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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두 형

이웃이 선물해 준 작은 기적에 대하여

by 우주아빠


시간이 참 조용히 흐른다. 무심한 척, 아무 일 없는 듯 하루하루를 밀어내다가도, 문득 돌아보면 손에 쥔 것들이 조금씩 다르게 느껴진다. 우리 가족이

하남 미사에 둥지를 튼 지도

벌써 6년째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땐, 그저 조건을 보고 고른 선택이었다. 아내의 출퇴근길, 공원과 마트의 거리.

딱 그 정도의 이유였다. 그런데 집이란 결국, 벽과 지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걸, 살다 보니 알게 된다. 집을 집답게 만드는 건, 그 안에 머무는 온도와 창밖으로 번지는 사람들의 숨결이라는 걸.


이사 오던 그 해, 옆집 두 집 모두 아이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엔 그저 '기운이 좋은 층이구나' 싶은 생각에 혼자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벽을 타고 넘어오고, 현관 앞 복도에

작은 신발들이 나란히 놓일 때마다, 이 층 전체에

따뜻한 숨이 흐르는 듯했다.

그때 옆집 형들은 이제 일곱 살, 아홉 살. 아직은

낯가림 많은 우주는 그 형들을 조심스럽게 멀찍이서 바라보기만 했었다. 같은 아파트, 같은 초등학교,

그 안에 있는 병설 유치원에 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마주치곤 했다. 어린 우주는 형들의

그림자만으로도 설레고, 동시에 멀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시간은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말을 거는 법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우주가 형들과 조금씩 말을 섞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아침이면 옆집 형들이 우주네 벨을 눌러주기 시작했다.

“형들이 기다린다.”

그 말 한마디에 우주는 놀라운 속도로 부스스한

잠을 털어냈다. 더 이상 TV를 붙잡고 꾸물거리거나, 양말을 신기 싫다며 칭얼대지 않는다. 작은 손으로 스스로 양말을 신고,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긴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두 형들이

우주를 기다리고 있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마치 봄날의 햇살을 창틈으로 들여보는 느낌과도 비슷하다. 형들의 손에이 끌려 우주는 든든한 호흡으로, 신나는 발걸음으로, 이 동네 골목을 씩씩하게 누비며 유치원으로

향한다.

나와 아내는 그 모습을 매일 목격한다. 두 형들은

우주의 작은 손을 자연스럽게 잡아주고, 걷는 속도를 맞추며, 때로는 배려하듯 웃으며 기다려준다.

우주의 세상은 그렇게 조금씩 넓어지고, 그 넓어진 세상엔 든든한 사람들의 온기가 스며든다.

사실 옆집 가족들과 왕래가 잦은 건 아니다.

서로 바쁘고, 각자의 일상에 바쁘다. 하지만 가끔

책이나 옷을 주셔서 감사히 받고, 감사의 마음을 담아 소소한 다과를 나누는 정도의

이웃 사이. 나는 그 정도의 거리감이 오히려

오래도록 편안하게, 따뜻하게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이제야 배운다.

‘아이들이 있다는 건 이웃의 정을 나누는

또 다른 길이구나.’

우주가 세상을 배워가는 속도보다, 부모인 내가

이웃의 따뜻함을 배워가는 속도가 더 느린 듯하다.

하지만 괜찮다. 아이가 앞서 걷는 걸 보는 것도,

그 자체로 위로가 되는 시간이니까.

우주는 유치원 친구들 외엔 아직 많은 사람들과

깊이 어울리지 않는다. 말수도 조심스럽고,

다가가는 법도 서툴다. 그런 우주에게 옆집 형들은 작은 기적처럼 다가왔다. 억지로 가까워지려 애쓰지 않아도, 시간을 들여 천천히, 조심스럽게 우주의

곁에 머물러주는 그 따뜻함에

나는 매일 감사한다. 사실, 이 집에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은 이유를 꼽으라면,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바로 우주에게 생긴 ‘두 형’ 때문이라고.

하교 시간이 달라 자주 얼굴을 보진 못하지만,

언젠가 우주와 형들을 데리고 근처 식당에 가서

치킨이나 피자를 함께 나눠먹고 싶다. 우주의 마음속에 '형들이랑 먹었던 맛있는 시간'이라는 추억을 새겨주고 싶다. 그리고 두 형들에게도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우주야, 기억해. 네가 자라나는 이 집엔, 너를 기다려주는 형들이 있고, 너를 바라보는 따뜻한 이웃이

있어. 그리고 그 모두를 지켜보며 고맙고 따뜻한

마음을 품는 엄마 아빠가 있단다.

집은 그냥 벽과 지붕으로 이루어진 구조물이 아니다. 그 안에 머무는 사람들의 마음이, 손을 잡아주는

온기가, 인사에 스며든 온정이, 이웃의 웃음이 모여 비로소 ‘집’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이 집에,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다. 우주가 두 형과 함께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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