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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항상 그의 웃음 프로젝트를 따라다닌다

SMiLE / 故브라이언 윌슨 추모 위한 탐구생활

by 감상주의

| 2025년, 이내 사그라든 큰 별을 기리는 자리

윌슨 형제들이 모두 떠난 이후에도 비치 보이스가 우리 곁에 영원하 자리를 잡고 있듯이, 이제는 故브라이언 윌슨이 떠난 이후에도 일생일대에 걸친 그의 프로젝트는 남아있는 우리와 함께 지속하게 될 것이다.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혁신을 이루기 위해 홀로 스튜디오라는 좁은 공간에 굳게 자리를 지켜온 것처럼 말이다.


그의 삶은 어떤 예술가보다도 파란만장했으며, 위대했고, 찬란했다. 일찍이 촉망받는 유망주로 떠올라 뜨거운 석양 아래의 유토피아적인 고향과 낭만이 흘러넘치는 청춘을 대표하던 소년기, 젊은 나이에 무리를 이끌며 비틀즈라는 거대한 산과도 아름다운 경쟁을 펼치던 청년기,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해 허우적대며 모두가 점차 그에게 등을 돌린 쇠퇴기, 반대로 진정으로 유일한 사랑을 줄 수 있는 누군가가 나타나 새롭게 구원을 얻은 부활의 날까지...


그렇게 그는 우리 곁에 다시금 전설로 불릴 수 있었으며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현역으로서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가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를 준비하던 때가 얼마 되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이렇게 큰 별이 하나 지고 말았다.


우리는 그 별의 존재는 물론 궤적과 그것이 남긴 잔상,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건네는 진실된 가치를 세세하게 쫓아왔다. 그렇기에 세계가 그를 잊을 리는 결코 없을 것이다. 심지어 그를 모르고 자란 세대마저도 그를 기억하기 위해 많은 영상이나 글들을 쏟아내고 있지 않은가. 뒤늦게나마 어느덧 나도 그중 한 명이 됐다. 처음으로 온전히 누군가를 위해 글을 쓴다. 짧게, 대신에 진심을 담아 쓰려했다.



| 늘 발견보다 앞서 있던 업적과 도전의 역사를 되새기는 자리

petsounds-c062ccd5148979991c55f312c3159e50.jpg Mental Floss

윌슨의 예술혼은 늘 모험과 경쟁, 그리고 충돌과 외면을 동반해 왔다. '캘리포니아 사운드'라는 말로 대중의 기대와 관성, 업계의 바람, 고향의 이미지나 시대적 조류 등과 방향이 일치하던 때는 어디까지나 초창기뿐이었다. 로맨티시즘에 맞는 듣기 좋은 하모니는 곧바로 "Surfin in the USA"을 비롯한 여러 개의 히트곡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낄 수 없었다. 가장 위대한 음악을 만들겠다는 혁신가로서의 자아로 하여금 얼마 안 가 이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그는 낙원을 거부했다. 안전과 영광을 포기하고 고립과 투쟁을 자처했다. 획기작 <Pet Sounds>는 곧바로 그에게 성취를 가져다주지 않았다. 오히려 끝없는 불화와 막심한 상처를 안겼다. 그도 그럴게, 처음부터 사랑받는 음악만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썼을법한 시도가 어디에도 없었다. 시그니쳐였던 풍성한 하모니마저도 어느샌가 실험의 일환에 불과했다.


그것이 그와 그들을 최고로 만들었음을 부정하는 이는 현재 아무도 없다. 동시에 더 큰 도전을 향한 부담과 심화된 고립을 초래했음도 부정할 수 없다. 역시나 혁신가란 상처와 외로움을 함께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는 숙명에 놓인 자들인 것일까.


그의 역사 안에서는 적어도 맞는 말이었다. 야심을 멈추지 않기 위해 자기가 만든 세계에 자신이 즐길 수 없는 삶을 살아왔다. 그가 아무런 고민 없이 순수한 즐거움과 열정에 취해 마음껏 웃음을 드러낼 수 있는 날이 얼마나 있었을까.



| '웃음'의 여정을 따라가기 위한 자리 (1)

고립과 충돌과 외면의 역사는 프로젝트 하나를 둘러싼 진전과 좌초의 연속에 그대로 일치한다. 따라서 <SMiLE>의 변천사는 브라이언 윌슨의 음악사를 집약한 것과도 같다. 완벽한 예술을 향한 광기에 가까운 집념, 완성과 미완성 사이에서의 줄다리기, 창작인으로서의 위기, 절망과 구원, 삶에서의 경험 등이 평생에 걸친 여정이자 드라마가 됐다. 작품 하나로 우리는 한 남자의 일생을 그린 전기 영화이자 로드 무비 한 편을 보게 되는 것이다.


