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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존더스 Jul 10. 2022

6년 만에 난 시댁에 왔다.

한국 생활기 1

2002년 월드컵의 열기가 가득했던 6월 한국을 뒤로하고 우리 가족은 독일로 이민 왔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난 한국에 갈 일이 없었다. 독일 음대로 유학 나온 남편과 결혼하고 2년에 한 번씩 한국을 갔다. 남편이 오페라 극장에 취직되면서도 휴가가 가장 긴 여름에 한국을 갔다.


시부모님과  살을 부대끼며 살았던 게 아니라 2년에 한 번 만나는 시부모님은 어려웠다. 나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졸였다. 어머님이 하시는 일을 유심히 보며 거들었다. 느린 며느리는 부지런한 어머님을 쫓아가느라 바빴다. 성에 차지 않은 부분도 많고, 미숙한 며느리를 어머님은 감싸줬다. 어머님은 우리에게 뭐든 해주고 싶어 했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애썼다. '다운 천사 ' 막내딸이 태어나고 한국에 가지 못 했다. 아이의 잦은 병치례와 수술로 병원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아픈 아이를 끌어안고 살아가느라 늘 노심초사였다.


막내딸은 커가면서 건강해졌다. 아직 막내딸을 보지 못한 어머님, 아버님은 올여름 한국에 오길 바랐다. 남편은 고민 없이 바로 비행기 표를 끊었다. 반면 난 생각이 많았다. 6년 만에 한국에 가는 며느리에게 기대가 얼마나 클까? 바라는 것에 부응해 드릴 수 있을까? 실수는 하지 않을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는 시댁에 가려면 준비가 필요한데 내 친구는 여유로웠다. 독일인과 결혼한 친구는 시댁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시어머니에게 ‘마미’라고 부른다. 서로의 삶에 관여하거나 터치하지 않는다. 자식이 도와달라고 할 때만 도와준다. 아무리 가까이 살아도 약속을 잡고 방문한다. 독일은 멀리 사는 시부모님에게 가려고 해도 사전에 날짜를 잡아야 한다. 시댁에 가도 근처 호텔에서 지낸다.


한국 가는 날이 다가왔다. 달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만 6살의 둘째는 “앞으로 몇 밤만 자면 한국 가?”

"이제 6월 달이니 스물다섯 밤만 자면 돼” 그때부터 둘째는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둘째가 한국에 가는 날을 기다리는 이유는 맛있는 짜장면을 먹기 위함이었다. 만 11살 사춘기 초입의 첫째는 독일에 남아 친구들과 컴퓨터 게임을 하길 원했다. 황금 같은 5주를 한국에서 지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반면 남편은 입 꼬리가 내려올 줄 몰랐다. 뭐든 일에 싱글벙글 이었다. 너무 그립고 보고 싶은 부모님을 만나러 간다는 자체는 삶의 에너지가 됐다. 셋째는 아직 어려 한국에 간다는 의미를 잘 몰랐다.


난 하루가 지날수록 마음이 분주했다.  5주 동안 집을 비워야 하니 냉장고 비우기, 쓰레기통 닦기, 빨래 하기 등 바빴다. 다섯 식구 짐 싸기도 나에게는 숙제였다. 챙겨가야 할 목록을 A4지에 작성하고 하나하나 지워 가며 짐을 쌌다. 가방 하나에 23 킬로그램이 나가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18 킬로그램뿐이었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분명 선물도 많이 샀는데.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시간은 흘러 공항 가는 날이 왔다. 긴장하며 밤새 뒤척인 탓에 어깨가 뭉쳤다.


독일 뉴스에서는 위드 코로나가 되며 올여름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로 공항이 분 빈다고 했다. 늦어도 3시간 전에 공항에 가야 한다며 보도됐다. 우린 4시간 전에 공항에 갔다. 여행 가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몰려든 여행객에 비해 공항 게이트에서 일하는 사람은 턱 없이 부족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했다.


비행기 시간마저 1시간이나 지연됐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에너지 넘치는 두 아들을  잡아 둬야 했다. 두 아들에게 텝 하나씩을 안겼다. 짐을 부치고 출국심사대를 거쳐 비행기에 탑승했다. 처음 비행기를 타는 막내딸은 이륙, 착륙 시에 귀를 부여잡았다. 두 팔로 얼굴을 감쌌다. 기압에 힘들어했다. 비행시간 동안 딸은 먹지도, 자지도 못 했다. 잠도 내가 안고 있어야 겨우 잤다.


삼부자는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숙면했다. 난 쪽잠을 자며 딸을 품에 안고 있느라 등이 뻐근했다. 우린 집을 떠난 지 17시간 만에 한국에 도착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독일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작성한 큐알코드를 찍고 입국심사대에 갔다. 여권을 내밀고 잠시 마스크를 내려 얼굴을 확인시켜줬다. "6년 만에 한국 오셨네요.” “네”라고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6년 만에 난 시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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