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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떠난 버스 여행, 그리고 바다

토요일의 도심 모험과 일요일의 바다 드라이브

by 우주아빠

주말엔 비가 온다 했다.

하늘의 예보는 잿빛이었지만, 마음의 하늘은

또 달랐다.

밤에 일하는 아내의 휴식을

위해, 조용한 평화를 준비해야 했던 토요일 아침.

창문 너머로 쏟아진 건 비가 아닌 햇빛이었다.

이제는 더위가 걱정이었다.


선풍기, 간식, 음료를 가방에 담고

나는 마스크와 모자로, 아빠라는 갑옷을 입는다.

“오늘은 뭐 하고 싶어?”

우주는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2층 버스!”


분당 방면 3000번 2층 버스를 기다렸지만

오늘의 차는 평범한 1층 버스였다.

우주에게 묻는다. 기다릴까, 탈까?

덥기도 하고 빨리 타고 싶다는 우주의 마음에 따라

우리는 그냥 차에 오른다.

미사의 길을 삥 돌아

야탑에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잠실에 닿는다.

잠실몰 푸드코트의 자리 없는 풍경에 잠깐 숨이

막혔지만

우주는 이미 레고와 문구의 세계에 빠져 있다.


9302, 다시 2층 버스를 향한 도전.

이번엔 기다림 끝에 맨 앞자리를 얻었다.

우주의 입가에 번지는 웃음은

햇빛보다 따뜻하고, 바람보다 다정하다.


잠실에서 하남 스타필드까지.

버스는 천천히 도심을 가르고,

우리는 풍경을 가슴에 담는다.

백반을 먹고, 구슬 아이스크림을 녹이고,

게임센터에서는 자동차와 농구, 총까지 함께 쏜다.

5천 원으로 얻은 커다란 인형 하나.

아내의 표정을 걱정하면서도,

나는 그 부피만큼 뿌듯했다.

편의점에서 고른 작은 간식들을

버스정류장 벤치 위에서 우주와 나눠 먹으며

집으로 가는 1번 버스에 올라 오늘 하루를 접는다.

토요일, 그렇게 우리 둘의 모험은 끝났다.


일요일, 또다시 하늘은 비를 미뤘다. 아이를 어머니에게 맡기고

영화를 보고, 헬스장에서 땀을 흘리려던 계획은

“오늘도 아빠랑 놀고 싶어”라는 우주의 한마디에

기꺼이 접힌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린다.

“우리 드라이브 갈까요?”

양평, 가평 말고

오늘은 바다를 보러 가자고 제안한다.

연안부두까지 1시간 남짓,

부드럽게 흐르는 도로 위를 따라

우리는 바다 냄새를 향해 달린다.


어시장에 도착해

삼치, 병어, 낙지—

물결 닮은 생선을 고르고

지도에서 월미도를 찾아

다시 길을 튼다.

카페에 앉아 빵과 케이크를 나누며

우주의 눈길은 어느새 놀이기구에 닿아 있다.

“바이킹 탈래요!”

바다는 흐림으로 덮여 있었고,

그 덕에 우린 더위를 덜 느끼며

한껏 웃고, 흔들리고, 소리친다.


처음으로 범퍼카에 함께 오르고

갈매기 떼가 모인 바닷가에서

우리는 새우깡을 하늘에 던진다.

우주의 웃음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갈매기들은 마치 연습한 듯

던진 과자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받아낸다.

우주는 마법이라도 본 듯한 표정이다.

나는 그 표정 하나로, 하루를 품는다.

갈매기에게 먹이를 주는 우주의 손길은

작지만, 놀랍도록 사려 깊고 부드럽다.

내 아이가 자라고 있음을,

작은 눈빛과 손끝에서 실감한다.


오늘 하루, 그리고 이틀의 주말은

우주가 내게 붙여준 ‘참 잘했어요’

스티커 같은 날이다.

나는 아빠로서 조금 더 자랐고,

우주는 내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비는 오지 않았고, 대신 사랑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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