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로마에서의 카라바조는 아직은 곤궁한 무명 화가 중에 한 사람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바로 이어진 몇 년 동안의 작품들을 통해서, 13살부터 17살까지 4년 동안의 도제 생활과 17살부터 21살까지 4년간의 독학 기간이면 예술사에서 길이 남을 최고의 화가로 성장하기에는 넘칠 만큼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카라바조의 삶과 예술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라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젊디 젊은 청년 카라바조에게, 십 대를 거쳐 스물 하나까지, 겨우 8년이라는 화가로서의 익힘과 성숙의 시간이면, 예술사에 커다란 획을 그을 준비를 하기에 넘칠 만큼이나 충분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의심 한 점 없이 그냥 뱉어낼 수 있게 만들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겨우 8년이라니, 그것도 십 대 시절의 8년이라니, 그 길지 않은 한 시간 동안에 카라바조라는 이름의 거장으로 성장하였다니, 그는 대체 얼마만큼이나 대단한 천재였단 말인가. 카라바조가 가졌던 천재성은, 그가 살았던 당시에도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에도, 세상의 그 어느 것으로도 가늠할 수 없는 지고(至高)의 경지였단 말인가. 그래서 우리는 카라바조를 불가해(不可解)한 화가라고 부르게 된 것인가."
그 시절의 카라바조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는 아직 젊은 애송이였다.
제대로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사회생활이라곤 도제생활을 마친 후에 17살에서 21살까지 약 4년 동안 밀라노와 이탈리아 북부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겪었던 일들이 전부였다.
그 기간마저도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그것들을 분석하고 익히면서 지냈으니 그것 또한 제대로 된 사회생활이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카라바조에게 로마는 정신줄을 빼놓게 만들 만큼이나 놀라운 세상이었다.
밀라노 또한 대도시긴 했지만 로마는 밀라노와는 차원이 다른 도시였다.
‘문화적 충격’이라는 말이 뜻하는 바를 절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또한 이로 인해 많은 혼돈을 겪었을 것임은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카라바조는 그림에 있어서만큼은 이미 완벽하게 준비된 화가였다.
그래서 로마에 첫 발을 디딘 젊은 카라바조가 이렇게 호기롭게 외쳤을 것이라고 가끔 혼자만의 상상에 빠져 본다.
"로마의 사람들이여, 밀라노에서 온 나 카라바조를 영접하라. 예술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화가 미켈란젤로 메르시 다 카라바조가 드디어 로마에 입성했도다."
카라바조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래 카라바조라면 분명 그러고도 남았을 거야.”라는 텍스트를 자꾸 중얼거리게 되는 것은, 그가 바로 화가 카라바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로마에서 카라바조가 넘어야 할 현실의 파도는 실로 험난하기 짝이 없었다.
21살의 카라바조가 가진 것이라곤 몸을 들끓게 하는 젊은 열정과, 가슴을 잔뜩 부풀어 오르게 한 원대한 화가의 꿈과,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는 재주가 전부였다.
그것이면 화가로서는 충분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성공을 보장할 수도, 제대로 된 일상을 살아가기에도 부족하였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카라바조의 작품 리스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로마에 도착한 첫 해인 1592년부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카라바조가 바라던 ‘명성을 얻을 만큼 대단한 작품’을 그린 것은 아니었지만 로마에 갓 도착한 빈털터리 무명의 화가라는 처지를 생각하면 결코 나쁜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당시 로마의 거리에는 그림을 그릴 기회를 찾고 있고, 언제든 그릴 준비가 되어 있는 무명의 생계형 화가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로마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예술작품의 수요가 많은 도시였다.
하지만 문제는 예술가의 공급이 그 수요를 넘어섰다는 것이었다.
그런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한다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그림을 판매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또한 그 덕분에 빵과 거처를 해결할 수 있고 뒷골목의 술집을 들락거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만 했을 것이다.
[로마의 초창기시절 카라바조의 작품 리스트(1592년-1595년, 1596년-1597년)]를 통해 당시 카라바조의 상황을 좀 더 들여다볼 수 있다.
기술한 바와 같이 밀라노를 떠나 로마에 도착한 1592년부터 몇 년 동안의 삶은 곤궁하였다. 주머니가 빈 무명의 화가였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로마에 도착한 첫 해부터 그림은 그릴 수 있었다.
[로마의 초창기시절 카라바조의 작품 리스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카라바조의 화가로서의 경력은 1592년 로마에 도착한 후에 비로소 시작되었다.
그래서 밀라노의 카라바조는 로마에 와서야 비로소 진정한 화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