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뭘 알아? 모르니까 시작했지:(
예중 입시 끝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예고 입시가 스타트되었다. 딸은 약 2년간의 예중 입시로 2020년도 선화예중 미술과에 입학한 꼬마 예술가이다.
07년생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미술에 남다른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라고 시작하고 싶으나 실은 아니다. 손가락에 힘 좀 들어가기 시작할 무렵부터 클레이 좀 심하게 가지고 놀았다는 게 그나마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이랄까. 동네 문방구에서 파는 간장 종지 같은 클레이로는 감당이 안되어 늘 인터넷으로 대용량 클레이를 떨어지지 않게 대주었다. 그때는 큰 아이에게 손이 많이 갈 시기라 둘째인 딸아이가 클레이로 혼자 시간을 보내주면 너무 이쁘고 감사하고 대견할 뿐이었다. 좀 더 자라니 미술학원은 보내달라 했고, 미술학원 2년 정도 다니니 같은 화실 언니처럼 예중을 가고 싶단 말을 먼저 했다. 그렇게 예중 입시를 덜컥, 뭣도 모르고 시작했더랬다. 모르니 시작했지, 알면 두 번 세 번 생각할 일이란 것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고난의 2년을 보낸 결과, 예중에 들어가긴 했지만, 코로나와 함께 예중인데, 예중 아닌, 예중 다니는 생활을 2년 하고 나니 벌써 중3. 예중 아이들의 숙명은 예고인 것을... 그렇게 또 2022년 올해, 딸은 예고 입시생, 나는 입시생 엄마가 되었다.
예고 입시생, 엄밀히 말하면 중3인데, 고3도 아니고 이렇게 별 일처럼 굴 일일까 싶지만은,
예고 입시생의 날들은 공부만 하는 여타 중3학생들의 일과보다 고되다. 물론 다들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예중 아이들은 일반 중 아이들보다 공부하는 과목이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지금은 많이 없지만 공부를 못해서 혹은 하기 싫어서 예체능으로 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공부랑 상관없이 예체능 실력만으로 예고를 진학한다고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예중이라고 공부하는 과목 수가 적은 것은 절대 아니며(일반 중과 같음), 요즘엔 예중 가는 아이들의 학업 성적 수준이 너무 높아 과고나 외고로 진학하는 학생이 있을 정도이니, 예중은 들어가기도 힘들지만, 다니기도 힘든 곳임이 틀림없다. 게다가 예중에서 예고로 진학하기 위해서는 학업과 미술의 이중고를 겪어 내야 하니, 예중 입시생도, 옆에서 보는 부모도 여간 힘든 1년이 아니다. 예고 입시는 학업 성적 40%와 실기 성적 60 % 의 합으로 당락이 결정된다. 예고를 지망할 정도이면 실기 성적이 큰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학업 성적의 1점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수도 있기에, 공부와 실기 두 마리를 다 쫓아야 한다. 그래서 이제 겨우 15살, 16살 아이들의 24시간이 국어, 영어, 수학 학원과 화실로 꽉 채워져 숨 돌릴 새가 없이 돌아간다. 입시 시작이라는 의미는 중3이 되면서 화실의 비중이 커지는 1월부터를 말하는데, 일주일 중 4일이 화실 스케줄이다. 한번 화실에 가면 두 타임 이상은 소화하고 오는데, 여기서 한 타임의 단위는 4시간이다. 즉 8시간 동안 그림만 그리다가 와야 하니, 화실 가는 날은 다른 학원이나 공부 스케줄을 잡을 수가 없다. 아마 갈수록 화실에 머무르는 요일이 늘어날 것인데, 그렇다고 학과 공부를 안 할 수는 없으니 틈틈이 국영수 공부도 하는 와중에, 화실에서는 세 타임을 소화하는 날들도 생길 것이다. 그때의 인사는 "선생님 잠시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하니, 등받이도 없는 화실 의자가 너무나 가슴 아플 뿐, 이미 발 들여놓은 꼬마 예술가들의 고된 입시 생활에 그 어떤 말도 한마디 보태기가 조심스럽기만 하다.
