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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연 Aug 16. 2024

이모의 은빛 머리카락

그래, 나 머리카락이 한 올씩 하얘지고 있어. 어때?


 늙는다는 건 과연 무엇일까. 늙는다는 미래의 불안정한 상태가 두려워 스물한 살 나이 그대로 멈춰버리면 좋겠다는 친구가 있다. 그러면서 스물 하나는 아무것도 안 해도 조바심이나 불안함이 생기지 않는, 가장 축복받은 나이라 찬양한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새카만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자라나 계속 눈에 밟히는 이질감을, 몇십 년간 쓴 관절과 치아는 누렇게 떠서 별로 보기 좋지 않은 광경을 만들어내는 게 우리가 보통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늙음의 이미지다. 내 친구들 대부분은 늙는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도 물리적인 늙음을 말하는 걸 것이다. 물론 나도 물리적인 늙음이 무섭기는 하다. 더 이상 튀김이나 아이스크림, 과자와 같이 기름이 번들거리는, 행복의 한 축을 담당하던 음식들을 못 먹게 되면 어떡하지?  삭신이 쑤시고 무릎이 아파 내가 좋아하는 도서관을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못 가게 되면 어떡하지? 물리적인 늙음은 아무래도 젊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을 동반하며 삶의 질을 현저하게 저하시키니까.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때론 젊음이 찬양받는 이유를 다시금 깨닫는다.      



 하지만 젊음이 기울어가도 차곡차곡 쌓이는 어떤 형태의 지식이 있다. 그것이 바로 연륜과 지혜다. 스물 하나가 무슨 연륜과 지혜를 논하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들도 초중고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 여러 삶의 공식들이 있다. 이를테면 모두가 박수 칠만큼 노력하는 사람도 때론 낙심할 만한 폭우에 휩쓸릴 수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행복은 저 바다 끝에서 신대륙을 찾으러 오는 콜럼버스처럼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사람마다 수능을 포함한 여러 가지 통과의례를 청소년기에 거치면서 각자 느끼는 건 제각각이겠지만. 이와 같이 우리가 힘겹거나 때론 미치도록 기쁜 경험을 하면서, 우리는 인생에서의 빅데이터를 차곡차곡 쌓아간다. 시간이 갈수록 각자 분야에서의 빅테이터들은 견고해지고 생각이나 가치관들도 분명하게 쌓일 것이기에, 다양한 책들과 전시회, 강연까치 다녀준다면 금상첨화다. 이렇게 자기 계발을 꾸준히 해온 사람은 분명 나이가 들어서도 품격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기에도 마음만 먹으면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부분이 천지인데, 20대 후반, 30대, 40대로 갈수록 나는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하게 될까. 나는 이러한 부분이 기대가 되는 것이다. 어쨌든 지금의 부족한 나보다는 훨씬 나은 나를 만날 수 있겠지.  같은 생각들이 나를 짐짓 설레게 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러한 지혜와 데이터들 때문에 때론 늙는 것도 꽤 괜찮은 과정이라고 느낀다.



엄마 친구분 중에 시민단체에서 일하시는 분이 있다. 이 분을 ‘시민단체 이모’라 지칭하겠다. 엄마 나이대 분들은 대부분 염색을 하시던데, 시민단체 이모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중단발에 갓 실타래에서 뽑아온 것만 같은, 검은 머리카락과 적절히 조화가 섞인 은빛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다니신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생각을 하게 된다. 오, 늙는다는 건 굉장히 멋진 일이구나. 물리적인 늙음은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굉장히 다르구나. 늙음을 숨겨서 젊어 보이게 함으로써 매력을 발산할지, 아님 내가 ‘늙고 있음’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그 당당함으로 장악할지. 하얗게 센 머리를 염색한다는 일은 늙음을 숨기기 위해, 젊어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시민단체 이모는 ‘그래, 나 머리카락이 한 올씩 하얘지고 있어. 어때?’라며 노화를 숨기지 않고 전부 드러내 보였다. 만약 내가 시민단체 이모 나이대가 된다면? 늙고 있음을 가리지 않고 당당하게 다닐 수 있을까? 어쩌면 이러한 물음 때문에 시민단체 이모가 더 멋있어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늙음도 나쁘지 않은데?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 또 어떠한 생각이 내 생각을 가로막는다. 사람의 생각이 늙는 것은 어떡할 건데. 생각이 늙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도전의식이 높았던 사람도, 나이가 들면 도전하길 꺼리고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고 한다. 실제로 내 주변에 이 문장을 증명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어쩌면, 이러한 부분이 가장 무섭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은데, 점차 나이가 들수록 어디를 다니는 것에 있어 귀찮은 마음이 한 움큼씩 들면, 기차나 비행기표를 끊던 손을 멈추게 되고 견문도 그만큼 좁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두렵게 한다. 내가 생각했던 미래의 나는 이런 게 아닌데... 하며. 아빠네 가족 식구들과 밥을 먹을 때, 아빠가 할아버지 돌아가시면 할머니와 고모를 부산에 있는 집으로 모시겠다고 하셨으나, 고모는 극구부인하며 지금 사는 곳이 편하다고 했다. 난 고모가 물리적인 거리가 가까워질 수 있음에 잠시 기대했으나, 고모의 반응을 보고 실망 아닌 실망감이 들었다. 나는 여기서 눈으로 볼 수 없는 늙음을 체감했다, 사람들은 보통 젊을 때 여행 많이 가고, 많은 것을 보라고 한다. 이 말은 어느 꼰대 1의 쓸모없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젊을 때 훨씬 여러 자극들을 잘 받아들이고 그만큼 열정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견문을 쌓으러 가야 하고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내가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을 때 많이 많이 다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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