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다 쓰다
‘그림으로’ 본 최초의 그림은 피카소라고 기억한다. 네 살쯤이었을 거다. 삼촌이 창경원에 데려가 주었는데, 피카소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창경원에는 일본인들이 들여다 놓은 동물들이 여전했으니, 궁이라는 건 전혀 몰랐다. 집에서 가까워 소풍이니 마실이니 연례행사처럼 가곤 했는데 전시를 본 기억은 그때가 유일하다.
원숭이였나 곰이었나.. 우리 앞 벤치에 앉아 기다리던 엄마한테 뛰어가서는 엄마 엄마,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화가 그림도 별거 아냐, 집에 가서 내가 그려 줄게, 눈이 삐뚤어지고 코가 삐뚤어진 그림들을 눈에 고이 담아온 얼라들은 흥분해서는 떠들어댔고 엄마는 킥킥대며 그래 그래, 했다.
나는 이 얘기를 몇 번인가 했다. 눈이 삐뚤어지고 코가 삐뚤어진 그 그림들이 아직 내 눈 안에 있기 때문이다. 어린애가 뭘 알겠어, 미술이니 예술이니 큐비즘 따위 당연히 알 리 없지, 지금도 잘 모르는 걸, 그런데도 기억한다. 그날 본 그림을 오늘 아침 본 것처럼.
어떤 느낌, 기운, ‘기미’는 시선이 닿는 순간 내게 옮겨 와서 떠나지 않는다. 그 이미지, 사건, 의미를 이해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본 줄도 모르는 채 보고, 기억하는 줄도 모르는 채로 기억하며,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 ‘그것’과 함께 살아간다. 그게 예술인지 시인지, 잘은 몰라도 그 비슷한 무언가일 테지, 짐작한다.
다음에 ‘그림으로’ 그림을 본 건 꼭 십 년 후, 살바도르 달리다. 사이에 이런저런 그림이 있긴 했을 테지만 기억에 없다. 기억을 짜깁는 내 뇌신경은 피카소와 달리를 나란히 놓는다.
흘러내리는 시계와 소녀의 그림자를 보는 순간 물에 빠진 것 같은, 입고 있는 옷이 피부에 달라붙고 점점 무거워져 아래로 아래로 끌려내려가는 것 같은, 가위인 걸 알면서도 밀치고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간밤에 꾼 꿈이 눈앞에 펼쳐지는 공포. 얼마 후, 데 키리코의 소녀를 봤을 때도 똑같은 강도와 경도로 굳었더랬다.
다시 십 년 건너뛰어도 될까? 당시 나는 닥치는 대로 영화를 봤는데, 살면서 가장 무서웠던 영화 두 편을 본 것도 이때다. <안달루시아의 개>와 <샤이닝>. 무섭지만 좋아해서 디지털 데이터까지 갖고 있지만, 정작 몇 번 못 봤고 지금도 잘 못 본다. 여전히 너무 무섭다.
<안달루시아의 개>는 달리가 함께 만든 영화인데, 그 사실을 모르고 영화를 봤던 나는 뒤늦게, 그럴 줄 알았어! 그런 분위기였다니까! 달리 느낌이었다고! 의미없는 말을 외치며 씩씩댔었다. ‘달리 느낌’이라 한 건 그거다, 가위에 눌린 것 같은, 내가 꾸는 악몽을 누군가가 눈앞에서 재현하고 있는 것 같은, 공포.
마주친 순간 내게 옮겨 와서 떠나지 않는 어떤 느낌, 기운, 기미. 그중 감각을 동반한 공포는 강도와 경도를 가늠할 수 없다. 오래 가고 사라지지 않고 약해지지 않는다. 그게 바로 감동인지, 예술인지 시인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무서움을 동반한 감동은 무적이라는 건 알겠다.
‘뭔지 모르겠는 이상하고 무서운’ 걸 어느 틈엔가 나는 사랑하고 있더라는 말이다. <장화 신은 고양이>를 무서워했다. 얜 도대체 정체가 뭐야?! 체셔 고양이도 무섭다. 쟤는 또 뭐야?! 밤마다 꿈마다 소녀들이 굴렁쇠를 굴리고 줄넘기를 한다. 얼굴 없는 원피스만 봐도 무섭다. 무서워하면서 좋아한다. 고양이와 동화, 앨리스와 토끼, 달리와 시계, 거울과 꿈 이야기.
무서워 무서워, 하면서 툭하면 손가락 사이로 보고 있으니 남한테 이상합네 할 처지는 아닌 것 같아서 그냥 좋아해 버리기로 했다. 이상한 이야기와 이상한 수학자와 화가를 맘놓고 좋아한다.
안델센 그림 동화와 앨리스 시리즈는 눈에 띌 때마다 사고 싶다. 다양한 삽화, 다양한 판본을 갖는 꿈을 꾸곤 한다. 꿈은 꿈이라서, 가진 책은 손에 꼽을 만큼밖에 없다. 서운한 마음에 다행히도, 아름다운 책이 하나 늘었다. #살바도르달리 의 그림이 들어간 #이상한나라의앨리스 라니! 역시 이 인간은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 게 분명해, 이거 봐, 내가 읽으면서 머릿속에 그렸던 그림이잖아!
달리의 그림을 처음 보고 받았던 충격은, 그가 죽은 게 바로 몇 달 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서러움으로 바뀌었더랬다. 이 그림을, 이 사람을 더 일찍 알았어야 했는데! 내가 예술가가 되지 못한 건 그 탓이라고, 지금도 가끔 억울해한다. 어쩌면 그의 그림을 흉내도 내어 보며, 꿈을 그려내는 법을 알아갈 수 있었을 텐데.
악몽을 대신 그려주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고맙고 또 고맙다. 무섭지만 계속 꿈꿀 수 있는 건 그대들이 있어서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