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병든 꽃처럼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장염이라는 바람이 지나간 지 며칠 되지도 않았건만
이번엔 불길처럼 달아오른 열이, 그 작고 여린 몸을 찾아왔다. 저녁 무렵, 체온계가 붉은 숫자를
속삭이기 시작했다.
38.7, 39.3, 39.8… 그리고 다시 40도.
불붙은 듯한 이마 위로 손바닥을 얹을 때마다
나는 기도를 삼켰다.
이 작은 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무엇이 너를 이렇게 누워있게 만든 걸까.
눈꺼풀은 무겁고, 입은 바싹 말라 있었다.
“엄마, 아파요…”
이 말이, 세상의 모든 슬픔을 녹인 것처럼 내 귀를
울렸다.
소아과에 갔지만,
오늘은 호흡기 검사를 할 수 없다는 말만 덤덤히
들려왔다. 의사도 약도 시간도, 아이의 열기 앞에선 무기력했다.
우리는 해열제에 희망을 담아,
두 시간마다 교차로 삼키게 했다
밤은 길고, 아이의 이마는 태양처럼 뜨거웠다.
늘 그렇듯,
아이는 열이 나도 장난감을 챙기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아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노는 것은 물론, 말하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낮은 숨소리로 “아파요”를 반복하는 아이를 안고
나는 스무 번도 더 가슴을 쓸어내렸다.
잠든 줄 알았던 아이는 밤새 몇 번이고 뒤척였다.
작은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가,
그 손끝에서 아픔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다음 날 아침,
문이 열리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차가운 청진기와 우주방 선생님.
“아데노바이러스입니다 “
그 말은 마치, 우리 집에 불청객이 또 한 명
들어왔다는 선언 같았다.
작은 팔에 주삿바늘이 꽂히는 순간,
아이의 눈이 커졌다.
무서웠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울지 않았다.
이를 앙다물고, 묵묵히 견뎠다.
엄마의 마음이 먼저 떨어진다.
한 시간 동안 흐르는 수액처럼
아이의 용기도 천천히 흘러들었다.
작은 의자에 앉아 조용히 한숨을 쉬는 아이를 보며
나는 아이가 얼마나 단단한 사람인지
새삼 알게 된다. 그리고 대견하다.
입맛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뭐가 먹고 싶냐고 묻자,
작게 “딸기 케이크…” 하고 말했다.
나는 서둘러 케이크를 샀다.
한 입만 먹고 더는 손을 대지 않는 아이의 모습이,
봄날 꽃망울처럼 여려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음식이 아니라 사랑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챘다.
지인의 결혼식도 가지 못했다.
집 안은 조용했지만,
조용할수록 아이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 숨소리가 고르지 않으면,
나는 창밖의 별 대신 체온계를 올려다봤다.
그날 오후,
아이의 뺨에 다시 색이 돌기 시작했다.
약을 먹고 깊은 잠을 잔 후,
작은 밥상 앞에 앉아
가자미구이와 밥을 한 숟가락, 두 숟가락 떠 넣었다.
기적처럼 입을 벌리고,
놀랍게도 “맛있어”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에 나는 내 안의 겨울이 녹는 걸 느꼈다.
레고랜드 영상을 보며 다시 춤을 추기 시작한 아이.
반짝이는 눈동자와 흔들리는 어깨,
수액이 아니라 희망이 아이 안에서 흐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이 집이 얼마나 소중한 안식처인지 실감했다.
병은 들어왔지만, 사랑은 물러서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
아내가 출근 전 저녁 식사를 챙기러 부엌에 섰다.
아이의 목소리가 맑았다.
“오랜만에 아픈데, 엄마가 여기로 와서 밥 줘야지!”
작은 농담에 아내와 나는 눈을 맞추고 웃었다.
그 웃음은 오래 묵은 긴장을 풀어주는 마법 같았다.
밤이 되어,
약을 먹이고, 양치질을 시키고,
잘 자라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나는 이불 너머 아이의 숨을 듣고,
작은 이마에 손을 얹었다.
“아프지 마”
말 대신 마음으로 그렇게 속삭였다.
내일 아침엔
햇살처럼 맑은 얼굴로 유치원에 가기를.
친구들과 웃고,
작은 모래알을 손에 쥐며
세상과 다시 놀기를.
그날의 낮은 돌아올 것이다.
아이의 열보다,
우리의 사랑이 더 뜨겁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