- <Smiley Smile>

나무위키

<Smile> 프로젝트 중 '비치 보이스의 재평가'라는 키워드에 가장 걸맞은 첫 작품일 것이다. <Pet Sounds> 역시 처음부터 대중들이 받아들였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을 지지했던 자들마저도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된 작품의 사운드를 싫어했다.


지금에야 로파이의 미학이라며 쉽게 받아들일 수 있고 또 그 방면에서 작품이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지지자들이 원하던 것은 풍성하면서 깔끔하게 완성된 정식 스튜디오 앨범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그저 조악한 미완성작에 불과했다.


다만 싱글로 공개했을 때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던 "Good Vibrations"만큼은 굳건하게 작품의 중심이자 'pocket symphony'라는 별칭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일부 생략된 파트가 있었으나 곡이 워낙에 훌륭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관점에서 보더라도, 본작은 상황이 여의치 않아 다소 급하게 녹음 및 마감된 티가 역력한 미완성작이다. 이것이 그의 부담과 좌절에 단초로 작용한 것이 아닐까. 확실한 바로는 그는 프로젝트를 이대로 종결시키고 싶지 않았다. 반면에 그룹은 정작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Smile>은 이제 비치 보이스가 아닌 윌슨 혼자만의 질긴 사투가 됐다.


- Bootleg Tracks

일련의 사투는 여러 부틀렉 트랙들로서 파편화된 흔적들만을 남겼다. 우리 시대에 흔한 일명 '스니펫 문화'를 일찍이 실천했다는 점에서 설마 이 역시도 선구자라고 여길 수 있으려나. 팬들은 스스로 그것들을 일일이 찾아 자기만의 취향에 맞게 조립하는 수밖에 없었다. 작가 본인이 어떤 배치를 구상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채로 수작업으로 그렇게 해야만 했지만, 우리처럼 그들도 그것을 즐겼다.


하지만 아무리 과정을 즐긴다고 한들, 그 과정이란 것이 몇 십 년에 가까운 세월이라면 마냥 즐거운 일이 될 수 없다. 그 사이에 윌슨의 정신 질환과 약물 중독은 더 악화됐다.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예전 명작과 히트곡들을 간간히 추려 발매하는 컴필레이션, 그리고 역시나 부틀렉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팬들은 그를 기다렸다. 문화계 전체가 <SMiLE>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 '웃음'의 여정을 따라가기 위한 자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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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안정을 되찾고 다시금 기회를 얻는 날까지, <SMiLE>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 그러나 비가시적으로, 그리고 거시적으로는 결코 여정을 멈춘 적 또한 없었다. 그는 어쩌면 이 프로젝트를 끝마치기 위해, 동료들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손을 잡고 이끌어줄 누군가를 기다리고만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그의 손을 잡아주는 척 세속적인 계략만을 꿈꿔왔던 '유진 랜디'로 인해, 그리고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함에도 도저히 헤쳐나갈 방도가 보이지 않는 상황 앞에 겪어야만 했던 '가족과의 이별'로 인해 그는 좀 더 늦게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손을 잡아준 누군가, 뿐만 아니라 비로소 끝을 알 수 없던 정신질환의 늪에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 운명의 구원자, 멜린다는 결국 찾아왔다. 극진한 간호로 그가 호전되는 낌새를 천천히 보이자, 멜린다는 하나의 제안을 했다. 그것은 유진 랜디의 속임수와 달리 그것은 전적으로 그를 위한 제안이었다.


바로 <SMiLE> 프로젝트를 완성하자는 것. 그녀가 곁에서 함께 노력해 준 덕분에 그는 사람을 모을 수 있었다. 투어 세션을 담당했던 다리안 사하나자, 새로운 바로크 팝 편곡에 악기를 보태줄 현악/관악기 연주자들, 그리고 한때 그에게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떠나고야 말았던 작사가 밴 다이크 파크스"까지 지원에 응했다.


