많은 사람들이 열심으로 살아가는 삶들이 모여 파란 구슬이 되지 않았을까?


외할머니.

할머니의 소풍은 어떠셨나요?

할머니의 삶이 많은 가족들에게는 행복의 거름이 되었습니다.

그 사랑을 넘치게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님을 통해 제게도 이어진 사랑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할머니의 삶은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