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년의 뜰 1
내 고향 유판마는 가야산 자락에 있다.
가야산은 해인사라는 유명 사찰이 있는 곳이다.
해인사 입구에 있는 홍류동은,
가을이 되면 불이 난 듯 붉은 잎들이
흐르는 맑은 물에 비취어 계곡을 물들인다.
그래서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 산줄기와 물줄기가 내 고향까지 끼친다.
내 고향은 사방이 산이다.
앞산, 뒷산, 옆산 등, 온통 산으로 덮여있다.
그렇지만 심산유곡(深山幽谷)은 아니다.
옆산을 넘으면 독골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곳이야말로 벽촌(僻村)이다.
동네 앞 개울에는 맑은 물이 흘렀다.
개울에서 다슬기를 잡거나 물놀이를 했다.
여자애들은 커다란 바위 위에 사금파리를 올려놓고
소꿉놀이를 하며 놀았다.
겨울이 되면 조무래기들은 영길이네 문 앞, 양지바른 곳에서
딱지를 치거나 구슬 따먹기를 했다.
그 놀이에 끼어들지 못했거나 딱지, 구슬 등이 바닥난 애들은 하릴없이 연을 날렸다.
주로, 영길이네 문전옥답에서 연을 날렸다.
이도 저도 못한 애들은 연싸움을 구경했다.
시리고 파란 하늘에 가오리연, 방패연은
서로가 서로를 제압하겠다고 긴 꼬리를 팔락거렸다.
"아무나, 이겨라!"
"누구나, 이겨라!"
회색분자 같은 꼬맹이들은 어느 편에도 서지 못한 채
그냥 의미 없는 응원을 목이 터져라 해댔다.
개울 건너, 재국이네 논바닥에서 썰매를 타기도 했다.
썰매는 나무 판때기 밑바닥에 각목 두 개를 양옆에 박은 후에
굵은 철사를 붙여 만든다.
그 철사가 얼음판을 달리게 하는 바퀴인 셈이다.
썰매를 타려면 지팡이도 필요하다.
막대기 끄트머리에 못을 박으면 멋진 썰매용 지팡이가 된다.
설매를 쌩쌩 타면 가슴부터 쾅쾅거린다.
호시가 절로 났다.
내기하다가 썰매가 뒤집히기도 했다.
그러다가 지치고 땀이 나면
논두렁 가장자리 수풀에 붙어 있던 고드름을 깨 먹기도 했다.
마을 애들은 해 저무는 줄도 모르고 놀았지만
우리 남매는 마냥 놀고 있을 수 없었다.
"소 죽 끓여라."
"동생 밥 먹여라."
"저녁 지어라."
"청소해라."
한창 신나게 놀고 있으면 할머니가 우리를 불러들였다.
다른 애들은 여전히 흥겹게 놀고 있건만 우린 단 한 번도 맘 놓고 놀아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장터에 나가 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 대신에 우리가 집안일이며 농사일을 했다.
어머니는 자식을 공부시키겠다는 일념으로 농부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오일장을 떠돌아다니며 신발 장수를 했다.
“사람은 배워야 한데이. 내가 못 배운기 한이데이.”
어머니는 농사꾼으로만 살다가는 자식들을 공부시켜 낼 수 없다고 생각하셨다.
또한 자식을 가르치지 않으면 그 자식이 한평생 고생하며 살 것이라고 여기셨다.
"니는 작고 못났으니 공부밖에 길이 없데이. 니는 공부 안 하믄 아무도 안 데려간데이."
어머니는 촌철살인(寸鐵殺人)으로
공부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며, 내게 은근 압박을 가했다.
집안 살림이라 해봤자, 논에서는 벼농사, 밭에서는 채소를 수확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쌀바가지(지명)' 논 다섯 마지기, '띠뱅이(지명)' 밭 하나,
그리고 한 평 될까 말까 했던 앞산 밑 정구지(부추) 밭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것만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 5남매를 초등학교 졸업이나 겨우 시킬 정도였다.
그래서 어머니는
안정된 농사꾼 생활을 내던지고
고생문이 훤한 장돌뱅이가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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