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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st Writer May 18. 2022

A필러에 가려서 안 보였다는 핑계

핑계로 성공한 사람은 김건모 밖에 없다


자동차 사고를 주로 다루는 유튜브를 꾸준히 보다 보면 정말로 자주 나오는 문장이 있습니다. 잊을만하면 나오고, 또 잊을만하면 또 나오고.


"이거, 보일까요? A 필러에 가려서 안 보이겠죠? 이러면 안 보이죠."






우선 A 필러가 어떤 건지 말씀을 드리자면, 모든 자동차의 전면 유리는 가로가 긴 직사각형으로 되어 있죠? 이러한 직사각형의 4개의 테두리 중에서, 수직선 테두리에 해당하는 선분이 A 필러입니다. 즉, A 필러는 두 군데가 있습니다. 왼쪽에 하나, 오른쪽에 하나.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충격 물체가 사람이 있는 공간까지 밀고 들어오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엔진룸이 있는 보닛은 크럼플 존이 구겨지면서 더 이상 충격이 전달되지 못하도록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보통 사고 사진을 보면 엔진이나 트렁크 부분은 엄청나게 구겨지고, 상대적으로 사람이 앉아있는 실내공간은 꽤 튼튼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창문 부분은 이러한 크럼플 존을 설계할 수가 없습니다. 차문은 어찌어찌 튼튼하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결국 유리창은 두께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뭔가 충격을 흡수할만한 것을 넣을 공간 자체가 없습니다. 그러면 답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창문 테두리 자체를 엄청나게 튼튼하게 만들어야 하죠. 그래서 A 필러의 강철 강도는 자동차 전체 부품에서 가장 튼튼하고 쉽게 부서지지 않도록 제작됩니다. 평소에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A 필러는 생각보다 정말 두껍습니다.




A 필러는 태생적으로 두껍다 보니 필연적으로 어떤 문제를 하나 수반합니다. 바로 좌회전이나 우회전 시에 도로 위의 특정한 고정 공간이 꽤 오랜 시간 동안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문제입니다. (직진 주행에선 계속해서 새로운 공간이 눈에 들어오니, 그런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동차 사고 영상 모음집에서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단골 소재가 바로 A 필러에 시야가 가려서 보행자를 충격하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은 대개 주택가 이면도로 등의 골목길이나 주차장 등의 '도로 외 구역' 등에서 일어납니다. 좁은 길은 신호등이 없는 곳이 많고 사람들이 도로/인도 구분 없이 굉장히 자주 왕래합니다. 이러한 골목길에서 좌/우회전을 할 때는 A 필러로 인해 시야가 가리는 곳에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굉장히 조심해야 합니다. 



이에 반해 보통 자동차가 빠르게 주행하는 '큰 도로'의 교차로는 신호를 받아야만 보행자가 들어오기 때문에 좌/우회전의 A 필러 사각지대가 있어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무단횡단이 아니라면 보행자 신호가 없을 때 도로에 사람은 없습니다. 반대로 보행자 신호에서는 차들이 움직일 수 없습니다.






자동차 사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차대 차 사고, 그리고 차대 사람 사고. 그중에서 자동차와 사람이 충격하는 후자는 굉장히 치명적입니다. 흔히 우리가 작다고 무시하는 경차 스파크나 모닝의 무게가 무려 1톤입니다. 참고로 우리 주변에 널리 보이는 1톤 트럭은 적재량이 1톤이지, 공차 중량은 거의 2톤에 육박합니다. 짐을 실으면 많게는 3~4톤까지 나갑니다. 전기차는 배터리 무게 때문에 그것보다 더 나갑니다.


차대 사람 사고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차대 '어린이' 사고입니다. 다 큰 성인이야 덩치가 있으니 그럭저럭 시야에 들어오지만, 어린이들은 키가 작고 시야에 잘 안 들어옵니다. 특히 전고가 높은 SUV 나 트럭의 운전석에 앉으면 A 필러 뿐만 아니라 앞범퍼 바로 앞에 있어도 잘 안 보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아파트 단지 지상에 택배 트럭 차량의 출입을 금지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주로 뛰어노는 공간이니까요.


그래서 우리 모두는 어릴 때 학교와 가정에서 필수적으로 자동차를 조심하라는 교육을 받습니다. 길 건널 때는 꼭 좌우를 살피고 안전하게 천천히 건너기. 그리고 신호등 표시와 색깔 보는 법. 평생을 잊지 말아야 할 필수적인 생활 지식입니다.


그에 반해 더욱더 조심해야 할 운전자들은 제대로 교육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필자만 하더라도 운전면허 교육에서 한 번도 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A 필러의 사각지대에 대한 교육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오늘도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운전자들이 주택가 좁은길이나 이면도로에서 좌/우회전을 할 때, 그냥 거침없이 핸들을 돌립니다. 그러면 정말 큰일 납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그래서 뭐? 어떻게 하라고? 에 대한 답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주택가 좁은길이나 골목길에서 좌/우회전할 때 A 필러 사각지대를 없애려면, 머리를 조금만 기울이면 됩니다. 많이 기울일 필요 없습니다. 그냥 3 cm 정도면 됩니다. 앞으로 기울여도 되고, 옆으로 해도 됩니다. 그럼 사각지대가 모두 없어집니다. 혹시 목 디스크가 있어서 움직이기 힘들거나, 귀찮아서 머리를 계속 헤드레스트에 붙이고 싶은 사람들은 그냥 택시를 타면 됩니다. 보험료/기름값/세금 생각해보면 자차보다 택시가 쌉니다.


그러면 매번 운전할 때마다 그래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큰길'에서는 안 그래도 됩니다. 어차피 보행자 신호가 없으면 도로에 사람은 없으니까요. 큰길에서는 보행자와 자동차가 동시에 도로 공간을 점유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면에 '작은 길'에서 좌/우회전할 때는 머리를 기울여 확인을 해야 하는데, 사실 그런 구간은 길지 않습니다. 카카오맵을 아무 데나 펴놓고 보시면 알겠지만, 자기가 어디에 살든지 간에 큰길로 나가는 데는 고작해야 몇십, 몇백미터 밖에 되지 않습니다. 자동차는 대부분 생애를 큰길 위에서 달립니다. 어떤 아파트는 출입구 나오자마자 큰길인 곳도 있습니다.



요즘에 자동차들은 정말 편안하고 안락하게 나옵니다. 시트에는 열선도 나오고 통풍도 됩니다. 헤드레스트는 부드러워서 마치 안마 의자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자동차의 본질은 사람을 '안전하게' 운송하는 데 있습니다. 차 안에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차 밖에 있는 사람도 편하고 안전해야 합니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차에서 내리면 다시 보행자가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한 가지 습관. 머리를 3 cm 만 기울이면 됩니다. A 필러 핑계는 더 이상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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