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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상주의 Sep 05. 2024

CTRL / SZA 탐구생활

나의 어떤 면모든 이야기하기 위한 알앤비


| A Generation of R&B Storytellers 

NME: How SZA inspired a generation of R&B storytellers

21세기 이래 가장 진솔한(honest) 베스트 송라이터란 타이틀은 결국 SZA가 가져간다. 특히 동료 여성 팝 뮤지션들에게 말이다. 도대체 누구에게? 당장 NME의 기사에 의하면 말이지. Bellah에게, Lizzo에게, Olivia Rodrigo에게, Doechii에게만큼은 공언된 바이다. 이 기사는 SZA의 작년 만장일치 최고작 [SOS]를 기념하기 위해 쓰였다. [SOS]의 의의는 의외로 단순하다. 감정을 해체적으로 일일이 난도질해 버린 전율 돋는 디테일과 그 세밀한 단어 조각마다 상실을 겪은 우리 모두의 세포로 동기화시켜 버리는 마술. 그리고 그 디테일을 전달하는 과정에는 역시나 SZA이기에 속임수 따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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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그 마술을 따라간 지 꽤 오래됐다고 이제는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사랑에 의한 방황과 통제 불능의 나 자신에 대한 스토리텔러로서 그녀의 궁전은 이미 꽤 공고하다. 모두가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한 철저히 개방형의 궁전이다. 진작에 [CTRL]에서부터 그 문을 열어놨고 앞서 열거한 동료 뮤지션들 모두 그 궁전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이다. 하나같이 기술 습득 이상의 교훈을 얻은 채로 말이다. NME(Sophie Williams)의 묘사대로 [CTRL]은 컨템포러리 알앤비의 무게감(gravity)을 바꿔놓았다. 이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밀도 자체가 달라진 시점부터 발생한 일이었다. 우린 그 시점을 거슬러 내려가 볼 것이다. 물론 변화를 분명히 포착하기 위해 시점의 전까지도 일부 내려가 볼 것이다.  




|  Early-SZA: ⓐ See.SZA.Run  

[See.SZA.Run] / Soundcloud  (Just SZA)


 교회 성가대나 캠퍼스 동아리 등의 음악 활동마저 전무했던 해양 생물학 전공자라고 하기에는, 그리고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사전 계획도 없이 인터넷에 널려있는 비트를 짜깁기하듯 고르며 인맥이라곤 주변 친구들이 전부인 채로 시작한 녹음이라고 하기에는, 그녀의 데뷔 EP 겸 데모용 실험작 [See.SZA.Run]은 벌써부터 놀랍고 흥미로운 지점이 많다. 어떠한 트레이드도 없이 노래를 본격적으로 연습하기 시작한 지도 일 년 채 되지 않았다는 점도 물론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긴 하나, 이 EP의 비범함은 그녀의 가창이 봐줄 만하다는 정도의 인상을 넘어선다.


그보다도 특별히 눈여겨볼만한 점은 프로덕션에 관한 그녀의 안목이다. 그녀가 초이스한 사운드들은 하나같이 2010s 초반의 얼터너티브 알앤비 및 컨템포러리 어반 뮤직(당시의 용어로)을 아우르는 트렌드에 엮여 있다. 물론 주류를 이루는 사운드를 캐치하는 것쯤이야 정보력과 눈치가 빠른 인터넷 키드에게는 일도 아니겠지만, 만약 SZA의 안목이 그 정도 수준이었다면 적당히 위켄드나 드레이크 풍의 피비알앤비를 양산하는 것이 고작이었을 터이다. 뭐, 실제로 어느 정도는 그녀 역시 그들에게 상당한 빚을 지고 있기도 하며, 이때의 신인이라면 대부분의 습작들은 거의 비슷한 식이었기에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다.


