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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목사 아동학대 사건 – 71

목사의 역습(명예훼손 재판) - 14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2241


이 소설은 100%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임을 밝혀둡니다.


소장에 대한 분석도 겸하고 소송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눌 겸 오랜만에 이 변호사와의 저녁식사자리를 가진 것은 2021년 여름 복염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던 강남의 모 중식당에서였다. 아주 가끔이긴 했지만 그렇게 김 교수가 이 변호사와 소통을 하거나 통화를 할 때는 기이한 건들에 대한 법률적인 허심탄회한 의견을 나눌 때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동문도 아니고 서로 접점도 없었지만, 동년배의 두 남자는 죽이 잘 맞는 편이었다.

“어떻게 생각해요? 이 건은?”

“이건 뭐 생각하고자시고도 없는 거잖아요? 제가 지난번 메시지로 드린 것처럼 어쩌면 이런 쓰레기들이 교수님 눈에만 잘 띄고 그렇게 만나시는지 그게 저는 참 재미있어요. 하하!”


이 변호사는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김 교수의 표정을 살폈다. 다른 의뢰인들과의 자리였다면 그렇게 자신의 건을 가지고 디스 하는 변호사를 좋게 볼 리가 없다는 것을 이 변호사뿐만 아니라 김 교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자주 연락하고 보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둘 사이에는 그만한 인정과 신뢰가 쌓여 있었다.


“이게 소송을 제기할 문제라는 거 자체가 나는 이해가 안돼요.”


술잔을 목 안으로 털어 넣으며 김 교수가 답답하고 짜증 난다는 투로 말했다.


“그래야 저희 같은 변호사들도 먹고 살지요. 이건 그냥 출석만 채우면 적정금액 받고 끝나는 소송인걸요.”


김 교수의 빈 잔에 술을 채우며 이 변호사가 말했다.


“아무리도 그래도 그렇지 이 소장을 쓴 로스쿨 출신 여자애들도 저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다들 똑같은 거죠. 오히려 이런 똘아이들이 있으니까 바람을 넣지 않더라도 소송을 해달라고 오는 거죠.”

“그래도 법적으로 이게 성립되지 않는 거라는 사실을 알 정도는 될 거 아닌가요?”


김 교수는 정말로 상대편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실 김 교수는 추 목사 측의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었다. 직원이긴 했지만, 당당하게 전화를 걸어 당신네가 소송을 건 내용에 대해 알고 싶으니 전자소송으로 문서를 받기 전에 소장의 사본이 있으면 이메일로 보내달라는 요청을 했던 터였다. 법률사무소의 직원은 자신이 일하는 내내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김 교수의 요청을 황당해했다.


그때 그녀는 김 교수에게 소송의 상대편이 되는 사람이 소를 제기한 원고 측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당당하게 소장을 요구하는 경우도 본 적이 없지만, 법정 이외의 자리에서 그렇게 연락을 먼저 취하는 피고도 없다며 당혹스러움을 금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그러한 태도를 오히려 어이가 없어하며 김 교수는 당당히 물었었다.


“소송을 대리하는 변호사에게 적대감을 가질 정도로 어리숙한 사람도 아니거니와 기본적으로 변호사는 돈 때문에 수임료를 받고 소송을 대리하는 사람이니까 재판을 하기 전에 상대방의 의견을 대신 듣고 조정하는 게 임무 아니던가요?”


그렇게 있었던 자신이 상대편 법률사무소 직원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그 대목에서 이 변호사가 마시던 술을 아주 멋지게 고개를 홱 돌리며 공중에 뿜었다. 다행히 별실이어서 둘만 있었기에 망정이지 주변의 사람들이 있었더라며 시선을 주목시키기에 충분한 리액션이었다.


“하하하하! 교수님답네요. 그 직원은 평생 처음 겪는 일이었겠네요.”

“내 설명이 들린 건가요? 내가 이상한 거예요?”

“교수님은 아직도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시나 봐요.”


이 변호사가 묘한 리액션으로 그에게 반문했다.


“아니, 이 변이 말해봐요. 내가 그렇게 이상한 요구를 한 건가요?”

“으음. 이를테면 이런 거죠.”


이 변호사가 살짝 뜸을 들이는 듯하다가 술로 적당히 목을 축이고 김 교수의 특징에 대한 간략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그 사이비 목사가 그런 짓을 다른 사람들에게 했다면 어땠을까요?”


