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아쿠아리움
숨을 쉬는 것조차 벅찬 여름이다.
햇살은 뜨겁고, 공기는 눅눅하다.
아이와 함께 걷는 것도 열 걸음을 넘기면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그래서 우리는 바다를 닮은 곳으로 향하기로 했다.
잠실에 있는 아쿠아리움.
상어도 보고, 고래도 볼 수 있다고 하니
우주의 두 눈에 별빛 같은 설렘이 가득해진다.
유튜브 속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을 뺏긴 아이는
며칠째 손꼽아 기다렸다.
다행히 아내의 근무 시간이 낮으로 바뀌어
일요일 오후 만나기로 약속하고 우주와 난 둘이 움직인다.
우주는 고래를 본다는 기쁨에
눈을 뜨자마자 스스로 옷을 입고,
서툰 손으로 선크림을 바르고, 양말을 신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대견하고, 또 얼마나 짠한지.
놀이터에서 까맣게 그을린 얼굴을 본 이웃이 묻는다.
“해외라도 다녀왔어요?”
그럴 때면 부지런히 놀아준 시간이 떠오르며
쑥스럽게 웃음이 새어 나온다.
버스 도착 시간을 맞춰 집을 나선다.
걷는 내내 우주는 궁금한 걸 묻고,
손에 쥔 카메라로 꽃과 나무, 하늘을 담는다.
버스 알람이 울리자 아이를 번쩍 안아 정류장으로 뛰었다.
제법 묵직해진 아이의 무게가
숨은 차지만, 마음은 더 깊어진다.
함께 크고 있다는 건, 이렇게 땀이 나는 일이라는 걸
하루하루 새삼 배운다.
잠실 환승센터를 지나 아쿠아리움에 도착하자
우주는 눈보다 먼저 카메라를 꺼낸다.
자신이 본 세상을 기록하겠다는 듯,
개구리도, 물고기도, 고래도 렌즈 안에 차곡차곡 담는다.
한 장, 한 장,
사진을 찍을 때마다
아이의 마음도 조금씩 더 자라고 있었다.
수조 사이사이 숨겨진 사탕과 아이스크림 가게는
작은 시험장 같다.
설명도 하고, 타협도 하고,
때로는 그냥 웃으며 넘어간다.
결국 대형 수조 앞에서
사탕을 입에 문 채,
물고기를 바라보며 웃는 우주를 보고 있으면
그 모든 실랑이도, 고민도
그냥 고요한 바다로 스며든다.
미끄럼틀이 있는 공간에선
다른 어린 친구들을 배려하라고
우주에게 여러 번 얘기한다.
이제 제법, 다른 아이를 챙길 줄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시간은 그렇게
우리를 어른으로, 부모로, 아이로
조금씩 단단하게,
조금씩 깊어지게 만든다.
상어와 가오리 먹방쇼를 보고
버스를 타고 다시 하남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하루는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게임방에서 오토바이도 타고,
물 쏘는 게임도 하고, 농구도 하며
여름의 더위를 잠시 잊었다.
아내를 만나 셋이서 저녁을 먹으려 했지만
가게마다 브레이크 타임.
덥고 지친 우주에게 수박주스를 사주고
멕시칸 식당으로 향했다.
다행히 그곳엔 시원한 공기와
우리 가족을 기다리는 빈자리가 있었다.
평소엔 우주의 쉴 새 없는 말에
아내와 둘이 제대로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우주가 배려를 해주었다.
우리가 웃고,
잔을 살짝 부딪히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그 짧은 시간이
마치 긴 여행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우주에게 과일도 먹이고,
밥도 챙겨주고,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땀이 나고, 웃음이 피고,
사진이 남고, 추억이 쌓인 하루.
소란스럽고 평범한,
그럼에도 어쩐지 눈물겹도록 고마운
여름의 하루가 그렇게 흘러갔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마음을 다잡는다.
함께 걷고, 함께 웃고, 함께 살아가는 이 시간,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우리 가족,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