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좋은 책이 보기 좋지 않은 경우

슬라보예 지젝의 <삐딱하게 보기>를 읽다 쓰다

by 시린

철학책을 진지하게, ‘철학적으로’ 읽어볼 심산이었는데 라깡한테 발목이 잡혔다. 이 책에 걸려 넘어졌다. 재미는 있는데 ‘안 넘어간다’. 책장이 너무 두껍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종이가 두껍다. 무겁고 뻣뻣하다.


책을 들고 읽는 버릇이 있어서 무거운 책을 싫어한다. 하드커버는 보기 좋고 튼튼하지만 책장이 부드럽게 넘어가지 않는다. 나는 책의 절반을 뒤로 말아쥐어도 한 손에 쏙 들어오는 문고판이 좋다. 다른 손으로 커피도 마시고 밑줄도 그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 책은 도대체가, 어찌나 뻣뻣한지 두 손의 악력을 다 써야 펼칠 수 있고 조금만 방심하면 철썩 덮인다. 독서대에 올려도 고정핀을 밀고 튕겨 올라온다. 지나친 체력이 필요하다. 이제 몇 장 안 남았는데 피곤이 몇 주째 책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숙제를 늘리는 건 나의 간세지만, 이번만은 책을 이따위로 만든 출판사 탓이 크다.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착한 천사>를 읽어 보려다 책의 실물을 보고 기겁해서 다른 책만 사 온 적이 있다. 페이지수만 1400이 넘는다. 요즘 단행본은 300페이지 정도가 많으니, 네 권 분량은 거뜬한 거다. 더 놀란 건 이 택배상자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더라는 거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이 책을 읽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내가 잘못 살았나? 요즘 사람들은 숨어서 책을 보는 건가? 아, 물론 들고 다니면서 읽을 수 있는 부피는 아니지만.


몇 해 전 열린책들에서 돈키호테 새 판본이 나와서 신나서 사 놓긴 했는데 실은 아직 엄두가 안 나서 책등만 바래가고 있는 중이다. 궁금하다. 책을 만든 사람들은 이 책들을 읽으라고 만들었을까, 인테리어에 쓰라고 만들었을까?


책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다. 신경써야 할 게 최소 수백 가지란 걸 모르지 않는다. 인테리어용 책도 필요하다, 그게 뭐 어떻냐는 반박을 들은 적도 있다. 일리는 있지만, ‘보기 좋은’ 것에 공들이는 만큼 ‘읽기 좋은’ 데도 신경써 주면 안될까. 좋은 책일수록 만듦새가 아쉬운 경우가 많다. 좋은 책이라서 아쉬움이 더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