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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엄마 Feb 03. 2022

2. 본격적으로 써보는  예중 입시의 첫걸음

- 아이의 선택 + 엄마의 학원 결정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입시에 진심인 나라이다. 대한민국의 광적인 사교육과 치열한 입시를 다룬 소설인 정아은 작가의 장편소설 <잠실동 사람들>에서 언급한 바, 수능시험 당일, 영어 듣기 평가 시간에는 비행기의 이, 착륙조차 함부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행여나 비슷한 시간에 걸린 비행기는 영어 듣기 평가 시간과 겹쳐 잠시 하늘에서 대기할 예정이니 양해 부탁드린다는, 수험생들의 듣기 평가가 무사히 끝나기를 바란다는 기장님의 안내방송을 들을 수 있는 기상천외한 나라인 것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정상적으로 수료한 학생들이 '대학'이라는 같은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너무나 정상적인 나라여서, 또 대부분의 부모들이 영혼을 탈탈 털어 열성적으로 그 길을  지원해주는 것이 당연한 나라여서, 입시를 대하는 두려움과 진정성에 대해서 내가 유난스럽다거나 특별한 케이스가 아님을...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미술에 특별한 재능 없이 또래의 평균보다 살짝 높은 '흥미'만을 보인 딸이 예중 입시를 결심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말의 일이다. 마침 이 친구가 재미로 다니던 미술학원에 입시하는 예중 언니가 있었고, 그 언니의 집중과 노력이 너무나 멋져 보인다는 말을 몇 번 하는 듯싶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나에게 '예중' 이 무엇인지 아냐고 물었고, 모른다는 엄마에게 본인이 가보고 알려주겠노라고, 그럼 그래 보자고~ 이렇게 그 엄청난 주제를 농담처럼 가볍게 따먹었다. 그리고 아무 새로울 것 없는 며칠이 흐르고, 그 대화가 잊혀 갈 때쯤... 딸아이가 다시 예중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예중'이라는 델 갈 수 있냐고, 이전보다 진지하게 당장 알아보라는 눈빛으로 물었다. 그러니까 이런저런 여차저차 한, 이 긴 이야기의 최초의 지점인 예중 입시의 시작은 '절대적으로' 딸의 의지와 선택이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밝힌다. 이 시작의 계기가 입시하는 내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인데, '본인의 선택이었다'라는 정당성이 없으면 포기하고 싶은 몇 번의 고난을 이겨낼 수가 없다. 아직 몸도 마음도 여물지 못한 어린아이들이 그림만 그리고 사는 막판의 몇 달은 엄마도 가족도 본인도 너무나 힘들다. 그래서 입시 레이스 내내 꾸준히 몇 명씩 빠져나가고, 잘 버티다가 한 달을 남겨두고 그만두는 친구들도 생긴다. 한창 놀고 싶은 욕구가 강할 때이고, 이른 사춘기가 겹치기도 하는 시기이니 아이를 다독거리며 으쌰 으쌰 끌고 나가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여차하면 내놓을 '내가 시킨 것은 아니잖니?'라는 보루를 쥐고 있던 엄마에게 '그만두겠다' 소리까지는 안 나왔다는 것.

그러하니, 재미로 보내 놓은 미술학원에서 '소질이 보임'을 운운하는 담당 선생님의 권유나, 엄마의 못다 한 학창 시절의 꿈을 이뤄주길 바라며 반강요로 예중 입시에 진입하려는 분이 계신다면 말리고 싶다. 진정 본인의 선택이 아니라면 힘든 길이다. 본인의 의지로 다잡아야 하는 순간이 몇 번이고 온다. 나이가 어려도 의지는 고난에 맞서 더 강하게 키워지는 법이다.




두 번 세 번 심사숙고하여 미술 입시를 결정했다면 그다음은 입시 전문의 미술학원 선택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였기에 좋은 미술학원을 찾아주는 것이 절실했는데, 미술로 예중 예고 입시를 위해 꼭 학원을 다녀야 하는 것인지를 묻는다면 과거에도 지금도 100% '예스'이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다면 모를까, (천재적인 재능이 있더라도 입시미술은 다르다고 했다.) 미술 입시는 어쩌면 학원 선택이 전부라 해도 맞을 것이다.