본인이 선택한 길이니, 힘들면 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겁이 난다. 어쨌거나 4년 넘게 본인의 진로라고 여기며 걸어온 길인데, 엄마라고 그만두니 뭐니 할 자격이 있나 싶은 이유도 있지만, 행여 위로처럼 뱉은 말인데 진짜 그만두면 어쩌지? 하는, 부모로서 드는 본전 생각.
그렇다. 예중, 예고 준비시키는 데 돈 엄청 많이 든다. 요즘 세상 애 키우는데 돈이 얼마나 들어 가는지... 오죽하면 자녀 수가 부의 척도라는 말까지 있을까? 게다가 미술이건 악기건 우리 딸처럼 예능으로 진로를 정했다면, 음... 그 금전적 뒷바라지는 웬만한 보통 가정에선 눈물 콧물 쏙 빠지게 등골이 휘는 정도이다. 살짝 밝히자면, 예중 입시 2년간 들어간 비용만 중형차 한 대 값.
진짜 이 쪽 방향으로 첫발을 디디는 순간에 아무것도 모르니 시작했지, 알고서는 쉽게 결정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금전적인 것뿐만이 아니다. 미술 하는 아이를 위해 매일매일 해줘야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연필 깎기이다. 소묘용 연필은 2B와 4B인데, 8시간 이상을 주구 장창으로 그려대니 매일매일 한 다스 이상씩 깎아 놓아도 부족하다. 연필 깎기 기계가 아닌 커터칼로 길쭉길쭉 뾰족뾰족 무념무상으로 깎아댄다.
연필 깎기 기계를 사용한다면 연필심이 저리 길게 나오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커터 칼로 작업을 해주어야만 한다. 이것도 손재주라면 재주인지라, 어떻게 하면 잘 깎을 수 있나요? 하며 엄마들끼리 팁을 주고받기도 하고, 이것이 고역인 줄 아는 상술 가득한 업계 관련자는 몇 프로 덤을 붙여 깎은 연필을 판다는 것 같기도 하다. 심지어 대치동 어디에 선가는... 재야의 숨은 고수가 저렴하게 연필 깎아주는 알바를 한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았다. 딸이 예중 입시할 적에 2~3 다스씩 매일매일 깎아 대던 어느 날은 그 실체도 없는 아르바이트생을 수소문해볼까 한 적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입시생 연필 깎아 주는 재야의 숨은 고수가 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빠르게 깎는 수준이 되었고, 나만의 팁을 말하자면 연장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후에 어떤 연장을 사용했는지도 밝히겠지만, 일단은 그러하다.
연필과 함께 구비해줘야 하는 것은 지우개인데, 미술 입시생들이 사용하는 지우개는 일반 지우개보다 더 말랑말랑하고 쉽게 닳는 일명 '떡 지우개'로 항상 하얗게 유지해 줘야 한다.
매번 새 지우개로 준비해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10개 한 줄의 떡 지우개도 너무 헤픈 현실이라... 나를 비롯하여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거친 사포에 까만 부분을 갈아주는 것이다. 이것 역시 한무 데기 갈고 나면 손목과 손가락이 틀어져서 얼얼해지는데 결국은 무념무상이 최고이며, 예중 입시 막판에는 기도하듯 의식처럼 갈게 되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도, 대놓고 말해도, 이런 육체적인 뒷바라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미 치러본 예중 입시의 기억과 현실에서 돌아가고 있는 지금의 예고 입시 생활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학원과 화실을 오가는 딸은 짜증과 히스테리가 생애 최고치이다. 딸은 매일매일 그 모든 부정적 감정들을 엄마에게 쏟아내고, 그것을 받아주고 참아내고 달래고 격려해야만 하는 것이 예고 입시생의 엄마로서 마땅히 해내야 할 일이다. 치열하게 세상과 싸우다 온 딸을 상대해 줘야 하는 정신적 노동이 너무나 힘들지만, 눈앞에 힘들어하는 내 새끼는 보이고, 그래도 어떻게든 도와줘서 입시를 잘 치러내게 하고 싶은 마음에, 인간으로서 감정은 숨기고, 엄마로서의 감정만 드러내며 그렇게 나 자신과도 싸울 수밖에 없다. 2022년 1월, 그러한 전쟁의 서막이 올랐고, 그렇게 뭣도 모르는 예고 입시생 엄마로서 나의 생활이 또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