그리하여 <Smiley Smile>에서의 아쉬운 미완성을 뒤로한 약 40년째에 이르러, 새로운 녹음과 편곡을 통해서긴 하지만 명백히 정식으로, 그리고 <SMiLE>이란 역대 가장 거대한 베이퍼웨어의 실물을 볼 수 있게 됐다. <Brian Wilson present...>이라는 떳떳한 수식어를 덧붙인 채.




| '웃음'의 여정을 따라가기 위한 자리 (3)

smile-covere-fair-use.png.webp Culture Sonar

<SMiLE> 속의 황홀함은 곧 확장이 아닌 완성의 하모니라고 부르고 싶다. '일말의 빈틈 따위 없는 완벽함'과는 무관할지라도, 가장 극적이며 가장 낭만적인 심포니라고는 확실하게 자랑할 수 있을 테다. 반 다이크의 유쾌한 말장난과 폴리머스 록에서 하와이까지의 여정에 걸친 미국적 정신, 윌슨의 예술가적 자의식의 대변이 마치 뮤지컬의 매 순간에 연기자들이 과장된 표정과 제스처로 하여금 벅찬 화음 안에 어우러지는 듯하다.


구체적으로는 카툰 무비에 나올법한 온갖 익살스러운 효과음, 두왑 음악을 듣는 듯한 코러스, 변화무쌍하게 악장의 변화를 꾀하는 콜라주, 유머와 애정이 가득 담긴 오마주, 그리고 필 스펙터로부터의 영감이자 윌슨의 야심 찬 비전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사운드의 벽(wall of sound)' 등의 요소들이 본작의 화음을 구성 및 조율한다.


그 사이 윌슨의 목소리는 한 번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심지어 짧은 길이의 곡에서 겨우 보태는 몇 마디에서도 그렇다. 오랫동안 극심한 정신적 불안정 속에 놓여 있던 사람이라고는 차마 생각지 못할 테리라. 그가 인상파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굉장히 체계적인 희극 감독인 것처럼 보인다.


그의 연극을 보고 있자니, 다른 어떤 연극들도 이보다도 활기차고 명랑할 수 없다. 분명 <Smiley Smile>과 동일한 곡들이 일부 섞여 있음에도, 삶을 향한 그의 태도 자체가 달라진 듯한 인상이 들 정도다. 막 얻게 된 구원을 녹여내고자 했던 시도일까. 혹은 '아이들을 위한 교향곡'이기 때문인 것일까.


혹은 마침내 자신과 음악 팬들을 괴롭혀왔던 이 모든 것들이 결실을 이루었다는 감동이 똑같은 곡들이어도 감흥을 다르게 만들고 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상 최악의 숙제를 완수한 자의 홀가분함이랄까. 재차 강조하지만 완성 및 발매까지의 과정이 이렇게나 복잡하고 드라마틱한 작품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의 창작력은 여전히 왕성했고, 영감은 완전히 되살아났다.


그리하여 <SMiLE>은 전설을 둘러싼 향수라는 과거에 대한 재확인도, 아직 자신이 건재함을 알리는 현재에 대한 축배 이상으로,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미래에의 선언임을 알 수 있었다. 항혼에 들어서야 웃음을 짓고 빛을 발하기 시작한 그이니라.




| 십 대들을 위했던, 그리고 이제는 그를 위해 교향곡을 신에게 바치는 자리

BeachBoysSmile.jpg Jittery White Guy Music

결국 그는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한 비치보이스도 다시 웃을 수 있었다. 그제야 투어도 마음껏 편하게 돌 수 있기도 했다. 2011년 그룹명으로 발표된 앨범까지 웃음의 변천사야말로 윌슨의 여정을 상징한다. 음악사적으로도, 개인사적으로도 정말이지 오랜 여정이었다. 그러나 웃음의 진정한 의미는 그가 떠난 앞으로가 본격적으로 완성해줄 것이다.


십 대들을 위한 신에게 바치는 교향곡. 그의 의지를 이어갈 전 세계 팬들과 후대 예술가들, 그가 나고 자란 미국 땅에서 앞으로를 살아갈, 이를테면 "Song for Children"에서의 우리 아이들을 위해 바치는 것. 그것은 또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언제나 음악을 향한 사랑에 관해서는 늘 속에 자리해 있던 순수한 소년, 그 자신에게 바치는 의미이기도 했음을 확신한다.


이제는 우리가 그를 위해 우리가 신에게 바칠 차례인 듯하다. 샹송만큼 미려하고, 오페라만큼 장엄하며, 바로크 음악만큼 클래식하고, 시나트라의 팝송만큼 달콤하면서, 무엇보다 캘리포니아처럼 낭만적이고도, 하모니의 풍성함만큼은 달리 비교할 데가 없던 그의 교향곡이 찬가로 울린다. 부디 그의 고향에서도 언제나 밝게 울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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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Vibration for Brian Wil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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