딸아이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예중 예고 입시로 유명한 미술학원이 집에서 5분 거리에 있었다. 소위 미술 예중 입시의 빅 3이라고 불리는 곳이  압구정동의 '산***', 대치동의 '예**', 반포의 '전원***'였고(2019년 기준입니다), 전년도 입시 결과를 보면 이 세 학원에서 보내는 학생은 예원학교와 선화예중 미술부 정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었다. (예의를 갖춰 절반 이상인 거지, 실제로는 더했을 거라는). 높은 예중 합격률을 보이니, 지방에서도 고속버스를 타고 다니는 대단한 열성의 친구들도 있어서, 빅 3 학원은 합격률뿐 아니라 규모면에서 '빅'스러웠다. 딸이 다닌 학원에서만 예중 입시생이 50명이 넘었으니, 매출로만 따져도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나을 거라는 남편의 말은 괜한 말이 아니었다. 규모가 크다 보니 가진 정보력이나 준비생들이 많아서 쌓일 수밖에 없는 노하우나 데이터들은 대형학원의 장점으로 작용하여, 매년 합격률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소 개인 화실이 가진 장점 또한 있겠지만, 입시의 결말은 합격이어야 하므로 학원 선택의 제1기준은 무조건 입시결과의 히스토리 확인이어야만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5명이 준비해서 5명이 전부 합격한 학원과 10명의 입시생 중 5명만 합격한 학원 또한 충분히 비교해 보아야 한다. 합격 인원이 아닌 합격률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의 선택이, 노력이, 도전이 성공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부모들의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다. 이런 마음을 이용하여 좋지 못한 상술로 부모들을 애끓게 하는 학원도 없지 않을 것이고, 작지만 열정적인 선생님이 사랑으로 아이들을 이끄는 학원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입시 뒷바라지의 부모들이 서로 의지하고 여러 정보들을 공유하는 카페의 이용도 추천하는 바이다. 나는 네이버 카페인  '예 꼭 성'(예술로 꼭 성공하기)과 '예중 예고 사람들'이라는 두 곳을 이용하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마치 내 이야기인듯한 격정의 글, 고생하는 게 안쓰러워 자녀 앞에서는 쭈글 대지만, 이러 저러 한 것은 너무 열불이 나서 못 참겠다는 내용, oo미술학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데 다른 학원은 어떠냐고 묻는 내용, 어느 지역에 사는데 미술학원 추천해 달라는 것까지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니, 반드시 가입하시기를.






그렇다면 이러한 입시전문 미술학원은 언제부터 보내야 하는가?

이것은 정말 모르겠다. 재능이 있는 아이라면 몇 달만 다녀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내내 들었다. 하지만, 우리 애는 그런 류가 아니어서 4학년 말에 결심하여 5학년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입시 준비를 했었다.  대체적으로 주 3회씩 가서 한 타임(4시간)씩 하고 오다가 6학년 어느 순간부터 주말까지 3타임으로 꽉 찬 입시 생활을 꼬박 했다. 짧은 시간이 결코 아니란 말이다. 아이마다 입시 시작 계기와 그 지점이 다르니 자녀와, 그리고 담당 선생님과 충분히 의견을 나눈 후에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인 듯싶다.




'만 시간의 법칙'을 강조하며 시간 투자를 한 만큼 보상이 보일 거라는 말로 아이를 위로한 적이 있었다. 노력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바라는 것은 도둑과 같은 심보라는 말도 자주 했다. 지금도 종종 해주는,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지만, 아이마다 실력이 확 올라가는 시기가 다름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그래야 아이든 부모든 상처받지 않는다. 무조건 오래 앉아있으라고만은 할 수 없다는 말인데,  딸은 아주 잘 앉아있는 편에 속했기 때문에, 그래서 투자 시간 대비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속상해하면,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노력이 부족한 아이가 아님을 알기에 말없이 등받이 없는 플라스틱 의자에서 버티는 딸의 12시간이 안쓰럽기만 했다... 처음엔 허리 펴준다는 기능성 의자 보조나 말캉거려서 오래 앉아있어도 꼬리뼈가 안 아프다는 벌집구조 방석까지 준비해 주었지만, 의지가 강한 아이라 어떻게든 주어진 것들에 적응해 나가고 단련되어 결국엔 다 필요 없게 되었다. 예중 입시가 끝나고 한 참 뒤 '커블 체어'라는 제품이 선풍적 인기를 끄는 것을 보았는데, 미술 입시생들이 사용하던 고가의 척추 지지 보조의자의 보편적 버전으로 보여, 개발자는 아마도 가족 중 미술 입시생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도 했었다. 대신 그려줄 수 없는 마음에 이것저것 도움 주려고 했던 또 다른 분야는 도시락이다. 그나마 전우 같은 친구들과 짧게 주어지는 식사시간에라도 하하호호 나눠먹으며 먹는 재미라도 주고자 점심, 저녁을 도시락을 매일매일 싸서 날랐다.



식사 시간에 도시락 가지러 나오는 아이 얼굴을 보면서 그날 그림이 어땠는지 대충 짐작을 했고, 안 좋은 날은 안 좋은 대로, 좋은 날은 좋은 대로 도시락은 늘 싹 먹고 비워와 엄마로서는 그나마 안심이었다. 챙겨주는 것은 다 잘 먹으니, 대치동 영양제라 불리는 비타민부터 원기 회복해준다는 경옥고, 수험생 한약도 꾸준히 먹였다. 비록 지금은 자기 살의 대부분이 그때 그 시절 엄마의 도시락 때문이라는 딸의 원망을 듣고 있지만, 그 원망 중 어딘가에는 그 도시락 먹으며 버텼다는 진심이 묻어있다는 것을 알 고 있다.

예고 입시에 들어간 지금은 그때와 달리 배달앱이 다양해졌고, 배달앱을 선호할 나이가 되니, 도시락 싸서 나를 일이 없어져서 홀가분하긴 하지만. 그래서 엄마가 해줄 정성스러운 뭔가가 없다는 것이 불안하고 미안하기만 하다.

가끔 제정신일 때 '한 번 해 본 입시라 더 수월할 것'이라고 툭 던져주는 딸의 말만 믿고 가본다. 오늘도 그 말에 기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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