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는 1592년 중순경에, 당대 최고의 화가가 되겠다는 야심 찬 꿈을 안고 밀라노를 떠나 로마에 도착했다.
그가 로마로 간 것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서로 다른 얘기들이 전해지고는 있지만 카라바조가 로마로 간 것은, 화가로서 크게 성공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당시 로마의 인구 분포에서 예술가들의 비율을 살펴보면 ‘로마는 예술가들이 성공을 꿈꾸게 만드는 도시’였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기록에 따르면 카라바조가 살아가던 16세기말과 17세기 초 당시 로마의 전체 인구가 약 십만 명 정도였는데 그중에서 이천 여명이 예술가였다고 한다.
메트로폴리탄 로마의 전체 인구에서 2%가 예술가였다니,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혹시라도 그 시대의 로마 거리를 걸어 다니게 된다면 물건을 파는 상인과 부딪히는 것보다 예술가와 부딪히는 일이 더 흔했을지도 모른다.
17세기의 로마 풍경 <성 베드로 대성당>, 1630
<St Pieter, Rome> 또는 <St. Peters Basilica>
Viviano Codazzi(c.1604-1670), Madrid-Museo del Prado
인류의 역사에서 도시 인구의 약 2%가 예술가였던 현상은 오직 그 시대의 로마에서만 일어났던 시대적 현상이며, 그 이전이나 이후에도 다시는 일어나지 않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지금의 뉴욕이나 런던, 파리가 제아무리 ‘예술의 도시’라고는 하지만 이 시기 로마에서 벌어졌던 이와 같은 현상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당시 로마는 그야말로 ‘예술의 도시 그 자체’였고 로마의 거리에는 성공을 꿈꾸는 예술가들이 북새통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었다.
문헌에 따라서는 당시의 그들에 대해 ‘예비 예술가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 표현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그런 식의 표현을 사용한 것에는, 그들 예술가 대부분이 미처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쳐 보이지 못한 채로 잊혔다는 것이 불러일으킨 편견이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당시 로마로 흘러들어온 예술가들에게 ‘예비’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결코 적절치 못한 일이다.
그들은 이미 예술가로서 전문적인 실력을 갖춘 ‘직업 예술가’들이었기에 커다란 포부를 갖고 로마를 찾았다.
지금이야 각종 교통수단들이 잘 발달되어 있어 로마를 찾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지만, 16세기와 17세기의 사회 상황과 교통 여건을 고려한다면 한낱 선무당 같은 어리숙한 실력만으로 로마를 찾은 예술가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게 될 것이다.
비록 로마가 예술의 도시이긴 했지만, 로마에서 그들이 마주한 상황은 기대와는 크게 달랐다.
커다란 꿈을 안고 로마에 발을 디뎠지만 그들 대부분에게는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작품’을 제작할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제대로 된 작품을 의뢰받을 수 없기에 경제적인 궁핍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그들 중에 대부분이 화가였기에 로마의 거리에는, 특히 포폴로 광장과 스파냐 광장 주변에는 화구를 늘어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예술가들로 넘쳐났다.
당시 로마를 찾은 예술가 대부분은 그와 같이 전전긍긍하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나가는 처량한 신세였다.
기다림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삶은 더욱 피폐해져 갔다.
하지만 기다림은 원래 중독성이 강한 법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화가로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 자체가 되어 갔다.
그들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오지 않을(또는 올지도 모르는) ‘고도’(Godot)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Vladimir)와 에스트라공(Estragon)이 그런 것처럼 부조리(Absurd)한 상황에 빠져들게 되었다.
부조리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모순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정작 그것에 빠진 인간은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를 회피하거나, 인지하였다고 해도 스스로는 어쩔 방안이 없어 허우적거리며 지내게 된다.
/*<고도를 기다리며>(En attendant Godot)는 프랑스의 극작가인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가 1952년에 발표한 부조리극(不條理劇, Theatre of the Absurd)이다.*/
물론 그들 중에 극히 소수의 예술가들은 크게 성공을 거두어 ‘전문 예술가’로서 대접을 받게 되었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들의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성공하지 못한 그들을 ‘예비 예술가’라고 부르는 것에는 전문 예술가로는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여기에서 말하는 예비 예술가란, 아직 준비를 갖추지 못한 초급 예술가란 의미가 아니라, 성공한 전문 예술가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예술가를 말하는 것일 뿐이다.
카라바조가 도착한 로마에는 그런 예비 예술가들이 도시 곳곳 어디에나 늘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