[In Case We Die] / Tinashe (Soundcloud)

그러나 EP를 관통하고 있는 지점은 별안간 겉핡기식의 트렌드 읽기라고는 볼 수가 없는, 아마추어일지라도 어지간히도 습관적인 음악 디깅과 업계 이해도가 갖춰져 있지 않는 이상 단번에 캐치하기 어려운 사운드클라우드/언더그라운드의 실험 요소들을 꿰뚫고 있다는 데 있다. 언뜻 티나셰의 [In Case We Die]~[Black Water] 믹스테이프 시리즈와도 비교되는 부분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장르 혼합과 퇴폐성, 그리고 미래지향성(지금 생각해 보면 얼터너티브와 거의 동의어에 가까울 정도로 핵심적인 속성이었던 게 아닐까)을 코어로 하는 얼트-알앤비 전반을 밑바탕으로 삼으면서도, 거기에는 위치 하우스나 다운템포, 칠웨이브, 다크웨이브, 이더리얼 등의 비주류적인 서브장르들이 더해져 힙스터스러운 몽환성이 배가돼 있다.


그래서일까 이때 SZA의 보컬은 형체 없이 돌아다니는 느낌이다. 그래서 더 초기 얼트-알앤비스럽다. 가령 취한 채 하늘 위로 풍선처럼 몸이 떠오르는 사이키델리아 <Once Upon A High>에서 문장의 구조조차 해체된 채 떠다니는 듯 보인다. 마치 클램스 카지노(Clams Casino)나 메인 어트랙키온즈(Main Attrakionz)로부터 가이드를 제공받은 듯 잔뜩 클라우디(cloudy)하다. 이러한 트리피함(trippy) 역시 당시 트렌드에 따라 매우 자연스러운 선택임과 동시에 읽는 것은 쉽지만 살리는 것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닌 의외의 허들이다. 흔한 커머셜 팝의 방식으로는 체득하기가 어려운 인터넷 히피로서의 역량에 가깝기 때문이다. 즉 사운드나 보컬이나 실력을 논하기 전에 본래는 나름대로 음악 오타쿠일 때 제대로 캐치하고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요소들이란 뜻이다.   




| Early-SZA: ⓑ S

[S] / Soundcloud (Just SZA)

 이러한 몽환적 신스로 가득한 알앤비는 이후 그녀 나름의 야심작에서도 계속된다. [See.SZA.Run]가 벌이를 제외하고 별다른 목적 없이 만들어진 일종의 데모 테이프였다면 [S] EP에서는 셀프-타이틀, 심지어 예명의 이니셜 중 첫 글자를 앨범 커버 정중앙에 박아 넣는 분명한 야심을 보인다. '테렌스 펀치 핸더슨'을 만나고 TDE의 첫 여성 아티스트로 계약을 맺은 뒤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진지해진 것도 야심의 동력이 됐을 것이다. 반면 그녀가 보여줄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도 기대 반 의심 반을 가지게 되는 부분이다. 사운드는 전작과 비슷한 결을 가져간다고 했을 때 그녀의 작전은 '굳히기'일까, 아니면 '도전하기'일까. 결과는 가지 작전 중간선에 위치한, 그러나 엄밀히는 번째일 있는 작전을 선택한다.


그것은 '조금 더 꺼내보이기'이다. 그녀가 꺼내보이기로 그 '무엇'이 글의 전문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SZA의 핵심에 관한 암시일 것이라 조심스레 예상한다. [S]에서는 전작과는 다른 의미로 그녀의 신선함돋보인다. 바로 가사와 스토리텔링에 관한 것인데, 스킷부터 코러스까지 일련의 전개에 때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 정도의 기이한 컨셉이 종종 감지된다. 현실을 아득히 이탈한 프로덕션과 겹치며 문자 그대로 뜬구름 잡는 대화를 엿듣고 있는 느낌이다. 즉 그녀의 진심은 엉뚱하다.


하지만 그 엉뚱함 속에서 은근히 와닿는 감정적 울림에 도리어 신비로움을 발견한다. 그녀의 짙은 호소가 캐릭터로서의 기믹이 아님을 이해하게 된다. 반대로 얘기해서 SZA의 로맨스는 엉뚱하긴 해도 어쨌든 진심과 정직함으로부터 힘을 얻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다만 작품 전반의 엉뚱함이 그녀의 진심을 짓궂고 교묘하게, 동물의 형상을 가린 정글 숲의 잎사귀들처럼 가리고 있기 때문에 완연히 열어젖혔다기보다는 복선처럼 깔아놓았다는 인상이다. 어쩌면 이니셜 삼부작의 '기(起)'에 한하고 있기 때문에 시작을 은밀하게 연 것일 수도 있으리라.      