분석 대신 뜬금없는 질문이 튀어나왔다.


“다른 사람들도 경악스럽긴 마찬가지 아니었을까요?”

“말씀은 맞는데, 교수님이나 사모님처럼 그 자리에서 모든 대화를 녹취하거나 112에 바로 신고를 하고 다음날에 경찰서로 달려가 전날 112 출동했던 경찰들의 미온적인 출동 태도에 대해 지적하고 고소장을 제출했을까요?”

“으음.”


이 변호사가 무슨 이야기를 시작하려는지 감을 잡은 김 교수가 약간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신중해졌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그건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맞는 말씀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옳은 게 뭔지를 몰라서 그것을 택하지 않기보다는 자신이 익숙하지 않아서, 혹은 더 편한 것을 찾겠다고, 혹은 제대로 대응하는 법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적당히, 말 그대로 적당히 넘어가기 마련이거든요.”

“그러게요. 제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예컨대 교수님이 그 법률사무소에 요청한 것은 미국이라면 아주 일반적이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상업화된 법조계의 방식이죠.”

“그게 국가적 문화의 차이라고 보시는 건가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더 궁극적으로는 한국 사람들은 소송을 말 그대로 협상이 아닌 싸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심지어 법률사무소에서 전화나 받는 그 여직원 아줌마처럼 말이죠.”

“협상이 아니라 싸움이라....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최소한 로스쿨 출신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으면 걔들이 싸움을 붙여서 돈을 벌든 미국식으로 협상을 잘해서 돈을 더 벌든 다양해지지 않았나요?”

“한국이요? 설마요. 이 바닥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아요. 그저 하향 평준화되면 생계형 변호사들이 많아졌을 뿐이죠.”

“그렇다고 해도 법원이나 검찰에서 일하는 애들의 수준까지도....”

“네. 당연히 많이 떨어지죠.”

“수준이 떨어지는 거야 대학도 마찬가지이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기들 밥벌이는 해야 할 거 아닌가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저도 교수님 덕에 밥벌이하지 않습니까?”

“지금 무고죄에 대해서 수사를 한 번은 받으셔야 한다면서 연락이 왔어요.”

“어차피 기존 수사 기록이 많이 쌓여 있으니까 핵심적인 녹취내용만 보내주세요. 그러면 담당 수사관도 바로 이해할 겁니다.”

“핵심적인 녹취내용이라면...”

“네. 그 사이비 목사가 자신이 잘못했으니까 800만 원에 합의한 부분과 이후에 마블 대리석 건으로 300만 원의 합의금으로 합의해달라고 먼저 요청한 부분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요?”

“그렇겠네요.”

“그런데 문제가 있긴 있습니다. 그런 똘아이들은 자기가 당일 협상에 나선 것이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억지로 강요당했다고 말을 꾸밀 확률이 아주 높거든요.”

“그래서 제가 녹취도 다 하고, 마지막에 그 내용에 대해서 당사자인 추 목사가 직접 나와서 사과하고 인정하라고 했던 거 아닙니까?”

“교수님이 어떤 분이신데 어련히 하셨겠지요. 제가 우려하는 건 교수님의 철두철미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에 대한 초동 수사관이 사건을 뭉개듯이 현장에서 일하는 자들이 그 철두철미한 증거나 증언에 대해 부담스러워한다는 게 문제죠.”

“네?”


어이가 없다는 듯이 김 교수가 다시 52도짜리 바이주를 목 안으로 털어부었다.


“아까 이야기의 연장선상이긴 한데요. 현장의 초동 수사관들을 비롯한 경찰, 그리고 검사나 판사들이 교수님과 맞닥뜨리면 그 사람들은 아마도 굉장히 불편해할 겁니다.”

“제가 그렇게 괴팍한가요?”

“아니요. 괴팍이랑은 좀 다르시죠. 초현실주의라고나 할까? 하하하~!”

“그렇게 이상하게 뱅뱅 돌리지 말고 얘기해보세요. 왜 내가 초현실주의자가 되는 겁니까?”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틀리지 않기 때문에 부담스럽고 두려운 거죠. 제가 교수님을 반대로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부분도 바로 그 부분이구요.”

“그런데 이 변처럼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두려워할 것까지는 없잖아요?”

