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워 보이는 것, 미처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좇는 것과 쫓아다니려는 것은, 허락한 적이 없는데도 내 몸 어딘가에 심겨서 내려온, 윤곽 없고 테두리 없는 호기심에게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형상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이 흐린 감정이 방향 없이 자꾸 부풀어 오르다가 보면 언젠가는, 필시 어떤 짓인가 저지르고야 말 것이라는 걸, 그것이 운명이기에 기필코 그렇게 되고야 말 것이라는 걸, 막연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 직감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겨울날 아침에 엉켜 내린 서리처럼 서걱거리기만 했기에 선명하게 윤곽을 그려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냥 두고 지낼 수밖에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 ... ...
그럭저럭 별 탈 없이 잘 살아가고 있던 어느 흐린 날의 일이었다.
특별한 낌새 없이 불쑥 끼어든 늦은 오후의 바람기처럼, 그렇게 한다면 분명 많은 것들로부터 멀어질 것이란 것과, 결국에는 너무 많이 잃게 될 것이란 것을 인지하기는 했지만, 가슴 바로 앞까지 밀려들어온 그것을 그냥 밀쳐버리자니, 그날따라 왠지 그럴 수가 없어서, 주저주저 망설이다가 꿀꺽 삼켜버렸다.
비록 지나간 일이지만 그때의 일을 돌이켜보면, 그것은 새롭게 가야 할 길이 부린 가벼운 사술(邪術)이었을 수 있는데도, 어리석기만 했던 그날의 나는, 그 간교(奸巧)에 덜컥 걸려들고야 만 것이었다.
사술이란 게 원래 매혹적이기 마련이라서 걸려들기에 십상이긴 하지만, 또한 그것에게는 ‘쉽게 걸려들 만한 사람’을 추려낼 줄 아는 아주 비상한 재주가 있는 법이다.
그게 사술이 살아가고 있는 방법이다.
막상 어떤 것을 판단하자면 이것저것 따져야만 하고 이성이란 것을 맨 앞줄에 내세우길 좋아하는 내가 그토록 쉽게 걸려든 것을 보면, 아마도 그것을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온 고도(Godot)의 현신이거나, 그것으로부터의 부름이거나, 그것과의 아름다운 조우를 위한 세레나데라고 여겼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행이다. 시간 지나니 그것조차 흐려져서.
어떤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이전의 것으로부터 완전히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새벽 숲의 짙은 안개에 빠진 듯 갈피 잡지 못하는 미망과도 같은 상태에서, 뿌연 그것이 분명 새로운 무엇이라고 판단했던 어리석음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게 되면 스스로를 위안하는 것, 스스로를 변명하는 것은, 인간을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창조주의 의도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 심긴 해석 기관은 그날과 그즈음에 있었던 일단의 일들에 대해서 “그렇게 느끼려고 노력했다.” 또는 “그렇다고 느낀 것 같다.”는 것들을 한꺼번에 묶어서 “그렇게 느꼈다.”라는 것과 동일한 것이라고 여기기로 오래전에 결정한 것이 분명하다.
사실 그것은 그 일에 대해 내가 내릴 수 있었던 유일한 결정일 수 있었기에, 달리 다른 방도를 찾을 수 없었을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건, 어떤 외력에 의해 절벽 한 발 앞까지 내몰려 행한 것이었건 간에, 어차피 호기심을 따라 길을 나선 마당에야 그것에 둘러쳐진 이성의 막을 걷어버려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을 본능이라고 받아들이고, 행여 바람을 거슬러 가는 일이나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일을 만난다고 해도, 그때마다 그것을 담담하게 행해야 할 뿐이지 결코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한 인내와 시간이 필요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나에게 운명이란, 어느 정도는 예정되어 있는 길을 앞과 뒤, 좌와 우를 살피면서 걸어가면 되는 길 걷기와 같은 것일 뿐이었다.
그것이 나의 운명이고 운명을 따르는 길이라고 그때까지는 믿었었다.
그렇기에 걷던 길을 벗어나 갓길로 내려선 것이나, 호기심을 따라, 걸어가는 길을 거슬러 오르려는 것은 운명에 대한 커다란 반항이었고 창조주의 섭리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비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걷던 길에서 내려 선 이상에는 운명이 가진 그런 의무 따위는 그리 개의할 만한 것이 아니라고 여겨야만 했다.
이리저리 걸어가는 이 길이 태초에는 예비되지 않았던, 생각하고 생각하는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만이 갈 수 있는 '진화의 길'이기에 이 길 걷기를 멈추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길을 걸어가는 한 인간으로서,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로서 나의 진화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