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파사드

유리에서 빛으로, 파사드가 변해온 시간

by 위엔디

단지 그 뿐이었다. 방송국 건물 위 안테나가 멋져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 이번 졸업작품은 방송국으로 해야지!' 하면서 방송국 자료를 모으고, 건축 설계와 모형을 준비했다. 30년 전 대학생 시절이야기다.


제목은 '팍스 미디어(Pax Media)'로 정했다. '팍스 로마노(Pax Romana)'를 빗대어 내가 만든 조합어다. 굳이 번역하자면 '미디어 전성시대'쯤 될 것이다. 안테나라는 이미지 하나에 끌려 추진한 프로젝트였다. 그 졸업 작품은 말 그대로 졸작(卒作)이 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민망할 따름이다. 그래도 작품명 하나는 기가 막히게 명명한 듯하다.


신세계 스퀘어

퇴근할 때, 종각역 사거리에서 남산 3호 터널을 지나간다. 을지로입구 사거리를 지나 신세계백화점 본점을 향한다. 좌측으로 돌면 남산 3호 터널 쪽으로 들어서게 된다. 늘 마주치는 '신세계 스퀘어'는 매우 역동적이다. 건물의 얼굴이 스크린이 되어 보행자는 빛으로 소통하게 한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건축의 빛

AD2000년대 초, 파사드(건물의 얼굴)는 더 이상 외벽이 아니라 '표현 매체'로 설계되기 시작했다. 건축 외피가 그대로 콘텐츠의 일부가 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1851년 수정궁(크리스털 팰리스)은 외벽 전체를 유리와 철로 구성했다. 건축가 조지프 팩스턴(Joseph Paxton)에 의해 건축이 구조와 외피로 분리된 최초의 사건이었다.


이어 유리를 건축의 표현수단으로 사용하면서 '발터 그로피우스'나 '미스 반 데어 로에'같은 건축가들에 의해 실험적 건축물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고층건물이 급증하고, 냉방부하의 문제로 열반사 유리가 필요해지게 되었다. 이것은 유리가 거울로 변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건물은 스스로를 드러내기보다 주변의 풍경을 투영하며 도시 속으로 숨어버렸다. 건물의 외피가 거울로 바뀌면서, 건축은 더 이상 형태를 주장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건물은 도시의 배경 속으로 사라졌다. 이것이 '탈이미지 현상'이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벽면의 화려한 광고 사인과 이미지를 보면서, 유리를 통한 빛의 반사가 있었다면, 오늘은 스스로 빛을 내뿜는 빛의 축제를 말하는 시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서울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나 서울스퀘어는 최대 규모의 '미디어 파사드'를 자랑한다. 모두 광고 전광판 수준이 아니라, 건축과 도시의 비상업적 콘텐츠에서 의미가 있는 건물들이다.

청계천에 빛초롱축제가 한창이다.
저녁이면 빛이 도시의 공간속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청계천에서는 '서울빛초롱축제'가 한창이다. 건축물의 파사드가 '면'에서 '공간'으로 확장된 것이다. 건물 외벽의 외피에서 흘러나온 빛이 청계천의 다리를 감싸고, 수면을 밝히면서 산책로를 통해 도시의 숨결로 흘러들어 간다. 저녁이면 그 빛이 사람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공간 속으로 그들을 끌어들인다.


오늘도 나는 종로와 을지로를 지나 남산터널을 지난다. 오래 전 학창 시절에 만들어낸 '팍스 미디어'를 생각하며, 그 빛을 이제야 따라가고 있는 것인지, 이 도시가 우리에게 먼저 보여주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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