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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재활 치료를 시작하다.

by 해피써니

아기가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을 때, 소아 물리 치료사 선생님을 한번 만났다.

뇌손상이 있는 아기다보니, 앞으로 운동 능력에 문제가 오거나 정상 발달이 잘 안될 수도 있으니 물리치료를 시작해야한다는 소아재활의학과 의사의 소견에 따라 만났다. 집에서 엄마가 갓난 아기를 데리고 있으면서 해줄 수 있는 물리 치료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소아 물리치료사를 연결시켜준 것이었다.

대학 병원은 물리 치료도 마음대로 시작할 수 없다. 진료 한번 보려고 해도 대기해야 하는 것처럼 물리치료실도 대기가 길다. 치료는 빠를수록 좋기 때문에 치료를 시작하기 전까지 집에서 엄마가 조금이라도 할 수 있게 병원에서 최선의 판단을 내렸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 때는 이런 것도 몰랐다. 많은 시간이 지나 여러 병원과 치료실을 다니며 깨달은 것이다.


물리 치료라고 특별한 건 없었다. 아기 팔 돌리기, 다리 돌리기, 주물러주기, 눈 맞추기, 까꿍해주기 등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반적으로 아기들과 같이 하는 자극 놀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행위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하라고 했던 게 아닐까 싶다. 난 가르쳐 준대로 하루 10분, 4번을 중환자실에서 찍어둔 영상을 따라하며 아기에게 해주었다. 신생아라 2-3시간마다 젖을 물려야 하고, 그 사이에 4번 치료도 챙겨서 해줘야 하고, 밤에 수유하느라 부족한 잠도 채워서 자다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다 갔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났을까?

물리치료실에서 연락이 왔다. 치료 순서가 되었으니 일주일에 한번 방문하라는 거였다. 날짜를 정해 친정 엄마와 함께 택시를 타고 병원 물리치료실에 갔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는 아기들부터 제법 큰 아이들까지 치료를 받고 있었다. 다 컸는데도 걷지를 못하는 아이들이 한 걸음 한 걸음 뗄 수 있도록 붙잡고 치료하는 여러 치료사 선생님들 중에는 웃으면서 치료하는 분도 있었다. 난 이렇게 죽을 것처럼 마음이 슬프고 무거운데 어떻게 이런 아이들을 치료하면서 웃을 수 있지? 순간 화가 났었다. 그 옆에서 편안한 얼굴로 앉아서 치료사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는 부모들도 이상해 보였다. 그렇게 나를 둘러 싼 세상이 어둡기만 했었다.


일주일에 한 번, 30분 치료를 위해 매주 병원 물리치료실을 방문했다. 짧은 시간 방문하긴 했지만, 몇 년 동안 치료하는 내내 우리 아기처럼 어린 아기는 만나질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감사하다. '갓난 아기라서 우선적으로 치료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해준 게 아닐까.....' 여러 치료실을 다니며 나중에 든 생각이었다.


30분 동안 선생님이 어떻게 치료하는지 잘 봐두었다가 집에 오면 비슷하게라도 따라하면서 매일 아기에게 해주려고 애썼다. 물리치료사 선생님도, 재활의학과 의사 선생님도 우리 아기가 또래 아이들과 비슷하게 발달하는지를 체크하는 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포인트였다. 의사들은 쉽게 예후를 진단하지도 않았고, 쉽게 확정지어서 얘기하지도 않았다. 수 년동안 내가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다니면서 들은 가장 많은 말은 "지켜봐야 압니다."였다. 지켜보자는 말을 누가 못할까? 나중에는 화가 났다. 의사들은 도대체가 아는 게 없다고, 검사는 기계가 하고, 그 검사 결과만 읽어대는 건 누가 못하겠냐고 소리를 질렀다. 의사들은 아기가 앞으로 어떻게 자라는지, 내가 뭘 해야할지에 대해서 '지켜봐야한다'는 말로 일관했다.


다행히 또래 아이들과 크게 차이나지 않게 조금씩 자랐다. 백일이 좀 지났을 때 뒤집기를 했고, 7개월쯤 되었을 때 배밀이를 시작했다. 다른 점은 자꾸 오른쪽으로만 뒤집어서 내가 억지로 왼쪽으로 뒤집어 주었고, 배밀이할 때도 오른쪽으로만 배밀이를 하다보니 왼손이 자꾸 아래로 쳐지면서 배 밑으로 깔리길래 내가 중간 중간 빼주었다.

영,유아 발달 단계를 봤을 때, 뒤집기-배밀이-네발기기/앉기-서기 순으로 이루어진다. 정상 아기들의 경우 중간을 뛰어넘고 바로 걷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우리 아기같은 경우, 모든 단계를 다 거치면서 발달하는 게 좋고, 특히 네발 기기는 오래할수록 좋다고 했다. 네 발로 기면서 몸통의 힘이 길러지고, 결국 그 힘으로 바르게 서서 걸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빨리 걷게 하지 말고 네 발로 오래 기면서 몸통 힘을 충분히 기르고난 후에 걸어도 괜찮다고 물리치료사 선생님이 조언을 해주었다.


그렇게 돌이 지날때 쯤, 입원해서 집중 재활치료를 하는 병원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3월 복직을 앞둔 그 해 1월, 난 아기와 함께 어린이 재활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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