| Early-SZA:  Z과도기로부터 배운 것

[Z] / Teen Ink

어쨌든 첫 단추는 나름대로 괜찮게 꿰맸다. 그녀의 역량과 진심은 모두 1/3 만큼만 볼 수 있었지만 이는 연작의 일부다. 그녀가 보여준 것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호한 채이긴 하나, 그럼에도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는 확실하게 알았다는 것에 수확이 있는 셈이다. 호화로운 프로듀서로 꽉 채운 [Z]는 야심을 보다 한 층 더한 인상이다.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배포됐던 전작과 달리 이번에는 오피셜 플랫폼으로 발매됐다. TDE 열혈팬들의 지지도 있어서일까. 상업적으로도 꽤 괜찮은 성과를 얻었다. 미국 빌보드 알앤비 앨범 차트에 5위 정도에 석권했고, 영국 알앤비 차트에서도 어느 정도의 입지를 올렸다.


비평적으로도 나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흠이라고 한다면 모두가 우호적이었진 않았다는 데 있다. 그녀의 앨범을 처음으로 다루게 된 피치포크를 비롯해 절반 정도되는 평론지들이 다소 아쉬움을 표했다. 단지 신인으로서 그녀의 재능을 잠깐 제대로 봐주지 못한 것이라고 변호할 수도 있겠으나, [S]에 대해 다룬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이자 전작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은 'Consequence of Sound'의 반응은 혹평까진 아닐 지언정 그럼에도 전작만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진 않은 듯 보였다. 따라서 아쉽게도 그녀의 성과는 반쯤만 성공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일단 피치포크(Jordan Sargent)의 반응은 요컨대 작품을 통해 하고자 했던 것은 분명 명확해 보이긴 하는데, 결과적으로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 아리송하다는 것. 특히 칠웨이브의 압도적인 프로덕션에 비해 지나치게 흐릿한 채로 존재하는 그녀의 보컬로 하여금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지는커녕,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 그녀 본인이 맞는지조차 의문이라는 것이다. 리뷰 말미에 아쉬움을 강하게 드러낸 Consequence of Sound(Michael Madden)에 의하면 자신감과 힘은 확실히 있지만 다른 TDE 동료들에 비할 대담함은 아니라는 것.


이로써 [Z]는 그녀의 디스코그래피 중 과도기를 상징하는 작품이 됐다. 그러나 퇴행이 아닌 과도기라고 표현했다. 분명 작품의 성과와 가능성은 존재한다. 그녀가 보여줄 비전도 여전히 잠재적인 형태로 남아있다. 그렇다면 [See.SZA.Run]과 [S]에서 보여준 여성 얼트-알앤비계의 트렌드세터로서 건재함을 과시했고, 캐주얼 리스너를 아울러 매료시킬 호소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단지 여전히 비밀스러운 형태였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로 보여줘야만 하는 책임의 단계에 오게 됐으며,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는 아직 본인만이 알고 있는 상태였기에 삼부작을 결정지을 [A]의 중요성은 더욱 커져만 갔다.




| 잃어버린 조각 [A], 그 자리에는 [CTRL]

twoAM / Soundcloud (Just SZA)

예정대로라면 2015년 말~2016년 초 사이에는 [A]가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상 무산됐다. 그녀는 삼부작의 끝을 맺지 못했다. 16년 5월 사운드클라우드에 PartyNextDoor - <Come and See Me>의 리믹스 싱글 <twoAM>을 새롭게 공개했을 때까지만 해도,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는 [A]가 맞았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우울감 가득한 다운템포와 몽롱한 보컬에 의해서라도, 머지않아 발표될 다음 작품 역시나 [Z], 혹은 적어도 [S]의 연장선상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레이블의 압박에 의해서든,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서든 그녀는 [A]를 포기했다. 그렇다면 그녀 이름으로 내건 이야기는 미완결로 끝나고 마는 것인가.


