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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스케치

가을날 스케치


연파랑 텀블러에 연갈색 커피를 둥그렇게 가둔다.

걸라지(Garage) 구석에서 졸고 있던 푸시카트(Push Cart)를 꺼내서 툭툭 먼지를 털어낸다.


Long time no play. 오랜만이다.

구름 살짝 낀 햇살 좋은 가을날의 골프장은 참 어여쁘다.



마른 낙엽 밟히는 소리에 가을 산책을 나온 건지, 골프를 치러 나온 건지, 괜히 이는 헛웃음에 행여 실없이 보일까 봐 고개를 돌린다.

가을을 걷는다.



이곳의 터줏대감은 오리들이다.

사람 경계 않는 오리들이 오늘도 갤러리를 자청한다.

꽥꽥거리며 훈수를 두려는 것을 보니 플레이가 제 놈 마음에 안 드나 보다.

불청객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매너 좋은 갤러리는 아니다.

가끔은 그린에 난입해서도 훈수를 두려 한다.

하긴 서당개 생활 3년이면 달보고 '월 월'(月 月) 읊을 줄 안다는 데, 이놈들은 그것보다 더 긴 시간을 골프장에서 살았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오늘은 사슴 모녀까지 플레이를 지켜보고 있으니,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머리에 뿔을 달지 않았으니 암컷인 게 분명하다.

미스터리한 것은 지난 몇 년 동안 뿔 달린 놈은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해마다 새끼들은 태어나고 자라서 어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지금은 한 놈만 남아 어미 주변을 얼쩡거리는 것을 보니 다른 놈들은 모두 독립하고 부족한 놈만 남아 있는 것 같다.

사람이나 사슴이나 못난 놈은 품 안의 자식이고 잘난 놈은 그냥 아는 놈인 법이다.

가을빛을 품은 어미 사슴과 새끼 사슴이 오늘따라 더 사랑스럽다.



가을이다.

뉴욕이나 한국이나 가을 하늘에는 참 좋은 시간이 흘러가고 있고 흘러오고 있다.

구름이 몰려온 가을 하늘은 유난히 시리다.

추억의 파편들이, 가을에는 구름이 되어, 바람을 몰고 다니나 보다.

젠장 이보다 더 울컥해질 수는 없겠다.



마른 햇살을 흩뿌리는 바람에서 익숙한 향기를 맡는다.

지나간 것들이 '그때의 추억'이란 이름으로 쿰쿰하게 삭아있다.

가을에는 햇살에서도, 바람에서도, 마른 잎에서도, 지나간 것들의 향기가 난다.

아직은 그리 멀리 떠나가지 못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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