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0세기 초의 파리: 문화와 예술, 카페와 서점

20세기 초의 파리: 문화와 예술, 카페와 서점


20세기 초의 파리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운 도시였다.

지금의 뉴욕보다 더하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시대적으로 그 시절은 몹시 암울했다.

전쟁의 기운이 감돌았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간극은 체제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 시절 파리의 자유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이 문화와 예술을 도피처 삼아 빚어낸 혁신과 공존의 장 위에 세워졌다.

진흙탕 속을 허우적거리면서도 결코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신기한 존재가 지성인 것이다.


이 시기에 파리는 유럽의 지성을 뜨겁게 달군 심장이자 예술과 문화의 성지였다.

문학가와 비평가, 사상가와 철학자, 화가와 음악가 같은 문화와 예술의 지성들이 파리로 모여들어 함께 떠들고 토론하면서 새로운 사조를 열어갔다.


파리의 이방인이었던 그들 대부분은 생제르맹 데 프레와 몽파르나스라는 특정한 구역에 모여 살면서 '책임질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생활에서의 자유를 만끽하였다.

그들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카페에 앉아 새로운 사조에 대해 토론하고, 인생과 자유에 대해 사유하며 지낼 수 있었던 것에는 이러한 자유가 바탕이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구역의 카페에 자연스럽게 모였고 그곳에서는 왁자지껄한 대화와 논쟁이 5월의 장미처럼 넝쿨지어 피어났다.

파리의 카페 테이블은 유난히 작고 좁았지만 그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넓은 지성의 장이었다.

그렇게 파리의 카페는 어색함 하나 없이 그들의 시간과 공간 가운데를 차지하는 마법을 부렸다.


20세기 초의 지성들에게 카페는 단순한 만남과 휴식의 공간일 수 없었다.

카페는 영감의 발원지였고 문학가의 서재이었으며 사상가와 철학자의 강의실이었고 예술가의 작업실이었다.

식어 가는 커피 잔이 놓인 테이블 위에서 새로운 문학과 사상과 철학과 예술이 기지개를 켰다.


카페는 뜨거운 열망이 거친 바다를 향해 항해를 떠나는 항구이자 밤바다 저 멀리에서 갈 곳을 인도하는 영혼의 별빛이었다.

그곳에서 위대한 지성들은 자유와 새로운 사조를 갈망하며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영혼의 등불이 되어 정신의 신대륙을 찾아가는 돛을 높이 올렸다.


생제르맹 데 프레(Saint-Germain des Prés) 구역의 카페 드 플로르(Café de Flore)와 르 되 마고(Les Deux Magots, 또는 카페 되 마고(Café des Deux Magots))는 그 시절 실존주의자들의 아지트였다.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는 테이블에 마주 앉아 인간의 실존에 대해 토론하고 논쟁하며 ‘인간이란 무엇이며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써내려 갔다.


그들로 인해 카페 드 플로르와 르 되 마고는 ‘20세기 유럽 철학의 발상지’였다는 칭송을 받고 있는 것이다.

샤르트르와 보부와르의 작품에서 철학적 문학(문학적 철학)의 향기를 맡게 되는 것은 카페에 가득했던 갈색의 커피 향이 검은 텍스트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한편, 생제르맹 데 프레 구역의 남쪽 몽파르나스(Montparnasse) 구역의 르 돔 카페(Le Dôme Café, 카페 뒤 돔(Café du Dôme))와 라 로통드(La Rotonde), 르 셀렉트(Le Select)에서는 피카소, 샤갈, 모딜리아니 같은 예술가들이 아지트를 형성하였다.


그들은 낮에는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밤에는 카페에 앉아 세계 각처에서 온 예술가들과 사랑과 자유, 예술과 인생에 대해 얘기하였다.

당시 몽파르나스에 모여든 그들 대부분은 가난하였다.

돈이 없는 예술가는 그림 한 점으로 커피값을 대신 지불하기도 했다.


돈이 없어도 그들은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큰 소리로 떠들어대야 했다.

그게 당시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들에게 몽파르나스의 카페는 입체주의와 초현실주의, 표현주의 같은 새롭고 혁신적인 예술이 싹틀 수 있도록 물과 햇빛과 자양분을 자연스럽게 제공하였다.


20세기 초의 파리를 얘기하면서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빼놓을 수 없다.

영어권 작가들의 중심은 생제르맹 데 프레 구역과 몽파르나스 구역에 있는 카페들과 실비아 비치(Sylvia Beach)가 라탱 지구에 문을 연 책방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Shakespeare & Company)였다.


책방의 주인이었던 실비아 비치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Ulysses)를 출판하며, 검열이라는 사회적 울타리뿐만이 아니라 기성 문학의 높은 성벽에 도전한 자유정신의 상징이 된 여성이다.

당시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이방인으로서 파리를 살아가는 지성들에게 쉴만한 물가이자 성문 앞 우물이었고 정신적 망명처였다.


헤밍웨이, 거트루드 스타인, 에즈라 파운드,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문학인들이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만나 교류하며 서로의 원고를 읽고 조언하고 비평하며, 문학이 가야 할 길과 새로운 문학에 대해 토론을 이어나갔다.


20세기 초의 파리는 진정으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그 시기의 파리는 인간을 사유하게 만드는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의 도시였다.


하늘에서는 사상과 철학이 별빛처럼 반짝였고, 문학과 예술이 파리의 거리를 장식하였다.

밤이 되면 생제르맹 데 프레와 몽파르나스의 카페 불빛 아래에 젊은 작가와 예술가 사상가들이 모여 자유와 사랑, 예술과 문학, 사상과 철학, 삶과 죽음, 인간의 존재에 대해 사유하고 토론하며 서로가 서로를 밝히는 등불이 되어주었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궁핍함이라는 굴레에 갇혀 있었지만, 그들의 영혼은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풍요로웠다.


지금도 파리는 그 시절 그들의 사유와 토론이 센강의 강물이 되어 흐르고 있고, 그들의 자유로운 정신은 새로운 문학과 예술, 사상의 토대가 되어 거리를 수놓고 있다.

생제르맹 데 프레와 몽파르나스의 카페를 찾으면 그들이 호흡하던 담배 연기가 늦은 밤길에 내린 밤안개처럼 얼굴을 적시는 것 같고, 그들이 들이키던 커피 향이 폐부 깊이 침투하는 것 같다.


속 하얀 커피잔에 갇힌 뽀얀 크레마에서 그들의 전언이 들리는 듯하다.

파리에서라면, 행여 너무 늦어지기 전에, 아무런 제약 없이 무엇이든 해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카페_되미고_20세기초.jpeg

20세기 초의 카페 되 마고

카페 뒤 돔(20세기초).jpg

20세기 초의 르 돔 카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파리의 가을, 어니스트와 나의 벨 에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