[CTRL] / Wikipedia

그러나 그녀의 선택은 오히려 과감한 용기였다. 그녀는 이야기의 끝을 맺는 것이 아닌 새롭게 펼치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야심을 지피며 사람들이 나를 발견하게 만들기보다는 내 안의 근본적인 갈망 하나에 지난 이야기 전부를 귀결시키며 나 자신을 재발견하기로 했다. 그것은 음악을 위해서가 아니다. 인간으로서 그녀가 원하는 것은 하나다. 스스로 내 삶을 [통제(CTRL)]하는 것. 자, 이제 그녀에겐 알앤비의 미래를 짊어질 혁신가로서가 아닌, Erykah Badu나 Aaliyah와 같은 나를 들여다보는 진정성에 승부를 거는 소울-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임무가 생겼다.




| 얼터너티브에서 컨템포러리, 소울-싱어송라이터로 

How SZA Wrote “Supermodel” | The Process | GQ

일반적으로 어느 뮤지션이 스스로 싱어송라이터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작업에 열중하겠다는 굳은 의지이다. 그것이 특정 주제에 관련한 나의 모습이든, 아니면 정말로 나의 전부를 낱낱이 해체하는 것이든 말이다. 이미 [SZA] 시리즈부터 내가 누구인지를 여실히 드러내고자 했던 작업의 일환이었겠지만, 이는 아티스트로서의 아이덴티티와 나라는 '캐릭터'의 매력에 관한 드러냄 정도에 가깝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캐릭터로서의 이야기를 포기했다. SZA의 매력보다 Solana Rowe로서의 경험 및 생각을 고백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고백이라는 것 또한 대중을 향한 호소가 아닌 나 자신을 향한 인정과 수용을 일컫는다. 이는 60년대 클래식 소울이나 90년대의 진중한 네오 소울 뮤지션들이 시도했던 접근론으로, 다시 말해 그녀의 결단은 장르적인 관점에서 꽤나 전통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일종의 전환, 정확히는 시야를 확장할 필요가 있었다. 이제는 현재 유행 중이고 여태껏 본인이 즐겨 해온 얼터너티브만 바라볼 수만은 없게 됐다는 뜻이다. 그녀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음악(굳이 가사적인 부분에 국한된 범주가 아니라)으로 내뱉는 방법, 내 생각을 뱉어내기에 자연스러운 소리들을 찾는 방법 등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에 관한 여러 방법들은 과거로부터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이 그녀가 40~80년대 빌보드 차트를 정독하다시피 하며 소울/알앤비와 관련된 곡마다의 스타일과 사운드를 분석했던 이유일 것이다.


그리하여 [Ctrl]를 최종적으로 구성하는 프로덕션은 '컨템포러리'를 지향한다. [SZA]가 상대적으로 '퓨쳐리스틱'을 지향했던 것과도 대조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본글에서 사용되는 컨템포러리의 개념은 단순 시간성이 아닌 80년대부터 앨범 이 발매된 당대 전체를 아우르는 '시대적 포괄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중 시대적인 맥락을 자세히 짚어보려 한다. 바야흐로 2010년대 초반이란 '클리셰로부터의 탈피'라는 거창한 슬로건을 내건 채 '얼터너티브'라는 허물을 뒤집어썼지만 실상은 '피비알앤비'라는 또 다른 클리셰 안에서의 기차놀이에 불과했던 착오적 시대였다. 그러다가 중후반에 이르러 다행히 똑똑한 뮤지션들에 의해 알앤비 뮤직은 퇴폐성, 몽환성, 일렉트로니카, 미니멀리즘 등의 강박관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폭넓고 유연하게 외부로부터 레퍼런스를 얻을 수 있게 됐다.

