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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신난다 Jun 27. 2021

골목길. 1

작은 여행

<골목길 1>

어릴 적 우리 집 앞 골목은 아침부터 고무줄놀이, 공차기를 하고 노는 아이들로 시끌벅적했다. 그렇게 바쁘게 놀고 있는 우리 형제들은 엄마의 호출로 집으로 돌아와 깨끗한 옷을 입고 작은아버지 댁으로 향했다.


 작은 아버지는 잠실에 있는 새 아파트로 이사를 하셨다. 가족들은 새집으로 이사한 것을 축하해 주기 위해 처음 보는 주거형태인 아파트에 도착해서 신기한 집을 신나게 구경 하게 되었다. 네모난 집을 엄마와 다른 작은 엄마들은 부러워하시는 것 같았다.


신기한 집구경이 끝난 아이들은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과 놀이터에 가서 놀기로 했다. 아파트 앞의 놀이터는 어린 우리들이 보기에도 뭔가 세련되고 멋져 보였다. 새로 단장한 놀이 기구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신나게 뛰며 즐거워했다. 무척이나 신이 난 남동생이 놀이 기구에서 발을 헛디디여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쇠로 만든 놀이기구에 이마를 세차게 부딪혔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학교의 종소리 같았다.

동생의 이마에는 갑자기 달걀만 한 혹이 생겼다. 나는 너무 놀라서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작은 아버지 댁으로 달려갔다.

한참을 달렸는데.... 건물들이 똑 같이 생겨서 작은아버지 댁을 찾을 수 없었다.

다시 놀이터로 갔다. 놀이터는 분명히 있는데 동생들과 사촌들이 없었다. 다시 어디론가 달렸다. 그런데 똑같이 생긴 놀이터가 또 있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달리고 달렸지만 놀이터도 집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미아가 되었다.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땀을 뻘뻘 흘리며 빠른 걸음으로 길을 헤매고 있는데 멀리서 “경숙아 어디 가니?”

저기서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는 나의 설명을 바탕으로 겨우 겨우 그 놀이터를 찾았으나 남동생과 다른 사촌들은 없었다. 아버지와 나는 길을 헤매다가 작은아버지 댁으로 돌아왔다.

동생들과 사촌들은 시원하게 씻고 동생은 신기한 링 모양의 노란 과일을 후르르 쩝쩝 맛있게 먹고 있었다. 나도 맛을 보고 싶었지만 차마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나의 이마에는 '혹'이 없었으니까.    

어찌 된 일인지 아버지가 물으니 놀이터 앞을 지나던 사촌언니가 아이들을 발견해서 남동생을 등에 업고 작은아버지 댁으로 왔다고 했다.  

남동생 이마의 혹은 바위만 해지고 보라색으로 변해  마치 보라색 선인장 같아 보였다.

그 후로 작은 집에 가게 되면 집을 잘 찾기 위해 뭔가 표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우리 집 앞의 골목길이 참 좋았다.


하지만 나도 오래전부터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주택에 사는 꿈을 꾸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한옥으로 된 가게가 있으니까 이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가게가 위치해 있는 서촌은 조선 시대부터 사용했던 좁은 골목길이 많이 남아있다.

그 길들을 중심으로 새로 지어진 집들, 오래된 한옥, 일제 강점기에 사용했던 호화로운 주택의 터 등등이 있다. 그 집들 사이의 골목길은 과거와 현재가 재미있게 조화를 이룬다.    

남편과 아이와 함께 골목길 산책을 즐겨한다. 도시계획을 하는 남편의 취미 생활이기도 하고 아이가 자연스럽게 과거의 역사를 알아 가는 시간이다. 또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갖기 위한 작은 노력 이기도 하다.

어느 날 아이의 친구 한 명이 집에 놀러 와서 골목길을 산책을 같이 하게 되었다.

아이가 친구에게 “골목길로 가자”라고 이야기했더니, 친구는 골목길이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이는 친구에게 골목길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지만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의 친구는 태어나고 자란 주거의 형태가 아파트 외에는 다른 것이 없었을 것이다. 아파트 단지에서는 골목길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단어를 말할 필요도 이해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우리의 어릴 적 골목길은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공원이 되기도 하고 어른들이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기도 음식을 나누어 먹기도 하는 중요한 공공의 장소였다.

내가 살았던 마을의 집들은 각각의 모양과 색이 달라서 여기가 어딘지 쉽게 알 수 있었다. 길의 모양도 조금씩 달라 그것을 이용해 놀이를 하기도 하고 쉬기도 했었다. 어린 우리들은 각자 살고 있는 집이 다르다는 다양성을 무의식적으로 배웠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린 우리들에겐 혹시 길을 잃어도 주눅 들지 않고 헤맬 수 있는 작은 골목길이 있었다.

늘 있을 것만 같았던 골목길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세련된 놀이터는 없어도 재미있고 신나게 놀 수 있는 집 앞 골목들... 그 골목길들이 없어지고 있다.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에 아이와 아이들 친구들과 같이 산책을 한다.

"애들아! 이 골목길은 이상과 노천명 시인이 다녔던 오거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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