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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을 한 다발로 묶으면~

- 들어가며

by Cha향기

어린 시절, ‘선생님 놀이’를 하며 놀던 때가 많았다.

동구밖 정자나무 아래가 학교였고, 교실이었다.


나는 주로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을 잘 챙기는 교사 역할을 찰떡같이 해냈다.


"넌, 이다음에 선생님 해도 되겠다. "


누군가 했던 말이 귀에 쟁쟁거리곤 했다.

그러나 정작 나는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진 않았다.

내가 자란 산간벽지에는 롤모델이 될 만한 사람이 없었다.

본 게 없으니 꿈도 없었다.


불우한 가정환경 속, 매일 다투기만 하던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나는,

하루만 무사히 보내면 다행이라며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살았다.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는 동기 부여를 받지 못했다.


친구들은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돈벌이하러 떠났다.

그런데 어머니는 공부만이 살길이라며

나를,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명문 여고에 보냈다.

대학 공부까지 시켜주신 어머니의 공부 바라지는

죽을 둥 살 둥 힘겨웠다.


국립사범대학을 졸업했지만, 임용되지 못했다.

당시 대학은 신입생을 지나치게 많이 선발했다.

그러다 보니 ‘국립사범대 졸업생 무조건 발령’이라는 법이 있었음에도,

과목에 따라 미발령 교사가 적체됐다.

제2 외국어(불어)를 전공한 나도 그 대상이었다.


딸을 대학까지 보낸 어머니에게는 인생의 쓰디쓴 배신이었으리라.

국립사범대학만 졸업하면 걱정 뚝일 것으로 믿었던 어머니의 기대는 참혹하게 무너졌다.

나는 두고두고 그것 때문에 어머니께 죄송했다.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털레털레 고향으로 돌아가

집안일을 돕다가

때가 되어 결혼했다.

그렇게 무심히 2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 한 귀퉁이에서 ‘미발령 교사를 구제해 주는

특별 법안’이 생겼다는 짧은 기사를 봤다.

우연히, 아주 우연히, 그게 눈에 띄었다.

교육청에 연락하여 거기서 안내하는 대로 힘든 여정에 발을 들여놓았다.

교사가 되는 일이 내게는 무척 어려운 관문이었다.

친구들은 졸업과 동시에 3월이 되어 무조건적으로 발령받았는데...

20년도 더 지난 후에 교사가 되는 것도 피해를 당한 듯한데

때늦게 고생고생하며 교사의 대열, 그 미말에 설 수 있었다.


부전공 연수를 받고, 임용고시에 도전했다.


마침내 중등 영어 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18년간 교단에서 열정을 쏟은 뒤, 지난해(2024년 2월) 정년 퇴임 했다.


글은 남다른 등용문을 통해 교직에 들어서게 된 내력,

그리고 교사로서 겪었던 수많은 에피소드를 담은 기록이다.


그런데 임용 6년 만에 엄청난 일이 불어 닥쳤다.

사랑하는 아들이 절체절명의 사고를 당해 세미코마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의 삶은 깊은 땅속처럼 칙칙하고 숨 막혔다.


주검 같은 자식을 껴안고 사는 삶의 아픔은 표현할 길이 없다.

가슴이 견뎌주어 숨을 쉬고 입맛이 살아나 밥을 먹었다.


그렇지만 인생은 칠흑같이 어두울 때면,

희미한 불빛조차 한없이 따뜻하고 밝은 법이었다.


아들을 품고 가는 길에 천사 같은 사람들을 수없이 만났다.

오랜 시간 병상에 누워있는 아들을 돌보는 기록도 담았다.


아무튼 내 인생은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날이 많았다.

또한 눈물겨운 시간도 많았다.

롤러코스터 같은 삶이었다.


그 와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질주하는 일뿐이었다.


좌회전, 우회전도 없었다.

더군다나 뒤돌아 갈 수도 없었다.

다시 가라 하면 갈 수 없는 길을

뚜벅뚜벅 걸어 오늘에 이르렀다.


무려 한평생, 뚜벅뚜벅 걷는 중이다.



누군가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고 외치지만

나의 생은 온통 쉬지 않고 달린 기억만 가득하다.


이 책의 글 다발은 다음과 같다.

* 프롤로그: 글 소개

1부: 유년의 뜰 1 / 2 /3 / 방황/ 귀향)

2부: 늦깎이 (결혼 이후/ 신문에서 봤다/ 돌아간 사람들, 남은 사람들/ 부채에 적힌 글자 임용(任用)이란 글씨/ 마흔 중반에 봤던 임용고사)

3부: 교직(졸업한 지 20년이 훨씬 지난 후에 임용되다/ 방과 후 일타 강사/ 영어 몰입 교육/ 원어민 교사 활용 수업/연수란 연수를 다 받았다/ 담임 업무는 피하고 싶었다/ 뉴욕과 캐나다/ 원어민과 쌓은 정/ 원격 수업/ 학교는 대체로 안녕합니다)

4부: 사고(청천벽력 / 13년의 세월)

5부: 퇴임에 즈음하여 (업무/ 정년 퇴임)

6부: 학교 밖(학교를 떠나다/ 학교 밖도 만만치 않다/ 어머니를 버려두고 삽니다/ 우린 어머니 덕택으로 잘 살았습니다/ 퍼프와 환기/ 무장애길 )

* 에필로그: 글을 쓰고 있다
그 과정을
더듬어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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