The Making Of SZA's "The Weekend" With ThankGod4Cody | Deconstructed

[CTRL]은 대략 이 시기에 녹음된 작품이다. 그렇기에 음울한 트랩 사운드의 <Love Galore>와 코드 구성에서부터 클래식 알앤비를 의도한 <The Weekend>가 한 앨범에 이질감 없이 섞여있을 수 있는 것이다. 연주를 배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샘플링 프로듀서 Tyland Donardson에 즉흥적인 아이디어에 의해 SZA의 커리어 중 최초로 어쿠스틱 요소가 가미된 트랙 <Supermodel>까지도 인트로로 사용될 수 있었다. 디지털 신시사이저로 음악을 만들고, 온라인 어플로 교제를 하는 인터넷 소녀가 때에 따라 Erykah Badu나 Aaliayah, 혹은 초창기의 Alicia Keys까지 변신할 수 있게 됐다.




| 내 스토리를 잘 전달하기 위한 소리와 방법 찾기

How SZA Created 'Supermodel' | Billboard | How It Went Down

어느 요리사에겐 음식이 대중들의 입맛을 사로잡아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요리 철학까지 어필될 수 있는 포인트가 있어야만 할 경우도 있다. 굳이 미슐랭 쓰리-스타 주방장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헤드셰프 SZA에게 필요한 것은 음식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만든 이의 솜씨만 알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갈 수 있어야 한다. 홀 스태프의 별다른 큐레이팅 없이도 말이다. 그녀가 과거의 수많은 레거시들을 구태여 유심이 들춰보며 사운드를 탐닉한 것은 '배움'을 위해서이다. 그들은 대개 핍박에 저항한 흑인 여성으로서, 혹은 헌신을 증명한 어머니로서, 혹은 매정하게 떠나버린 옛 연인을 상대로도 굴하지 않는 모습을 지킨 굳건한 멘탈리스트로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털어놓았는지, 이를 위해 어떻게 적당한 소리들을 추려냈는지 알기 위해서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코드를 처음 듣자마자 녹음 부스에 달려가 거의 프리스타일로도 코러스 하나를 완성할 수 있을 만큼, 내 생각이 지체 없이 술술 나올 수 있는 소리를 찾는 것이었다. 가령 <Supermodel>의 어쿠스틱 리프를 처음 듣고 나서 곧바로 슬픔을 캐치하고 내 이야기가 '그냥' 나오게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원래 SZA는 단순한 코드 하나에 자신의 모든 멜로디를 쏟아부었기 때문에 다른 어떤 악기적 요소들마저 부가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퍼렐의 드럼 요청도 만류하다가 후반부에 약간의 서사적 장치를 위해 일부 넣긴 했다.


아무래도 레이블이 그녀의 하드 드라이브마저 압수할 정도로 그녀가 4년 간 강박적인 작업을 고수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소리들을 찾기 위해서였다고 어림짐작 해본다. 어쩌면 그녀는 그만큼 꽤나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스타일인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떠오르는 순간 그녀는 자신의 직관과 감정에 완전히 충실해진다. <Garden (Say It Like Dat)>이나 <Drew Barrymore>, <Broken Clocks> 등에서 감정적 충실함과 연약함(Vulnerability)를 조화시키는 멜로디와 감성을 보면 피치포크(Claire Lobenfeld)의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녀가 감정 전달을 위해 소리를 찾고 활용하는 방식이 단지 소울-알앤비에만 빚을 지고 있지 않다는 것, 그녀의 소울이 인디 팝의 영역까지도 아우른다는 설명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해 보게 된다.




| A Millennial Black Woman, or, Everyone's Coming-of-Age Story

J-01

그녀의 스토리텔링은 감정적 충동을 끌어올려줄 자연스러운 소리들과 함께하면서 더욱 가감 없어진다.

그 안에서 논하는 사랑의 면면은 더 다각적으로 보이게 된다. 이로써 그녀의 구구절절한 자기 고백과 연약함은 Ariana Grande의 [Thank U, Next]가 될 수도, Soccer Mommy의 [Clean]이 될 수도 있는 자유로움을 얻어냈다. 그리고 예로 든 두 작품이 그러하듯 일련의 이야기들은 언젠가 한 번은 자신과 같은 시간을 지나 보낼 모든 10~20대 여성을 위한 성장통 서사로 귀결될 수 있도록 했다. 그녀의 음악이 한 때의 Alanis Morissette이나 오늘날 Taylor Swift와 같이 소울-알앤비를 넘어 성숙한 퍼퓰러 뮤직으로 한 발 더 나아가는 순간이다.


