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그 세 번째 수사(아동학대 특별수사팀) - 6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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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100% 실화에 근거한 이야기임을 밝혀둡니다.
자신이 제대로 사건에 대해 파악하지도 않았다는 점을 완곡하게 찔렸다는 사실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단순했고, 무식했으며, 그다지 이 사건에 열정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는 티를 냈다. 그녀가 오직 관심 있는 것은 한 가지. 위에서 내린 명령과 지시 하나였다.
“그래서, 재수사를 했던 중양서 여청과 강력팀 팀장에 대한 진정서는 유지하실 건가요?”
“그러면 그걸 지금 없었던 걸로 취하하라고 나한테 되묻는 거요?”
완곡하고 예의를 갖춰주는 것에도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교수의 말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네?”
“직무유기죄로 정식 고소장을 넣어줘요?”
“아니, 그게, 그런 의도로 물어본 게 아니라...”
“그런데 아동학대 수사한다는 수사관이 왜 자꾸 이전에 수사를 왜곡한 수사관에 대한 조사를 묻는 건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데, 내가 이상한 건가요?”
“으음.”
그녀는 이제까지 자신이 투박하지만 강하게 밀면 밀리는 일반인들만 상대해오다가 상관도 아니고 감찰 담당 수사관도 아닌데 이렇게 거북스럽게 자신의 말문을 틀어막는 상대는 만나본 적이 없었다.
당혹스러웠고 불쾌했으며 무엇보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조금씩 속에서 욱하는 것이 올라올 것만 같았다. 묘한 것은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가 무서운 상대가 아주 날카로운 검을 검안에 두고 뽑지 않았다는 살기가 느껴져 평상시처럼 으름장을 놓지도 못하는 것이 더욱 말을 꺼내기 불편하게 만들었다.
“일단 얘기한 대로 정말로 이 사건이 다시 검토를 해야 한다고 말했던 그 자들의 말이 맞는지 본인이 직접 자료를 확인하고 다시 얘기를 하죠. 만약 강 경사가 여러 자료도 아니고 내가 콕 집어서 초동 수사관의 수사기록을 요약한 그가 직접 작성한 수사결과 통지서를 보고서도 이해가 안 간다면 그때 가서 다시 설명하도록 하죠.”
“그러시죠.”
“다만 한 가지!”
“네?”
교수가 다시 전화를 막 끊으려는 그녀의 성급함의 뒷덜미를 잡아채 멈춰 세웠다.
“만약 강 경사가 봐도 인정할만하다면 이제까지 강 경사에게 이 건은 사건이 안 되는 건이니까 덮으라고 했던 상관의 말을 신경 쓰지 말고 수사, 확실하게 하는 것으로 약속 하나 해주시죠.”
대화 중에 이미 김 교수는 강 경사의 성향과 그녀가 어떤 경우에 발끈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어떤 부분에 자존심을 내세우고 싶어 결코 다른 말을 할 수 없는지 그 외통수의 상황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해서 수 읽기를 끝낸 터였다.
그녀는 우직하고 무식하고 단순하기는 했지만 영악하거나 자신이 본 사실을 눈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부정할 만큼 사악한 부류는 아니라는 확신이 섰다. 그래서 그녀에게 미리 확답을 받아두면 그녀 같은 성향을 가진 이들이 보이는 욱하는 성향이 이미 내지른 자신의 약속이나 말을 바꿀 사람이 아니라는 계산이 끝난 터였다.
“좋습니다. 제가 확인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입건이 되었더라도 저는 접을 거니까요.”
갑자기 통 큰 사람들의 내기처럼 통화가 거칠게 끝났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유선 연락 대신 장문의 이메일이 도착한 것은 이틀이 지난 후였다.
진정인 귀하,
말씀하신 대로 자료를 살펴보았습니다.
입건을 취소할만한 사항이 아니라는 점은 인정하고 입건된 상황에서 조사를 다시 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다만, 두 가지를 확실히 해주셨으면 하여 다시 한번 통화에서 말씀드린 부분에 대해서 안내드립니다.
