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orest Writer Nov 24. 2021

운전면허의 추억


정말 많이 더웠던 몇 년 전 여름, 나이 서른에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면허 시험장을 찾았다. 사실 이십 대에는 평소에 운전할 일이 전혀 없었고, 시내 약속은 지하철, 가끔 여행이나 일정이 있는 경우도 기차나 버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더더욱 면허가 필요하지 않았다. 아니,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지냈던 것 같다. 그렇게 십 년이 흘렀다. 삼십 대에 직장인이면 오너 드라이브는 해야지.


여러 군데의 면허 시험장을 검색해서 이것저것 꼼꼼히 알아봤다. 가까운 곳도 있었지만 조금 더 평이 좋은 멀리 있는 시험장을 선택했다. 평일에 일정이 빌 때마다 학원 셔틀이나 버스를 타고 시험장으로 향했고, 하루에 들을 수 있는 한계치가 있어서 꽤 여러 날을 사용해야 했다. 사람들이 웬만하면 두 번 찾을 일이 없는 학원 시설은 태생적으로 형편없기 때문에, 화장실에 갈 때는 숨을 얕게 쉬어야 했다. 그래도 골프장이 같이 보이는 저녁노을은 꽤 아름다웠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주행 시험일이 다가왔다. 실기 교육을 들으면서 운전 잘한다고 강사님께 칭찬도 많이 들었고, 자신감이 어깨에 양껏 올라와있던 나날들이었다. 시험용 차량은 기어가 6단이고 후진이 따로 빠져있어서 당황했지만, 어차피 6단은 시내에선 쓸 일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교육용에 비해 차가 정말 깔끔했다. 거침없이 시동을 걸고 시험장을 빠져나와 주 도로에 합류했다.


시험을 보면서 한참 동안을 감점되지 않아서 강사님이 할 일이 없었다. 내비게이션이 친절히 알려주는 코스 대로, 기어를 부드럽게 바꾸면서 도로를 가르며 나아갔다. 언덕도 문제없고 차선도 부드럽게 변경했다.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강사님이 앉은 모습이 편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마지막 코스를 돌아 시험장으로 다시 복귀하는 일만 남았다. 유턴을 해서 차를 돌려 나가는데 내비게이션에서 안내가 나왔다.


실격입니다. 차를 가장자리에 대고 내리세요.


뭐지? 방금 전까지 점수가 100점인데 무슨 말이야. 나는 어리둥절한 채로 계속 주행하려 했지만 강사님이 차를 옆으로 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하차했다. 운전석을 강사님께 넘기고 조수석으로 바꿔 앉았다. 그러자 강사님이 내가 방금 유턴을 할 때 중앙선을 침범했다고, 그건 점수랑 상관없이 무조건 실격이라고 말했다. 아니 유턴을 하려면 당연히 중앙선을 넘어야 되는 건데 무슨 말이야. 나는 한참을 이해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앞바퀴는 중앙 점선을 지나갔지만, 핸들을 왼쪽으로 돌린 채로 차가 진행하면서 왼쪽 뒷바퀴가 노란선을 물어버린 것이다. 자동차는 뱀이 아니라서, 회전을 할 때는 머리가 지나간 곳과 꼬리가 지나가는 곳이 달라진다. 정확히는 앞바퀴에 비해, 뒷바퀴는 조향 기능이 없기 때문에 조금 더 회전축 안쪽으로 돌 수밖에 없다. 물론 그때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100점으로 탈락했다. 

며칠 뒤, 나는 재시험을 보기 위해 또다시 시간과 돈을 들여서 시험장을 찾았다. 첫 시험과는 다르게 하늘이 회색빛에 구름이 가득했지만 비는 오지 않아서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 시험이 끝나고 딱 내 시험 차례가 되었을 때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그때 면허 시험날 만큼의 많은 비를 운전하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야말로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물을 들이붓는 지경이었다. 우당탕탕. 퍽퍽퍽퍽. 이거, 설마 앞유리 깨지는 거 아냐?


와이퍼가 유리를 지나가자마자 다시 그 부분은 비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와이퍼가 아무리 빠르게 반복 운동을 해도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앞은 와이퍼라도 있어서 양반이었다. 사이드 미러에 물이 가득 맺혀서 옆이 보이지 않았고, 아예 창문을 열고 비를 맞으며 주행했다. 사이드 미러는 쓸데없이 위로 길고 옆으로 좁아서 옆 차선이 다 보이지도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1톤 트럭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생각하는 부분이다.


앞도 옆도 잘 보이지 않는 재시험, 이번에도 떨어지면 망신이라는 부담감으로 인해 실수가 나오고 점수는 계속해서 깎여나갔다. 턱걸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썩 만족스럽지도 않은 결과, 애매한 점수로 합격했다. 며칠 뒤, 나는 면허증을 수령하기 위해 또다시 시간을 들여서 시험장을 찾았다. 어휴 지겨운 이 거리. 그래도 막상 반짝반짝한 면허증을 받으니 기분이 스르륵 녹았고, 데스크 직원의 표정은 한결같이 무덤덤했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났고, 나는 평범한 승용차의 오너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 시험을 한번 떨어졌던 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이제는 확실히 안다. 만약 시험에 한 번에 붙었더라면, 좁은 골목길에서 나올 때 머리가 쏙 빠져나왔다고 핸들을 쉽게 돌렸을 것이고, 아마도 몇십 몇백만 원은 해 먹었을 것이다. 덕분에 좁은 길을 빠져나올 때 반경을 넉넉하게 잡고, 사이드 미러로 후방 측면 부분까지 점검하는 버릇이 잘 남아있다. 아직까지도 다른 차와 접촉해 본 적이 없다.


아직 면허 시험날 만큼의 강력한 비를 운전하면서 본 적이 없어서, 웬만한 비는 면역이 잘 되어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상위 차선은 되도록 지양하고, 평소보다 낮은 기어로 다녀서 도로와 잘 밀착되게 차를 안정시킨다. 폭우가 오는 날에는 발수 코팅도 분무기로 뿌려주고, 앞 차량과도 거리를 더 벌려서 시야를 넓게 가지려고 노력한다. 이게 다 어찌 보면 작은 실패가 만들어 준 면허 시험에서 얻은 소중한 배움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에서 운전을 시작한다면 알게 되는 17가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