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앱에 들어가 입출금 내역을 확인하면, 내가 이번 달 돈을 어디에 썼고 어디에서 수입이 들어왔는지 한 번에 알 수 있다. 오, 24일엔 교촌치킨에 2만 원 정도 썼네, 괜찮다. 먹고 싶은 건 먹어 줘야 하니까. 18일엔 1만 오천 오백원? 아, 망고 빙수 먹었었지. 혀에 착 감기면서 자꾸 땡기는 망고 빙수는 못참지. 그렇게 식비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식비라서 이해되는 것들이 많다. 그래, 이건 먹어줘야지, 쿨타임 차는 음식들이 있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그러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나는 쿨타임 차는 음식들이 많지 않다. 간헐적인 배달음식은 즐거움을 주는 현명한 소비일 따름이다. 그러나 돈 만큼 소중한 시간이라는 자원을 하루도 빠짐 없이 콕 찝어 한 번에, 그것도 다량으로 잡아먹는 플랫폼이 하나 있다. 바로 빨간 바탕에 하얀 세모 버튼, 유튜브다.
학기 중에도 얘보다 더 친한 친구는 찾기 힘들었다. 일단 유튜브는, 내가 학생 식당에 가서 치킨 마요 덮밥을 먹든, 제일 좋아하는 코고미 식당에서 카레를 먹든 무조건 따라온다. 질척거리며 가진 돈이 없는데 밥 사달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입금해 줄 테니 내 것까지 계산해 달라는 말 또한 한 적 없다. 식당에서 홀을 담당하시는 분조차 이 친구가 1인분의 점심을 주문하지 않는 것에 대해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신다. 그저 내가 내 몫의 밥을 깨끗이 비우는 동안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춤출 뿐이다. 나는 그 광경을 즐거움에 대한 자극을 처음 느낀 아이처럼 홀린 듯이 바라보게 된다. 그 대가로 친구는 멍때리며 뇌를 쉬어도 괜찮았을, 노래를 들으며 내 일상에 특별함을 줄 수도 있었을 점심시간 1시간을 가져갔다.
눈꺼풀이 저절로 감기는 교수님의 공격을 겨우겨우 해치우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승강장에서는 드디어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다. 내가 가진 물건들로 승강장 벤치에 앉아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전공책? 아까 전 교수님의 공격으로 충분하다. 필기도구? 뭐 승강장 한복판에서 학생들 캐리커쳐라도 그려주랴. 남은 건 자기를 봐달라는 듯 쭉 내 어깨에 손을 두르고 있던 유튜브 친구밖에 없다. 나는 친구의 거처인 스마트폰을 통해 친구를 찾는다.
보통 지하철역에서는 지하철이 나아갈 때 발생하는 소음과 여러 학생들, 커플들, 예수를 믿으라고 중얼대는 할머니들이 만들어내는 소음 때문에 친구가 들려주는 소리를 잘 들을 수 없다. 친구의 소리를 왜 더 안 키우냐고? 내 고막에 무리와 스트레스를 주는 식으로 일회성 자극을 즐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난 항상 건강검진에서 정상이 나왔던 내 영민한 청각을 오래오래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스트리머 침착맨이 뭐라고 중얼거리는지 몰라도 그가 행하는 동작, 몸짓, 웃음 등으로 대충 이런 이유 때문에 웃었겠거니 때려 맞추곤 했다. 그렇게 친구에게 소개받은 침착맨과 함께 하는 하교길 1시간은 친구가 낼름 삼켜버렸다.
나는 친구와 함께 화장실에 들어가도 부끄러움이 없었다. 내가 바지만 슥 내리고 변기에 앉을 때에도, 옷을 다 벗고 샤워할 채비를 할 때에도 친구는 전혀 당황하거나 민망해하는 구석이 없었다. 그저 내 자투리 시간을 가져가기 위해 노력할 뿐이었다. 나는 친구의 기대에 늘 부응하는 모범적인 인간이었으므로, 폼클렌징으로 얼굴을 씻고 머리에 앰플과 에센스를 바를 때에도 잠깐 잠깐씩 얼굴을 들어 친구를 확인했다. 친구는 여전히 떠들고 웃고 자극적인 말을 뱉는 걸 좋아했다.
나는 친구가 소개해준 친구들을 좋아한다. 특히 침착맨을 좋아했다. 초반에는 살짝 진입장벽이 있었다. 음, 별로 재밌지도 않은 거 같은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열광하지, 그러던 어느 날 그 생각과 전혀 반대되는 행동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딱히 볼 게 없어서, 라는 이유로 가장 재미있어 보이는 영상만 찾아봤다. 엘리멘탈 스포 감상회랄지, 주우재의 침착맨 패션점검과 같은, 누가 봐도 재미있어 보이는 썸네일과 제목의 영상들 말이다. 그러나 점차 그의 시니컬한 말투로 포장된 말도 안되는 소리와 종종 터지는 몸개그 덕분에 침착맨을 보는 시간은 점차 길어졌다. 침착맨 본계정에는 하루에 영상이 하나씩 올라오는데, 그걸 위해 틈만 나면 게임 슬롯을 돌리듯 새로고침을 했다.