재수사를 했던 중양서 여청과 강력팀 팀장인 경위에 대한 부분은 현재 ‘진정’의 형태로 선생님은 진정인, 해당 경위는 ‘피진정인’의 신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문건이나 저와의 통화 등을 종합해보면 선생님께서는 이 사건에 대해 수사 심의 신청과 해당 수사관에 대한 진정이 혼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수사가 잘못되었다고 여기셔서 수사 심의를 신청하실 경우에는 [서울경찰청- 수사 심의계]에서 대상 사건 수사에 과오가 있는지 또는 경찰관이 직무 유기를 한 점이 있는지 등을 심의하는 절차를 진행합니다.
이때, 사건 수사시스템상(KICS) 사건은 ‘진정’으로 접수되어, 진행되는 방식입니다.
진행 결과, 해당 경찰관의 수사과오 또는 직무유기 혐의가 발견되지 않을 시, 내사종결에 준하여 종결 처리됩니다. (검찰 송치 안됨)
또는, 진행 결과, 해당 경찰관의 수사과오 또는 직무유기 혐의가 발견될 경우, 이때 범죄인지(입건)의 절차가 진행되어 피진정인은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되게 됩니다. (검찰 송치됨)
한편, 담당 경찰관의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 형사법적인 처벌을 원할 경우, 고소/고발장을 제출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고소/고발장을 제출할 경우, 선생님은 위에 설명해드린 절차와 같은 진정인 신분이 아닌 / 고소인 또는 고발인의 신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진행하시기 위해서는 별도의 고소/고발장을 제출하셔야 하는데, 그럴 경우, 공무원 범죄로 취급되어 해당 경찰관이 소속된 경찰서가 아닌 중양 경찰서 인접 다른 경찰서(강북의 다른 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에서 수사를 진행하게 됩니다.
고소/고발의 경우, 즉시 (입건) 상태가 되며, 이와 동시에 피고소인(해당 경위)은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대상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선생님은 중양서 여청과 강력팀장인 경위와 관련하여, 국민신문고로 민원을 제기하여 주셨을 뿐, 수사 심의 절차를 희망하여, [수사 심사신청서]를 제출한 것도 아니고, 경위에 대한 [고소장 또는 고발장 제출] 한 것도 아닌 상태였기 때문에 서울경찰청 수사 심의계에서는 위 국민신문고 민원을 수사 심의 요청으로 취급하여, 그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분명히, 정확하게 안내드립니다.
위에 설명드린 두 절차가 동시에 진행될 수는 없습니다. (아래 규칙 제2조 제3항 제1호 근거)
경찰 수사사건 심의 등에 관한 규칙 제2조
③ 수사 심의 신청을 접수한 경찰관서는 신청자와 충분한 상담을 실시하여야 하며 , 당해 수사 심의 신청이 다음 각 호의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이를 수리하지 않고 반려할 수 있다.
1. 동일한 수사 심의 신청이 이미 접수되어 진행 중이거나 종료된 경우
2. 구체적 사실이 적시되어 있지 않거나 내용이 불분명한 경우
3. 근거 없는 주장이거나, 사실관계 또는 법령을 오인한 결과로 인한 것인 경우
4. 수사를 방해하거나 지연시킬 목적이 명백한 경우
그렇기 때문에 직무유기로 고소장을 제출하시게 되면 수사 심의절차는 자연스럽게 밟지 않게 됩니다. 현재 서울청 수사 심의계에서 하달받아 장 경위가 진행하다가 저(강 경사)가 인계받은 이 건은 현재 ‘진정’의 절차로 진행 중입니다. 때문에 선생님은 진정인 신분입니다.
선생님께서 국민신문고를 통해 접수해주신 고발장은 피고소인 추 목사의 아동학대 사건의 고발장이기 때문에, 별건으로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수사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면’ ‘수사 심의 제기 취소 요청서’를 저에게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고 ‘담당 수사관의 직무유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면 별도의 고소장 또는 고발장을 작성하여, 새로운 절차(중양 경찰서 부근 인접 경찰관서에 제출) 진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원하시는 절차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명확히 해서 진행해주시길 바랍니다.