그녀가 묘사한 성장통에는 이를테면 발렌타인 데이 때의 굴욕이나 그룹 챗에서의 애착과 같은 지금 우리 세대가 가장 잘 알고 있을 만한 경험들이 포함돼 있다. 가령 <The Weekend>에서의 충격적인 폴리-아모리가 실은 틴더(Tinder)식 데이트의 전모를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가 눌러 담은 상실과 의존 사이의 불안은 전부 사랑을 둘러싼 우리들의 모든 불안정한 행동과 태도들을 해독한다.

  

물론 그녀의 이야기는 너무 솔직해서 어떤 경우에는 학창 시절부터 단짝이었던 소울 메이트와 주고받는 메신저 안에서도 꺼내 보일 수 없는 불안정도 포함돼 있다. 다르게 예를 들어볼까. 지금 애인이 내가 만나본 인연들 중 가장 안정적이고 믿음직한 상대라고 할지라도 <Doves In The Wind>에서의 도발적인 약속이나 <Garden>에서의 자존심을 모두 내려놓다시피 한 애절한 간청을 망설임 없이 할 수 있을지 적어도 필자는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 이 사람의 마음을 확인하고픈, 기꺼이 열어보인 내 마음을 보답받고 싶은, 그렇기에 가장 대답을 듣고 싶은 질문 들이곤 한다. 이는 아무래도 Millenial Black Women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모두의 Coming-of-Age Story라고 하는 것이 맞을 테다. 그러니까 한국에 있는 나도 당신도, 그녀의 이야기에 마음 깊숙이 공감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  




| 진정성(Honesty)이라고 불리는 무게감(Gravity), 나를 Ctrl할 줄 알기 시작하는 소울로 거듭날 때:

Pitchfork

그녀의 모습은 전혀 화려하지도, 위풍당당하지도 않다. [CTRL]이 많은 여성 뮤지션과 팬들에게 파워를 주고 지지를 얻는다라고 해서, 과연 작품에서 보이는 면모가 라이엇 걸 무브먼트나 비욘세의 [Lemonade]에서 볼 법한 강하고 지혜로운 여성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 반대에 가깝다. 여리고 미숙하며 나를 통제하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던 때가 있었기에 작품의 타이틀이 오히려 [CTRL]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분명 나를 현명하게 제어해 나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작품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되지 않았는가. 나를 알기 시작하고, 나를 제대로 알리기 시작할 때부터 그녀의 음악은 비로소 달라진다.


 변화의 포커스는 개인의 예술을 넘어선다. 모두가 저마다 삶으로서의 나 자신을 통제할 줄 알게 되는 순간들을 다루기 시작하자, 예술가로서의 내 음악을 통제할 줄 알게 되는 시대가 80~90년대 소울 음악 이후로 드디어 '다시' 찾아왔다. SZA는 시장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그럴듯하게 녹여내는 얼터너티브계의 사운드클라우드 신성이었다. 적어도 [See.SZA.Run]부터 [S]까진(뭐, 물론 [Z]까지) 그랬다. 그러나 [CTRL]에서 컨템포러리 알앤비뿐만 아니라 인디 팝까지 모두 품기에 이르며, 음악 속 내 매력을 넘어 보편적인 감정을 관통하는 다름 아닌 여러분들의 이야기마저 품기에 이르며, SZA 자신뿐만 아니라 얼터너티브 알앤비 씬은 비로소 성장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러한 문화적 성숙함을 여전히 프랭크 오션한테서만 찾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클래식 소울에서부터 줄곧 강조해 오던 진정성은 오늘날에까지도 통했다. 그리고 끝내 진정성이란 것은 문화의 무게감을 달리 만들었다. 문화의 깊이라는 것은 초특급의 일부 거장 스타들을 통해서만 부분적으로 고양되는 것이 아니며, 시대적 담론을 거창하게 다뤄야만 우러러보는 것이 아니다. 누차 말하건대 [CTRL]의 Coming-of-Age 스토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다만 [S]에서의 '조금 꺼내보이기' 정도에서 '모든 문을 열어젖히기'로 하여금 더 큰 용기를 보여줬을 뿐이다. 나아가 이로부터 영감을 얻은 용기 있는 신세대가 더 많아졌을 뿐이다. 그것이 가장 진솔한 송라이터로서의 현재진행형 레거시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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