내 승강장, 화장실 타임을 책임진 또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미미미누이다. 미미미누는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 수능에 5번 도전한 유튜버이다. 자신의 지식과 발표력 등을 살려 유튜브를 하고 있는데, 이 사람, 빠른 텐션과 말발에 유머까지 겸비하고 있으니 완전히 팔색조가 따로 없다. 게다가 노베이스 학생들을 위해 물질적. 심리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헬스터디>, 입시에 대한 모든 고민을 들어주는 <all about 입시>까지. 내가 입시를 하고 있지 않은 입장이다 보니 입시와 관련된 컨텐츠들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밥 먹을 때는 풍자의 <또간집>, 잠을 잘 때는 하쁠리의 ASMR까지 나는 24시간 밀착형 노예가 되고 말았다. 만약 벤자민 프랭클린이 나를 봤다면 굉장히 실망했을 법한, 3-5-7-9 시간관리를 강력히 권했을 법한 생활을 지속하면서, 친구가 내 머리 위에, 아니 머릿속에 군림하도록 가만히 나뒀다. 나도 열심히 교수님과 싸웠으니 친구랑 노는 시간도 있어야지, 라는 말 같지도 않은 자기 위로를 하면서.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한 가지 의문점을 발견하게 된다. 늘 친구랑 붙어 다니고 노는데, 기억에 남는 건 하나도 없었다. 침착맨이든, 미미미누든, 그들은 늘 웃거나 강한 워딩을 사용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언어는 뇌리에 퍽 박히는 게 없었다. 늘상 한 번 즐거우면 그만인 식이었다. 이러다가 정말, 뇌가 도파민에 푹 절여진, 도둑고양이조차 찾지 않는 쓰레기장이 되는 거 아니야? 그 어떤 교양도 지식도 없는 인생을 상상하자 내 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렇담 책은. 내가 정말 즐겁게 읽었던 책들은 읽으면서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 기억나나? ..난다. 기억이 났다. <카카듀>를 읽었을 때 눈썹이 팔자 모양이 되며 가슴에 하얀 눈이 내리는 느낌, 이슬아 작가의 책을 읽었을 때 인상깊은 문장만 보이면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가슴 속에 단단히 새겨두려 했던 일들. 누가 내 머리를 후라이팬으로 강하게 내리치는 기분이 들었다. 그 상상의 프라이팬으로 두개골을 정확히 맞은 나는 다시 마음가짐을 곧게 했다. 그래, 내 소중한 자투리 시간을, 책에게 줘보자. 책과 친해지는거야.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다. 맹자의 어머니가 집을 글방이 있는 곳으로 옮겨 맹자를 공부시켰더니 늘 공부를 했다고 하는 고사 말이다. 이 고사는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데, 책을 읽으려면 나에게도 환경의 전환이 필요했다. 일단 대학생이 되고 한 발짝도 가까이 가지 않았던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가서 작가들의 노력을 머금은 책들을 보고 있자니 한 권, 한 권 전부 빌려가고 싶었다. 낑낑대며 집까지 책들을 옮겨왔고, 여러 권 들고 온 걸 내 빅사이즈 크로스백에 한 권, 학교 갈 때 메는 백팩에 한 권, 자주 사용하는 분홍색 에코백에 한 권 배분해서 넣었다.
그 다음날, 나는 약속이 생겼고 책이 든 분홍색 에코백을 챙겨 집 밖을 나간다. 지하철 승강장에 다다르니 시간이 붕 떴다. 지금이야말로 책을 읽을 타이밍인 것이다. 그러나, 빌려온 책을 손에 들고 차근차근 읽어내기에는 그 장소가 너무 부끄러웠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는데도 말이다! 결국 쭈뼛쭈뼛거리다가 지하철이 도착할 때까지 책을 읽지 못했다. 지하철을 타고 보니, 연륜이 있으신 어른 한 분이 한 손으로는 지하철 봉을 잡고 아주 집중해서 책을 읽고 계셨다. 주변의 모든 소음과 잡음을 전부 차단한, 오로지 본인만의 세계에서 책과 단둘이 이야기하고 계신 것 같았다. 나는 요즘에도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감탄하며 나도 그러한 사람 중 한 명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좌석에 앉아서 책을 읽으니, 의외로 집중이 잘되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유튜브 친구와 함께 할 때에는 역을 지나칠 때마다 무슨 역인지 확인하는 게 습관이었으나 책은 집중해서 쭉 읽다보면 내가 내려야 할 역까지 금방 도착했다. 그렇다고 내가 유튜브를 완전히 끊은건 아니다. 가끔씩 요즘 트렌드가 어떤지 구경하곤 한다. 그럼에도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애정을 주는 건 책이다. 책으로 튼튼한 교양과 생각을 쌓다 보면, 어느새 유튜브가 주던 일시적 기쁨과는 차원이 다른 기쁨을 맞이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