“아니죠. 그 사람들도 개돼지급의 삶을 살고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뭐가 잘못되었는지조차 모르는 개돼지는 아니거든요. 개돼지들 틈에서 자신들이 작지만 자기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살고 있는 사람들인데 올바른 정의에 대해서 논하고 왜 그렇게 법을 집행하고 일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사람이 눈앞에 나타난다면 그들 입장에서는 불편하기 그지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가요?”

“네. 최소한 교수님께서 사회정의를 강의하는 교수가 아니라 현실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신다면 일을 직접 담당하는 자들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현명한 스텐스가 아닌 것은 맞는 거죠.”

“흐음.”

“그런 점에서 경찰청이나 서울경찰청을 압박하신 것은 저는 응원드리고 멋진 펀지라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처음부터 이 건의 담당 변호사였다면 교수님의 손발을 묶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고 하고 제가 가서 그 사람들을 구슬렸을 겁니다.”

“구슬려요?”

“구슬려야죠. 그 사람들은 그저 아주 멘털이 약한 자신이 갑이라고 인정해주길 좋아하는 개돼지 수준입니다. 그런데 그런 존재들에게 교수님처럼 옳은 것을 왜 올바르게 실천하지 않냐고 얘기하는 것처럼 불편하고 목을 조이는 행동은 없는 거죠.”

“정작 이 변의 설명이 훨씬 더 화가 나는 부분이 있네요.”

“네. 그런데 우리의 대화처럼 그것이 왜 짜증이 나고 왜 불쾌한지를 말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게 문제인 겁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네? 그건 또 무슨 논리인 거죠?”

“자아, 그 사람들에게는 매일같이 사건을 처리하는 게 그저 일상이고 일일 뿐입니다.”

“그래서요?”

“매일같이 똑같은 일을 겪는데, 그 사람들이 옳은 것이 뭔지를 몰라서 나쁜 놈들을 벌하고 착한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로 몰라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시나요, 교수님은?”

“으음.”


이 변의 지적은 정확했다. 이번 일을 겪어오면서 김 교수가 내내 고민하고 답답해왔던 부분을 그가 훅 하고 찔러 들어왔다.


“그런데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지 않나요? 그리고 그래야만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김 교수의 레퍼토리가 쭉 이어나가기도 전에 이 변이 손사래를 치며 김 교수의 시작을 막았다.

“그런데 그게 왜 교수님이어야만 하죠?”

“그거야 말로 우문 아닌가요?”

“아니요. 그래서 제가 전제를 달았잖아요. 제가 그저 친구의 입장이나 제삼자의 입장일 때는 교수님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교수님의 말씀이 다 옳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저만해도 교수님이 제 의뢰인이 되어서 그렇게 행동하고 다니시면 짜증을 내고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나한테 일임하고 가만히 있으시라고 화를 낼 겁니다.”

“그렇게까지 내가 물색 모르고 좌충우돌하고 있었던 건가요?”

“아니, 명예훼손으로 기소까지 되어 정식 재판까지 치르셨잖아요? 지금에 사 우리끼리의 말이지만 그건 말이 되는 일이던가요?”

“그렇게 말하니까 더 답답해지네요.”

“그렇죠. 그래서 저쪽에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소송도 소송이 되고 수임료를 챙길 수 있으니까 더더군다나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민사소송이야 누구든 제기할 수 있는 권리는 있으니까요.”

“후우!”


김 교수의 입장에서는 화가 났지만 그저 반발할 수만도 없는 말 그대로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저도 우울증 약 먹은 지 오래되었거든요. 물론 이혼하면서 그게 더 밀려오기는 했지만 이쪽 일을 하는 변호사들 중에서 우울증 약을 먹거나 공황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죠. 업무상의 스트레스라고만 치부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거죠.”

“그랬군요. 나는 몰랐어요. 이 변이 이혼한 거도...”

“이혼이야, 뭐 이전의 결혼생활도 두 아들 녀석들이 다 커버린 지금이야 말할 수 있지만 크게 훌륭하고 화목한 생활은 아니었으니까요. 하하!”

“사실 저는 이 사이비 목사가 어디까지 달릴 의도로 이러는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사실 자신이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조차 잘 모를 겁니다.”

“아동학대 재수사에 대한 부분을 경찰청에 찔러서 지금 아동학대 특별수사팀으로 넘기겠다는 말을 들은 시점이긴 하거든요.”

“아동학대 특별수사팀이요?”


이 변호사의 눈이 이채로운 빛을 내며 관심을 보였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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