재수사를 했던 중양서 여청과 강력팀 팀장인 경위 사건 관련하여, 고소/고발인이 지위를 갖고 싶다면, 정식 고소 절차를 진행하시면 됩니다.
그러한 상황을 희망하실 경우, 선생님은 고소/고발인의 지위를 가질 수는 있으나 새로운 수사관에게 이 사건과 관련해서 처음부터 또 설명을 하고 고소 보충 진술조사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본인이 두 번 얘기하기 싫다, 수사관 바뀌는 거 싫다. 본인은 ‘진정인’이라도 상관없다.라는 취지시라면, 제(강 경사)가 계속 ‘수사이의’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실지 이메일로 회답 주시기 바랍니다.
“하아! 정말!”
이메일을 한눈에 훑어 내린 김 교수의 입에서 어이없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물론 현장에서 일하는 서장급의 문장력이나 문서를 작성하는 능력도 허술하다고 핀잔을 듣는 판에 경사의 문서 작성 능력이 수려하고 훌륭할 리가 만무하다고 여기긴 했지만, 그녀의 문서는 솔직 담백 그 이상이었다. 자신이 어떤 명령을 받았는지 그리고 어느 쪽으로 압박을 해서 어떤 답을 이끌어내고 싶은지가 너무 투박하게 드러나서 모른 척해주기도 어려울 지경의 어이가 없는 자기 고백서 수준이었다.
왜 초동 수사관이 수사결과 통지서를 작성하면서 그렇게 허술한 논리를 펴고, 심지어 아이를 던지려고 했던 행위에 대해서 명백하게 인지하고 있었다는 자기 고백을 공문에 버젓이 남기는 일이 그들의 지적 수준이 지나치게 낮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많지 않은 월급을 받으며 일만 많이 한다고 투덜거리는 소시민이고, 자신들이 민중의 지팡이로 깨끗한 척을 하고 싶어 하지만, 뒷돈을 받거나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하거나 그쪽으로 유도하여 진실을 왜곡하고 은폐하려고 들 때 그것을 자연스럽게 덮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만한 지적 수준을 갖추지 못한 것뿐이었다.
해맑은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려고 들 때 보이는 그 어색함이, 그 하향 평준화된 조직 내의 구성원들이 진실을 감추려고 할 때 보이는 위화감과 어색함에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어린아이들은 진실을 들이댔을 때 울먹이거나 울음보를 터트리며 잘못을 시인하지만 그들은 수갑을 차고 피고인의 신분이 되어 꼬리가 잘려 형사처벌을 받을 지경이 되어서야 자신은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고, 혹은 잠시 몇 푼 안 되는 돈 때문에 눈이 멀었었다고 때늦은 후회를 하는 어리석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기 그지없는 한심한 작태를 가진 연약하기 그지없는 욕심쟁이일 뿐이라고 교수는 생각했다.
그녀의 이메일에 어설픈 압박과 분위기 몰기는 결국 그대로 자신에게 이 사건을 맡기고 절대 고소인의 신분으로 직무유기 고소장 같은 것을 내지 말라고, 그 귀찮은 일을 하려면 일반인들이 얼마나 어렵고 복잡다단한 일을 감수해야 하는지를 겁주는 것에 상당 부분 내용을 할애하고 있었다.
교수가 코웃음을 친 것은 바로 그 인지의 차이에 있었다. 이제까지 세 번째 수사를 경찰청 본청을 통해 종용당하는 입장을 처하고서도 그들은, 그리고 강 경사라는 여자아이는 교수가 어떤 캐릭터인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그저 자신들이 이제까지 하던 방식으로 마구잡이 칼을 휘두르며 겁먹으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차라리 이전 담당 수사관이던 장 경위는 아이 엄마의 입장이라면서 나중에는 통화 중에 눈물까지 보이며 죄송하다고 경찰 조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이 부정을 바로잡지 못하고 나서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참회의 목소리까지 냈었다.
하지만, 그녀의 자의든 아니면 그녀의 양심 고백이 거슬려 다시 다른 부서로 보내버리려는 간부들의 몸부림이든 장 경위는 특별수사팀에서 배제되어 날아가버린 상태였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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